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의 사랑해 벽을 바라보고 있다. 무려 250개 언어로 사랑한댄다. Aimer라는 동사를 달고 사는 인간들이라 그런지 이런 낙서로도 발길을 모으는구나. 불란서는 여러 면에서 모순덩어리의 나라다. 혁명과 예술, 고집과 관용, 야만과 문화, 성스러움과 상스러움 등등. 마지막 모순의 대표선수가 바로 여기, 몽마르트르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벽. 하긴 사랑이 없었다면 이 벽이 존재했겠냐
이름부터가 성스럽다. 순교자의 언덕이란다. 파리의 수호신이라는 생 드니는 순교당한 뒤 잘린 자기 목을 들고 이 언덕을 넘어 북쪽으로 갔다. 그걸 어떻게 <드니>? 가는 도중에 목이 말라 샘에서 물을 마셨다(손이 머리를 샘에 담갔을 텐데 상상하니 끔찍하다). 나도 조금 전에 거기서 빈 생수통에 물을 채웠다. 무료다. 메르시, 생 드니! 언덕 꼭대기에는 성심당이 있는데 대전의 빵집은 아니다. 사크레 쾨르라는 성당인데 영어로 sacred heart church니까 번역하면 성심당이다(튀소로 유명한 성심당도 가톨릭 기업이다). 파리의 교회치고는 최근에 지어졌다. 1919년 완공이니까 겨우(?) 백 년쯤..
어쨌든 이 성스러운 곳이 예술의 요람, 퇴폐의 온상이 된 것은 19세기말부터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높은 곳은 낮은 자들의 공간이다.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곳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고흐, 피카소, 르누아르와 같은 화가와 많은 문인, 시인들이 저렴한 방값을 내고 작품 활동을 했다. 신앙과 창작과 섹스는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이 언덕에 다 집결한 모양이다. 물랑 루즈로 대표되는 카바레들이 속속 들어섰다. 빨간 풍차(방앗간)란 뜻인데 어느 나라든 곡식을 빻는 장소가 뭔가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나는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는데 말이다 --;
쉴새없이 노래하면서 지루한 입장 대기를 위로한 버스커. 나중엔 찬양 인도자로 변신했다
아, 오늘은 부활절이다. 아까 사크레쾨르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희고 노란 옷을 입은 신부님이 나와서 소리쳤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기뻐하십시오!"라는 말을 세계 여러 나라 말로 선포했다. 수녀님들은 전단지와 둥근 계란(나중에 뜯어보니 초콜릿이었다)을 나눠 주었다. 한국말도 하려나 기다렸더니 라틴어를 끝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침 한참 전부터 성당 입구에서 팝송을 부르던 흑인 버스커가 반주를 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성과 속이 결합하는 기묘한 광경이었다. 할렐루야 떼창 찬송이 언덕을 뒤덮었다(동영상으로 찍어놓길 잘했다). 아마 백 년 전에도 프랑스인들은부활의 기쁨을 침대 위에서 예술적으로 나누었을 거다. 신앙과 예술과 사랑이 삼위일체였던가?
두 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미사는 없었다. 아쉽진 않았다. 아까 성직자들의 퍼포먼스면 충분했다. 30분 정도 쉬며 기도하다가 나왔다.
성당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테르트르 광장은 화가들의 공간이다. 초상화나 파리가 기념될만한 그림을 그려 판다. 계단이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버스커들이 있다. 지금도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눈과 귀로 아름다움을 느끼라는 배려 같다. 몽마르트르 공동묘지 들러서 이곳 에베스 역까지 오는데 무려 세번이나 호객을 당했다. 섹스숍, 누드쇼 같은 간판이 보였고 누군가가 자꾸 따라붙었다. 할머니에 근접한 어떤 나이든 아주머니는 재패니즈 섹스돌 어쩌고 하면서 쫒아왔고 중년 남자 한명은 뷰티풀, 뷰티풀을 연발하며 따라왔다. 어쨌든 그런 곳이다. 예술과 외설은 한끗 차이라더니 여긴 아예 한몸인 듯.
테르트르 광장에서는 아름다운 여자들을 맘껏 구경하고 사진 찍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파리지엥들은 오늘만 산다는 말이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도다음 역 표시가 없다(우리는 앞뒤로 다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안내방송도 지금 도착하는 역만 알려준다. 심지어 신호등 깜박거림도 없다. 그냥 초록이었다가 갑자기 빨강이다.앞의 일을 걱정하는지 안 하는지는 그들의 보험증서나 적금통장을 뒤져볼 수 없으므로 모르겠다. 다만 미래의 소유보다 현재의 존재에 돈을 쓰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이것도 상대적이겠지만 말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교통에 대한 인상 몇 가지 더. 여긴 무단횡단이 많다. 양보운전은 없다. 우리처럼 성격이 급해서는 아닌 거 같다. 고집이 세서가 맞을 것이다. 내가 내 길을 가는데 뭔 상관이야라는 듯 차를 몰고 길을 간다. 개선문을 둘러싼 사방팔방 길에 신호등이 없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방팔방 중 가장 큰 샹젤리제 거리다. 이 길만 나무를 정갈하게 깎아놨더라. 다른 길 가로수는 산발
가족들의 보행도 신기하다. 어느 정도 큰 아이들(5살 이후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부모 뒤를 쫓아간다. 우리 같으면 아이를 먼저 앞세우거나 손을 꼭 잡을 텐데 그런 거 없다. 부모가 그냥 앞장선다. 알아서 쫓아오라는 식이다. 어제는 이런 장면도 목격했다. 7호선 지하철역에서 어떤 엄마가 내렸는데 대여섯 살쯤 된 아이가 따라 내렸다. 2~3초 정도로 잠깐이었지만 그 사이에 문이 닫혀버리면 어쩌나 내가 다 식겁했다. 말 그대로 애도 뒷전인 것이다. 내가 먼저라는 개인주의 성향이, 내 멋을 따라 내 멋대로 살 거라는 그들의 태도가 느껴졌다.
저 아래쪽 화살표가 계속 거슬린다. 우린 뒤로 가란 뜻인데 여긴 전진이다. 차이는 불편함을 만들지만 불편해야 차이를 인정할 수 있다
시비는 없고 차이만 있다는 뻔한 결말로 사랑해 벽을 떠나야겠다. 새 숙소에는 또 어떤 룸메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