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깜박했다. 엄마가 흰색 옷 빨래한다고 못 했네. 오늘은 면바지 입고가. 이것도 편해.”
“아…. 엄마 그 운동복이 편하다고요. 체육 있는 날은 그 옷이 딱인데….”
“.......”
등교를 준비하는 큰아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주부의 루틴은 반찬 만들기, 청소하기, 정리정돈이 무한 반복된다.
집에 먹을만한 음식이 하나도 없을 때, 장을 잔뜩 봐와서 밑반찬 등을 준비하다가 숨 한번 돌리려고 하면, 화장실 물때 청소주기가 돌아온다. 뽀득뽀득한 바닥을 닦고 싱크대 얼룩을 청소하고 하면 어김없이 그동안에 못 한 옷장과 이불 정리를 함께 한 집안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걸 끝내놓으면 저것도 해야 하고, 뭔가 끝이 없는 게 숨 막히네.”
아이들 등교시키고 냉커피를 내려 마시며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고 오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언니들은 도시락이 두 개씩이었다.
엄마는 수산시장에 가서 말린 새우를 한 상자를 사 오셔서는 물기 가득한 요리를 한 통 가득 만들어 도시락에 싸주셨다. 말린 새우는 바삭한 식감을 살려서 기름에 튀기듯 볶아야 그 맛이 살아나는데, 우리 집 새우는 시들어진 시래기나물처럼 생기 없는 맛이었다.
매일 같은 도시락 반찬을 보던 나는
“엄마. 오늘도 새우예요? 새우 너무 젖어서 맛이 별론데…. 다른 애들은 비엔나소시지 사 온다고요.”
철없는 투정이었다는 것을 중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엄마도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이 버거웠을 것이다.
반찬을 맛있게 하는 요리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하기 위해 조금은 손쉽게 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도시락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성실하게 반찬을 했으리라.
바지를 만지작거리며 투덜대는 아이의 등교 모습을 창밖으로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성인이 된 나를 보며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난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거든. 엄마라는 존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내가 아이를 낳아보고 깨닫게 됐어. 이런 마음을 고맙단 표현 한 번 못하고 엄마를 보낸 생각이 나면 가슴이 메여와.”
어릴 때의 나도
“엄마가 도시락 반찬 하는 거 당연한 건데, 우리 집 반찬은 왜 이렇게 성의가 없고 맛이 없는 거야!”
라도 투덜대며 맛있는 반찬을 하는 것은 엄마의 의무라 당연히 여겼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
당연하다는 감정은 상대가 익숙해졌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당연하지 않은 상대를 만날 때면 우리는 고마움을 말로써 공손히 표현한다.
함께 살 때는 엄마가 직접 차려준 집밥의 고마움을 몰랐다. 혼자 자취해 보면서 모든 집안일을 다 해야 할 때 비로소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젊은 시절 엄마의 꿈은 기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채용원서를 썼는데 잘 안 됐었어. 그때 아빠를 만나서 결혼했거든. 문득 궁금해지긴 해. 기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