계르륵 웃고 가자

닭갈비 1kg가 주는 기쁨

by 크리잇터

계륵이라는 말이 있다. 닭의 갈비, 먹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남을 주기도 아까운 그런 것들을 뜻한다.

하지만 도시락러에겐 그저 계르륵 웃고 넘어갈 뜻풀이다. 닭갈비는 아주 소중하고 귀한 음식이니까.

쿠팡이나 컬리에서 1kg짜리 양념 닭갈비 한 팩을 사면 일주일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한 팩에 10,000원~13,000원 정도 하니 이만한 가성비 반찬은 또 없으리라.

'반찬 닭갈비'에 처음 입문한다면 리뷰 수가 많거나 구매 순으로 보는 걸 추천한다.

잊지 말고 담아야 하는 건 깻잎과 양배추다. 배송비 조건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콤 달콤한 양념에 신선한 향을 덧입힐 수도 있다.


차가운 새벽에 도착한 차가운 닭갈비는 세면을 하는 동안 잠시 실온에 둔다. 머리를 말리고 잠옷을 대충 걸친 채 팬을 뜨겁게 달군다. 하이라이트 세기는 7-8 정도. 깻잎은 5-6장 돌돌 말아 총총 썰어준다.

달궈진 팬에 닭갈비를 투하. 비닐팩 안에 든 양념까지 싹 긁어낸다.

양배추는 속까지 깨끗하게 씻어 겹마다 분리해 바로 팬으로 투입.

닭갈비와 양배추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며 팬 밑부분에서 빨간 양념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우리는 저 양념이 눌어붙지 않게만 잘 휘적여주고 뒤적여준다.

문득 자신 말고 철판에 손대는 걸 엄격히 금지하셨던 닭갈비집 이모님이 생각난다. 내가 건드리는 순간 야채가 쌓여 있던 모양이나, 소스의 눌음 정도를 자신의 루틴대로 보지 못하시니 그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 냄새, 손목 스냅, 양배추의 모양, 양념의 점도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괜스레 이름 모를 이모님을 따라 해본다. 대충 다 익은 것 같아 보이는데,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어차피 도시락을 쌀 거니 가위로 잘게 잘라서 단면을 살펴보자. 잘 익었다면 한 국자는 메인 반찬 칸에 눌러 담고 나머지는 락앤락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일주일치 도시락 반찬 걱정도 함께 넣어둔다.


빨갛고 자극적이다. 기름지고 달달하다. 밥 한 숟갈에 그리 많은 양의 닭갈비가 필요하지 않다.

살짝 물릴 때쯤에는 같이 싸 간 담백한 반찬들을 곁들인다. 나물이라든가, 계란말이라든가.

그렇게 3~4일째 먹고 나면 닭갈비가 애매하게 남는다. 그때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이 녀석을 그대로 반찬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운명을 맞게 해 줄 것인지.

새로운 운명은 볶.음.밥. 나는 언제나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다.

김가루와 치즈, 참기름 같은 것들을 넣고 냉장고에 놀고 있던 찬밥을 함께 볶아낸다.

그러면 반찬도 필요 없는 2일 치 도시락 완성이다. 동결 건조된 미역국 정도만 곁들여보자.


동그란 철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구랑 먹는다면 닭갈비에 볶음밥, 맥주까지 클리어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락으로 판을 옮기니 한 끼가 다섯 끼가 된다. 뭔가 돈을 아낀 기분이라 뿌듯하다. 스스로가 기특하다. 이제부터 계륵은 '먹을 것도 많고, 나한테 주기 아까울 리 없는' 뜻으로 바꿔보기로 한다.


TIP) 닭갈비에 고구마는 키다. 하지만 고구마는 보통 한 봉지나 박스 단위로 팔기에 구매가 망설여진다. 그럴 땐 산책을 갔다 오며 동네 마트에 들러보자. g 단위로 판매하는 마트 내 고구마 밭에서 중간 크기 고구마를 골라보자. 1,000원도 안 나올 것이다. 겉표면 흙은 깨끗이 씻어내고 숭덩숭덩 썰어 닭갈비에 넣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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