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리 피디 Jun 25. 2024

좌우명

자꾸 들여다보는 말


좌우명()은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를 의미한다.

나무위키의 설명입니다. 중국 후한의 학자 최원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곱씹어 봐야 할 중요한 지침을 금속에 새겨서 앉은자리 오른쪽에 두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랍니다. 서양말로는 모토(motto)라고 하고요.


어렸을 때 저희 세대는 좌우명을 말해 보라는 '명령'을 자주 들었습니다. 주로 선생님이나 아버지 친구 같은 윗분들입니다. 새 학기가 되어 자기소개하는 경우에도 빠지지 않는 질문이었어요.


왜, 사회적 압박(social pressure)이란 게 있잖아요. 좌우명이 없었더라도 이쯤 되면 만들게 돼 있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그럴싸한 문구나 문장을 자기 좌우명이라며 내밀게 되는 것이죠.


사즉생 필즉사,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불가능은 없다  따위의, 정신 자세를 바로잡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끔 조숙한 아이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든가,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의예지신, 불고필유린  따위의 철학자들의 명언을 주워섬기기도 했어요.


좌우명이 사라진 시대


요새는 어떤가요? 좌우명을 묻거나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아이들의 새 학년 자기소개란에도 좌우명은 없더군요. 너는 어떤 방향으로 살고 있니, 어떤 태도로 배울 거니, 하는 물음은 뜬금없고 낯설어 보입니다.

 

저는 물질주의가 모든 가치관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좌우명을 묻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아파트 값이나 주식정보는 민망한 화제였습니다(속물이란 손가락질이 따라왔죠). 지금은 반대입니다. 풍족하기로는 그 어느 시대보다 지금이 압도적이지만 아쉽기로도 최고치입니다. 사업이든 재테크든 돈이 되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최고로 칩니다.


서양말로 좌우명이 모토(motto)라고 는데, 요새는 동서 막론하고 로또(lotto) 아닌가 싶습니다.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는 대박~!이란 감탄사에서도 엿보입니다. FIRE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tre early, 경제적 자립과 조기 은퇴)은 대다수 젊은이들의 모토가 되었죠. 내가 앉은 오른쪽 자리에 늘어나는 비트코인을 보며 흐뭇해하는 것이 이 시대의 좌우명 아닐까요?


주례 없는 결혼식


요새 결혼식엔 주례가 없습니다. 좌우명을 따라 사라진 겁니다. 이유는 비슷해요. 이게 옳다 이렇게 살아라 하는 말이 고리타분한 겁니다. 저도 결혼식에서 주례사 듣는 걸 싫어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 뻔한 얘기를 지루하게 늘어놓기 때문이었어요.


주례 말씀 시간은 오랜만에 만난 친지 친구와 잡담하는 시간이었죠. 요새는 성혼선언문을 아버지가 읽고 축하 연주나 노래, 짧은 축사로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주례사가 길게 이어지던 때보다 재미는 있지만 뭔가 허전하기도 해요. 진지함이랄까 진중함이랄까.. 좌우명을 말할 때 민망하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는 거창함을 느꼈던 것처럼요.


우리가 택한 것들


우리나라는 유교라는 전통 위에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유교는 조화라는 긍정적인 요소와 서열화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함께 갖고 있어요.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라는 긍정적인 요소와 물질만능이라는 나쁜 요소를 동시에 지녔고요.


그런데 우리는 유교에서 서열화, 자본주의에서 물질만능이라는, 나쁜 점들만 취했다는 겁니다. 마치 엄마 아빠에게서 아쉬운 점만 빼닮은 아이처럼 말이죠. 물질주의를 토대로 서열화를 하는 것입니다. 집 평수, 성적, 시가총액, GDP, 학교순위, 연봉, 자동차 배기량, 명품 가격, 좋아요와 팔로어 수 등 숫자로 환산 가능한 것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경쟁합니다.


반대라면 얼마나 멋질까요? 개인들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받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세상.. 이걸 오랜만의 좌우명으로 되새겨 보면 어떨까요? 내가 산 주식의 거래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지만 이런 허황되고 뜬금없는 꿈도 가끔은 슬쩍 들여다보는 것이죠.










이전 10화 낭패 어이 어처구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