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저도 좋아요

by 반동희

준영은 대학 시절 자동 수강신청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수강 시천 기간에 돌렸다. 그 덕분에 경쟁이 치열한 수업을 창이 열리자마자 자동으로 취득할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아침부터 일어나 PC방을 가거나 랜선을 붙잡고 가슴 졸일 때 준영은 달랐다. 준영은 그 시간에 TV를 보거나 한쪽에 수강신청 프로그램을 돌려놓고 게임을 했다. 어떨 때는 친구들의 수강 신청 요구를 그 프로그램으로 들어주고 술이나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준영은 스마트폰이 나오며 새 판이 짜일 때 쾌재를 불렀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자 GPS를 기반으로 한 위치 파악에 주목했다. 준영은 GPS로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한다는 것이 특정 세상을 자기 손바닥 안에 넣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여기에 더해 준영은 소형 스피커와 녹음 기능을 자신의 프로그램 언어로 조합했다. 마지막으로 꿰찬 게 공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걸 상대방 몰래 넣을 수 있는 '소형 칩'으로 발전시킨 거였다. 위치 파악을 강중구 역사동으로 세밀히 좁히니 번지수와 다닥다닥 붙은 주거지의 호수까지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안에 스피커 기능을 넣어 현장의 소리를 채집하는 것도 가능했다.


노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준영의 수의사 생활이 손에 익을 때쯤이었다. 반려동물등록제가 탄생했다. 2014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태어난 지 3개월 지난 반려견의 등록을 의무화했다. 위반자는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반려견 인구 1000만 시대에 버려지는 강아지가 많아 시행하는 정책이라고 정부는 홍보했다.


준영은 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할 경우 무료 등록을 해주겠다고 병원에 크게 써 붙였다. 특히 1인 가구가 많은 역사동이 타깃이었다. 원룸가를 중심으로 홍보 전단지를 대규모 뿌렸다. 잃어버린 강아지와 슬픔을 강조한 뒤 '애견칩'은 절대 부작용이 없다고 설파했다.


더러 강아지 몸에 넣는 칩 대신 목에 거는 외부 인식표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준영은 데려온 견주를 보고 판단했다. 판단 기준은 단순했다. 견주가 여성이고 준영 자신이 좋아하는 외모면 어떻게든 내부 칩으로 유도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특별히 우리 병원 오는 아이들을 위해 초소형 칩을 쓰거든요."


준영은 입술을 앙다문 채 눈만 웃으며 견주한테 말했다. 조제실에서 얼굴만 내놓은 준영은 말을 한 뒤 견주의 표정을 살폈다.


"안 그래도 잘해주신다고 해서 왔어요. 같이 일하는 언니가 추천을 해줘서."


견주는 웨이브 파마가 들어간 머리를 오른쪽으로 쓸어내렸다. 왼손으로는 강아지의 등을 만졌다.


"네, 가끔 부작용이 있다느니 하면서 왜곡된 정보들을 얘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역사동 같이 사람 많고 이런 곳에선 외부에 인식표 달아봤자 끊어질 염려도 있고 크게 안전하지 않아요. 아기 이름이 달콤이라고 했나요?"


준영은 이렇게 대꾸하고 다시 조제실로 고개를 넣어 몸을 숨겼다. 커튼 너머로 "예. 잘해주세요"라는 목소리가 준영에게 들려왔다.


준영은 자신이 만든 스피커 기능을 입힌 칩을 알코올로 닦았다. 뒷면에 연결된 GPS 단자를 매만지며 준영은 자신의 집에 있을 모니터를 떠올렸다. '4번 모니터가 뒤로 밀려나고 당분간 네가 4번이 되겠네.' 준영은 이렇게 생각하며 밖에 있는 여자의 사생활과 알몸을 상상했다.


오후 4시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비교적 화장기 옅은 얼굴로 온 여자였다. 차트에 적힌 주소를 보니 병원에서 가까운 역사동 원룸가에 살았다.


그 집 앞으론 유흥가가 즐비했다. 게다가 여자는 언니 추천을 받고 왔다고 했다. 여자가 유흥업소에 종사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준영은 대어를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준영의 칩은 대어를 꿸 낚싯바늘이 될 터였다.


"자. 금방 됐죠? 괜히 정확하지도 않은 말씀 듣고 겁부터 낼 필요 없다니까요. 달콤이도 좋아하네요. 달콤이와 견주님 모두 안전해진 것 같아 저도 좋습니다."


준영이 나긋하게 말했다. 여자가 배시시 웃었다. 준영은 그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자는 고개 숙여 강아지 등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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