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단골 미용실에 들렀다. 긴 머리도 자르고 오랜만에 밝게 염색하고 싶어서였다.
미용실 원장님과는 일상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경기가 참 안 좋아. 아무래도 미용실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할 것 같아. 요즘 중년여성들이 하기 좋은 일이 있거든.”
한숨 섞인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그게 무슨 일인데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건 바로 ‘산후도우미’ 엄마들이 하기 좋은 일이야. 내가 거기 연락처 알거든. 일주일 교육받으면 바로 일할 수 있어. 벌이도 괜찮아. 요즘 미용실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나도 할 생각이야. 어때 꼬망님도 같이 해볼래?”
“아…. 그래요? 저도 신경 써주시고 감사해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어려서 제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어떤 에너지도 남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나는 주저하며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보고 괜찮을 것 같으면 언제든 얘기해. 번호 줄게.”
원장님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불경기에 본인 일에도 마음의 여유가 없을 텐데 먼저 좋은 제안을 주신 점이 고마웠다.
집으로 오는 길에 친한 이웃 친구를 만나서 원장님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 분명히 그 말을 들으면 발끈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언니는 그 말을 꼬아서 안 들었네.”
“그런가? 난 내 생각해서 얘기해 준 것 같아서 고맙다고 했는데?”
“그런 거 있잖아. ‘나 그런 일 할 사람 아니에요. 물어보지도 않은 걸 왜 얘기해요?’라고 발끈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어쩌면 그 꼬아서 듣는 마음은 본인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뭔가 더 거창한 것을 하고 싶은데 왜 나를 그렇게 평가하냐?”라는 바탕이 깔려있을수록 마음이 뾰족해졌다.
나를 생각해 줘서 하는 말을 비꼬아서 듣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본인을 생각하는 마음의 자존감이 낮아서 아니었을까. 상념의 폭풍이 몰아칠 때 현명하게 넘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게 내 가치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남이 생각해 주는 인심을 오해하고 싶지 않았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미용실에 잠시 들렀다. 집에서 만든 오이지무침과 고추 장아찌를 원장님께 드렸다.
원장님이 내려주신 커피가 오늘따라 더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