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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겨울 터널

종이에 수채, 색연필


젠은 이혼 후 18살이 된 아들을 혼자 키우기 시작했다. 평소 남편을 닮아 말이 많고 활달하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말이 없어지고 자신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 그녀의 걱정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들을 잘 모르는 건지 그저 주변에서 말하는 사춘기라서 그런 걸까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모든 게 다 자신의 잘못 인 것만 같았다. 엄마와 살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역시 나는 잘못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안도했지만 이제는 왜 아들이 자신과 살고 싶다고 했는지 그 영문을 전혀 모르겠는 마음 어었다. 그렇다고 왜 나랑 살겠다고 했냐며 질문할 수도 없는 것 노룻이었다.

 젠은 흉악한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일을 주로 맡는 변호사였는데 딱히 그들을 옹호하거나 자신만의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1987년 젠이 살던 뉴욕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우연히 변호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성공적인 변호로 범죄자들의 변호를 맡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바쁘게 사건 변호를 준비하던 어느 날 그녀는 아들 론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에게 전화를 받게 되었다. 론이 선생님을 상대로 선정적인 장난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젠은 무척 놀랐지만 차분하게 정확한 상황에 대해 물었다. 론이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여선생의 나체를 그려 수업시간에 돌려가며 야한 농담을 적게 했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그런 나체를 그려 친구들에게 야한 농담을 하도록 적게 유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교장은 매우 화가 나 있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되도록 차분하게 얘기하려는 듯했다. 젠이 매스컴에도 나온 유명한 변호사라는 걸 모르는 선생들은 없었고 교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장은 그런 유명한  변호사의 자녀가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젠은 교장의 말을 듣고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장난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로 잡고 죄송하다며 아들을 많이 신경 쓰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며 여러 번 반복해 말했다. 다행히 론의 반성으로 일은 넘어가는 듯했다. 

젠은 그 사건이 있고 약 2주가 지난 후  론이 좋아하는 과자들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재판이 없는 휴가를 아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위층에서 여러 명의 신음소리가 들렸고 신발과 옷들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젠은 계단을 올라가 론의 방으로 향했다. 심장이 이렇게 크고 빠르게 뛰는 건 이혼 전 남편과 크게 싸운 이후 처음이었다. 그녀는 발이 풀려 몇 번을 계단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론의 문 앞까지 다다랐다. 1층에서 들렸던 소리보다 훨씬 크고 적나라한 소리가 들렸다. 젠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론과 또래의 남자아이들 두어 명과 중년이 조금 안되어 보이는 여자들 몇 명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조금 지나서야 론과 다른 몇 명들은 젠이 서있다는 걸 눈치챘다. 술을 먹은 것인지 약을 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젠은 그제야 집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론은 벌거벗은 채로 젠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론의 옆에 있던 여자들은 빨갛게 변한 얼굴로 웃으며 옷을 입고 같이 있던 남자들과 나갔고 론과 젠 만이 넓은 방 안에 남았다. 젠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리 론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랬지만 론은 아무 말 없이 옷을 입고 나가버렸다. 젠은 론이 나간 후 자정이 넘어서까지 론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나다가 이내 또 눈물도 나지 않을 정도의 상태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론은 그렇게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젠은 남편과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싸웠다. 싸움에 끝은 없었고 어떠한 해결책이 생기기보다는 원망과 비난이 오고 갔다. 젠은 자신이 범죄자의 편에 서 왔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정리할 게 없는 론의 방을 청소하던 젠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계단을 내려갔다. 론이 서 있었다. 젠은 론에게 곧장 다가가 론을 안았다. 그리고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미안하다는 말과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론은 어디에 있었는지 그날만에 있었던 상황의 전말이라던지 이유와 같은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단지 죽고 싶다는 짧은 말로 입을 얼었다. 젠은 론과 함께 정신병원과 상담사를 찾아갔고 론이 성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론은 치료와 상담을 병행했고 젠의 아들이 성중독이라는 이야기는 유명 언론사 사이에서 급격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젠은 그러한 모든 상황과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뚜렷한 시작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또 끝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빛이라고는 없는 긴 터널 속에 아들과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이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이자 론이 80번째 상담을 마친 날 젠은 웃으며 아들에게 농담을 던지고는 론이 좋아하는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햄버거를 시키고 밖을 바라보던 젠에게 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옅은 미소가 론의 입가에 뗘졌다. " 저 햄버거 장난감 말이야, 어릴 때 저걸 갖고 싶어서 쳐다보고 있으면 엄마가 꼭 햄버거를 두 개씩 사서 저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젠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론을 보고 론의 손에 햄버거 장난감을 쥐어주었다. 론은 그제야 젠의 눈을 바라봤다. 서로의 청록빛 눈이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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