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지 Oct 27. 2022

리셋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스물아홉에 다시 대학에 가면서 학교 안에서의 포지션은 미리 정해두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 동기들 사이에 섞이려고 굳이 애쓰지 않고 물 위 둥둥 떠다니는 부표처럼 조용히 살리라 다짐했다. 아홉살 어린 동기들과 친구가 되기도 어려울 것 같았고, 그 아이들도 내가 어려울테니 그렇게 사는 게 서로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교대는 부표처럼 살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개인이 각자 수강신청을 하는 일반 대학과 달리 대는 같은 과 동기들이 통일된 시간표로 다함께 수업을 듣는 시스템이었다.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건 수업마다 강의실을 옮겨다니는 것 뿐, 고등학생 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3학년때부터는 거의 모든 수업이 조모임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좋든 싫든 어린 동기들과 잘 지낼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래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따라갔다. 얼굴이라도 미리 익혀두어야 강의실에서 만난 아홉살 많은 언니를 조교로 착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서 얼굴만 익히고 구석에 가만히 찌그러져 있을 작정이었다. 동기들이 노는 동안 빈 방에서 혼자 읽으려고 두꺼운 책도 한 권 챙겨갔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ESFJ'에게 그건 실현불가능한 계획이었나보다. 분명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그냥 얼굴도장만 찍고 오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아홉살 어린 동기들에게 술게임을 전파하고 있었다. 술을 오지게 잘 마시는 동아리 출신인데다 맥주색깔보다 소주색깔에 가까운 소맥을 즐겨먹는 PD들과 일했던 나는 음주 애송이들 사이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흥겨운 어깻짓을 하며 어린 동기들에게 소맥을 말아주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조용히 숙소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데 숙소는 이미 취한 아이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토하는 동기의 머리카락을 잡아주고, 손에 운동화를 낀 채 맨발로 복도를 돌아다니는 아이를 잡아다 방에 눕히고, 과음으로 괴로워하는 동기의 배를 쓸어주었다. 그렇게 1박 2일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었더니 스무살짜리 동기들이 나를 과대표로 뽑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다 위의 부표가 되려던 사람이 과대표가 되어 온갖 행사에 다 참석하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정말 마지막이다, 하면서 동기들과 가평으로 MT까지 갔다. 스무살 동기들이 펜션 거실에 놓인 노래방 기계를 보고 환호하더니 소녀시대 노래를 부르며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마이크가 나에게 넘어왔다.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앞으로 나가면서 미친듯이 고민했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 이 아이들에게 늙은이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아홉살 어린 동기들 사이에 뚝 떨어진 나에게는 이렇게 남들이 하지 않는 고민들이 한 보따리였다. 드레스코드를 정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처럼 세미정장을 입고 학교에 가면 동기들의 막내이모뻘로 보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쇼핑을 할 때마다 적당히 캐주얼하면서도 어려보이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옷을 찾아 헤맸다.(그런 옷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아이들과 밥을 먹은 후, 시원한 거 하나 사먹으러 갈 때도 고민했다. 하드 정도는 언니인 내가 사줘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부모님이 등록금 내주는 쟤네들보다 내가 더 거지인데 꼭 사줘야 할까.(처음으로 이 고민을 하던 날은 결국 내가 샀다.)


  갓 스무살이 된 동기들이 나이든 언니의 이런 고민들을 알 리가 없었다. 매일 함께 점심을 먹던 한 동기가 여름방학 때 유럽에 같이 가자고 했다. 언니는 돈이 없어서 못 가, 하자 그 아이가 물었다.

  "엄마한테 달라고 하면 안돼요?"

  응, 안돼. 이 나이에 대학에 와서 엄마한테 유럽여행 갈 돈까지 달라고 하면 호적에서 파일지도 몰라. 이런 속얘기는 꾹꾹 눌러두고 그냥 웃었다.


  귀여운 동기들이 대학생활의 설렘을 만끽하는 동안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맹렬히 돈을 벌었다. 돈 들어갈 데가 많았다. 서른을 앞둔 친구들이 줄줄이 결혼을 했다. 축의금으로 20만원쯤 줘야 할, 돈이 많다면 더 주고 싶은 친구들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쪼개 친구들 축의금을 냈다. 구남친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결혼식에 갈 때는 백화점에서 비싼 원피스도 사 입었다. 비록 이 나이에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허름해보이고 싶지 않았다. 등록금과 생활비만 해도 적지않은데 사람 노릇도 하고 자존심까지 챙기려니 쉬지않고 벌어야 했다.


  들어오는 과외는 가리지 않고 다 했다. 논술 첨삭 아르바이트도 하고, 피아노 레슨도 했다. 특히 논술 첨삭은 내가 하는만큼 돈을 벌 수 있으므로 학교에 원고를 싸들고 가서 쉬는 시간에도 했다. 종일 첨삭을 하다가 팔이 너무 아파서 어깨를 돌리자 옆에 있던 동기가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동기가 "지금 언니한테 효도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다들 빵 터져서 웃었다. 9년이란 시간을 되돌린 나의 삶은 종종 이렇게 코미디였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을 믿고 과감히 인생의 리셋 버튼을 눌렀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틀린 게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으며 학교에 다녔다. '너무 늦은 때'는 아니었지만 '꽤나 늦은 때'에 인생의 방향을 바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몹시 힘든 일이었다. 한쪽발은 스무살 대학생들의 세계에, 또 한쪽발은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또래친구들의 세계에 담근 채 살다보니 혼자서 2인3각을 하는 것처럼 삶이 자주 기우뚱거렸다. 평일에는 어린 동기들과 이어달리기를 하고 리코더 연습을 하다가 주말에는 친구 결혼식에 가서 부케를 받다보면 내가 이상한 나라를 헤매고 있는 앨리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 두던 스물여덟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 때의 나에게 미래의 내가 나타나 "네가 지금 대학에 가서 공부를 마치면 서른세살인데 그 때 네 통장에는 9만원이 남아있을 거야. 네 동생은 그로부터 한달 뒤 결혼을 할 거고, 네 친구들은 거의 다 아기 엄마가 되어있을 거야. 너는 선생님이 되고나서 아등바등 벌지만 5천만원도 못 모은 채 결혼을 하게 될 거고, 그래서 신혼집 구할 때 골머리를 앓게 될 거야. 이거말고도 엄청 많은데 더 들어볼래?"라고 한다면 나는 "으아아아!"소리를 지르며 도망간 후, 백만번 천만번 더 고민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의 나는 뭘 잘 몰라서 용감했다.


  시간을 되돌려 선택한 지금의 직업은 다행히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전의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많이 웃는다. 간절히 바랐던 대로 나의 삶을 가꾸어나가기에도 좋은 직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되돌리는 대가로 치른 것도 적지가 않다. 돈에 쪼들리면서 살아야 하는 건 제껴놓더라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꽤 많다. 적어도 아이를 둘은 낳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늦은 나이에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다보니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울 체력도, 돈도 없어서 아이를 하나만 낳고 끝내게 된 것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회사를 때려치고 대학에 다시 가게 된 그 날의 선택에 닿게 된다. 그저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인생의 리셋 버튼을 누른 그 때의 나는, 그 선택이 나의 인생에 미칠 파장이 이 정도인지는 정말 몰랐다.


  누군가는 용감하다 하고, 누군가는 무모하다 했던 지난 날의 선택 덕분에 가지게 된 것도, 잃게 된 것도 많다. 그 중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모르겠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게 행복의 비결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가끔은 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하다. 그 때 만약 내가 리셋 버튼을 누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