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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03. 2020

주한미군, 그것이 알고 싶다.

주한미군에 대한 질문과 답변 

누군가를 만나 주한미군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하면 으레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아 꼼꼼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자칫 두루뭉술한 답변은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 공간을 통해 그동안 받았던 질문들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적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세요?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에서 선임소방검열관으로 근무하는 이건입니다."

"아, 네..."


1. 그러면 국적이 미국인가요?

이건: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모두 미국 사람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주한미군에도 한국인 직원이 약 12,000명 정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에서 직접 고용한 한국인 직원 (USFK Direct-Hire Korean Employee)'이 정확한 제 법적 신분입니다. 간혹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이 자신을 미 군무원이라고 소개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는 올바른 표현은 아닙니다.   


2. 아하, 그렇군요. 그러면 월급은 달러로 받나요?

이건: 월급은 한국 돈으로 받습니다. 참고로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은 월급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따라 '충당자금 (Appropriate Fund)'과 '비충당자금 (Non-Appropriate Fund)'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충당자금의 경우 만약 월급이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월급의 75% 정도를 한국 정부에서 지급하는 방위비 분담금으로, 나머지 25%는 미 국방부 예산으로 지급됩니다. 대부분의 포지션이 정규직이며 고용 안정성이 비충당자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장점입니다.   

 

비충당자금은 영업이익을 통해 급여를 지급하는 직책 말하며, 푸드코트, 골프장, 볼링장, 클럽 등에서 근무하는 포지션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임시직이 많고 충당자금에 비해 다소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부대 내 면세 매장을 이용할 수 있나요?

이건: 간혹 지인들로부터 부대 내 면세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해 달라는 곤란한 요청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직원은 원칙적으로 부대 내 면세 매장인 'PX (Post Exchange, 미 육군)'나 'BX (Base Exchange, 미 공군)'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외 출장 등 공식적인 업무나 구매를 승인받은 경우에 한해서는 이용이 가능합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BX 입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BX 내부에 판매할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4. 부대 내 외국인 학교에 한국인 직원의 자녀를 보낼 수 있는가요?

이건: 학교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니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 (Status of Forces Agreement)'의해 일부 예외 규정이 있긴 하나, 원칙적으로 한국인 직원의 자녀는 입학할 수 없습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고등학교 운동장. 종종 미식축구 경기가 열린다. 


참고로 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지역 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Global Leader Program' 등의 이름으로 미군기지 내 학교에서 한시적으로 수업을 듣기도 합니다.  


5. 부대 내 관사가 제공되나요?

이건: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사령관을 수행하는 운전기사의 경우와 같이 직무의 특수성이 인정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관사가 제공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관사 내부


6. 4대 보험이 적용되는가요?

이건: 네, 맞습니다. 4대 보험이 적용됩니다.


7. 보통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이건: 사무실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오전 7시에 업무를 시작해서 오후 3시 30분에 마칩니다. 점심시간은 30분을 사용하지요. 다른 사무실의 경우에는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또는 4시 30분에 퇴근합니다. 물론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부서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초과근무는 기본적으로 예산이 있어야 가능하며 사전에 직장 상관에게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눈치 보지 않고 칼퇴근이 가능합니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면 조금 더 남아서 일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연봉보다는 적절한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과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한미군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어준 놀이터이자 사무실


8. 휴가제도는 어떻게 되나요?

이건: 주한미군 규정 (USFK 690-1, 2017년도판)에 관련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선 휴가 (연가. 병가)는 근무년수에 따라서 시간이 마일리지처럼 적립이 됩니다. 예를 들면 연가의 경우 근무년수가 8년 차 미만인 직원은 매월 8시간, 8년 차부터 15년 차 미만은 12시간, 15년 차 이상은 16시간이 적립되며 30분 단위로 쪼개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병가의 경우 근무연수에 상관없이 매월 8시간이 동일하게 적립됩니다.


9.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 채용공고에 지원하려면 나이 제한이 있는지요?

이건: 원칙적으로 만 18세 이상부터 만 59세 미만이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나이 장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취업의 상한선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 역시 개인차가 있습니다. 참고로 경비요원과 소방관의 경우에는 만 35세 미만이어야 합니다.


10. 채용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이건: 채용은 공석이 생길 때만 채용하는 수시채용의 방식이 지배적입니다. 보통은 서류전형 - 영어시험 - 신체검사 또는 체력측정 (소방관의 경우) - 면접 또는 실기평가 (기술직, 기능직의 경우) 순으로 진행되며 대략 1-2개월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11. 급여나 퇴직금은 어떻게 되나요?

이건: 대졸 수준인 사무직 (KGS) 5급을 기준으로 보면 연봉이 3,570만 원 수준입니다. 기존에는 보너스가 800퍼센트였으나 2020년 1월부터 보너스는 200퍼센트로 바뀌고 나머지 600퍼센트는 기본급에 포함됩니다. 퇴직금은 매년 5월에 지급됩니다. 공무원 연금이나 군인 연금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본인 스스로가 퇴직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12. 정년은 몇 살까지인가요? 

이건: 정년은 60세이고요. 연장이라는 특별한 제도가 있어서 근무평가, 체력 테스트 (소방관의 경우) 등을 고려해 직장 상관의 승인이 있으면 8년 더 연장해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이지요.  


13. 복지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요?

이건: 우선 자녀 학비지원이 있습니다. 자녀수 제한 없이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자 보조금이 지원되는데, 대학생 자녀 1인당 일 년에 671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무년수에 따라서 지급되는 소정의 상금제도가 있습니다. 특이한 것으로는 휴가 기증 (Leave Donation)이란 제도가 있어서 큰 부상이나 사고를 당해 본인의 휴가를 다 사용했을 경우 인사처에서 관리하는 휴가은행 (Leave Bank)를 이용하거나 또는 다른 직원들로부터 휴가를 기증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를 남용해서는 안 되겠죠. 


마지막으로 주한미군에서 15년 이상 근무하면 특별 이민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받았던 질문들을 중심으로 자세히 적어 보았다. 주한미군에서는 억대 연봉을 기대할 수 없다. 또 대기업처럼 몇 천만 원씩 성과급을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워라밸이 중요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불필요한 의전이나 행정에 지쳐 인생의 재미와 방향을 잃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주한미군이 하나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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