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슬픔은 딛고 서있는 땅을 질척거리는 진흙밭처럼 만들어버렸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그 진흙밭에 발목이 잡힌 채 버둥거리기 일쑤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파리지옥처럼 호시탐탐 나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기력하고 무력하며 위험했던 내게 할머니는 매일같이 찾아와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 내 옆에서 조용히 뜨개질을 하거나 내 머리를 빗어주거나 옛날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자신의 딸이 죽었음에도 할머니는 내 우울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지켜냈다. 내 오랜 우울은 봄이 되면 꽃이 아닌 난리를 피웠기에 봄은 나와 할머니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는 위험한 계절이었다. 몇 번의 자살기도 후 나는 내 삶의 공백에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죽었어야 할 내가 살아있다니 끔찍하고 괴로웠으며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그런 봄이 지나가는 어느 날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해 줄 말이 있다며 따뜻한 봄볕이 드는 창가 옆에 나를 앉히고는 얘기했다. 10살도 채 넘지 않은 내 작은 손과 손목의 상처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할머니는 나를 봄볕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