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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Apr 03. 2023

똘레랑스와 주망푸

실시간 유럽 수학여행기 4


홍세화 선생이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어린 시절 내게 큰 충격이었다. 정치적 망명이 드러내는 우울한 조국의 현실과 엘리트의 블루 컬러 노동이라는 센세이션(그는 서울대 출신으로 신영복 선생과 함께 소위 '배운 사람의 고생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어떤 정치 이념이든 받아들여주는 프랑스의 관용 정신 등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책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정치 에세이였다.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서 정치적 지향을 밝히는 경우가 거의 처음 아닐까 싶다.  선생이 파리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음반이든 책이든 정부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 했다(가수 정태춘과 서태지가 그것에 반기를 들었다).


나는 프랑스어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1학년 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유시민'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 드레퓌스 사건', 카뮈의 '이방인',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과 함께 '빠리 택시운전사'는 내 젊은 시절 프랑스를 각인시킨 중요한 독서였다. 특히 반항이 청춘의 권리인 듯한 착각이 한몫했다. 한국사회는 왜 이 따위일까 하는 자괴감, 정치 선진국 프랑스에 대한 부러움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그의 다음 책 '센느강은 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는 조금 더 나갔다. 전작에서 강조했던 똘레랑스(관용)의 정신에 이어 우리 사회의 레드콤플렉스를 아프게 지적한다. 당시에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의아했다. 파리와 서울이 비슷하고 센느와 한강이 비슷한데 왜 저쪽은 좌우고 여기는 남북이지? 하는 의구심. 이번 파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강남, 강북이지만 파리지엥들은 물이 흐르는 걸 기준으로 좌안과 우안을 나눈다. 세느강이 동쪽에서 발원해 서쪽인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니까 우리의 강남은 좌안, 강북은 우안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물의 기준으로 지리를 구획하다니!


두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도 관용의 정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없을 거다. 고문도, 밀고도, 신념 배반도 없어지겠지. 억울함도 줄겠고 각자의 소신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게다가 똘레랑스의 유일한 적은 엥똘레랑스라는 말은 또 얼마나 멋진가.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니! 당시 젊은 내게 우리나라 독재자들은 홍세화가 지적한 엥똘레랑스(무관용)의 대상이었다.


조금 지나서 프랑스에 대해 알고 보니 마냥 고상한 나라는  아니더라. 똘레랑스 정신은 기본적으로 주망푸(Je m'en fous)에서 시작된다. '내 알 바 아니다'로 해석되는 이 말버릇은 프랑스인들의 개인주의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누가 뭐래도 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다. 말이 좋아 관용이지 방관에 가깝다. 옆사람이 공산주의자든 동성애자든 짜장이든 짬뽕이든 난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우리는 내 사상과 소신을 내 가족과 친구들이 동조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 나는 볶음밥인데 친구는 탕수육이라든가 나는 빨간당인데 동료가 파란당, 나는 진보인데 아들이 보수면 뭔가 불편하다. 일치와 통일, 화합과 통합은 늘 우리에게 숙제고 강박이고 염원이다. 남북통일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묻지도 않는다) 우리 애들은 놀랄 것이다. 사이가 좋지도 않은데 왜 합쳐?라고... 누군가에게는 당위지만 어떤 이에게는 선택지조차도 아닌 경우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거다. 개인들이 가진 고유성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좌든 우든, 남이든 북이든, 진보든 보수든, 장애든 비장애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가톨릭이든 신교든 존중한다. 적어도 오지랖 떨지는 않는다. 어느 쪽이냐 캐묻지 않고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피의 경험으로 깨우쳤다. 어설픈 의견 통일이 불쾌한 차이 인정보다 나쁘다는 것을. 그들은 나치  복무자들을 지금도 추적해 법정에 세운다. 우리는 갈등을 회피하고 화합을 내세우면서 과거를 모른 체한다(친일파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안다).


나는 가끔 우리가 비겁하다고 느낀다. 공공의 선을 내세우며 뒤에서는 개인의 잇속을 챙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걸 중요시 여기면서 종국에는 짓밟거나 이겨야 만족한다. 나와는 다른 생각에 불편해지면서 대화를 안 하는 것이 나은가, 논쟁을 감수해서라도 다름을 확인하는 것이 옳은가. 의견이 같은 동지가 좋은가, 의견이 다른 친구가 좋은가.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는가, 나와는 다른 친구가 내 세계를 넓혀 주는가.


곧 출국이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물건을 사용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도 그들에게 비친 내 삶의 태도는 돌아볼 수 있을 거다. 개인주의에 기반한 관용과 공동체주의를 위한 오지랖 중 무엇이 내게 맞는가 하는 탐구도 중요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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