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 Dec 22. 2023

겨울 이야기

[소방서 다이어리]

Prologue: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가감 없이 적어 보려고 합니다. 부디 이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소통을 통해 내 작은 세상도 더 풍성해 지길 기도해 봅니다.


이번 주 북극발 한파가 몰려오면서 소방서의 하루가 더욱 분주해졌다. 출동 도로는 미끄럽고 추운 날씨는 소방대원들의 현장 활동을 위축되게 만든다.


새벽엔 한 공사업체가 관리하는 컨테이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밤새 전동 드릴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꽂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화재조사를 위해 현장에 도착하니 공사 관계자들과 엔지니어들이 근심 어린 얼굴을 하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혹시 몰라 비니를 썼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금세 얼굴과 귀가 먹먹해진다. 빨갛게 얼어 버린 귀를 연신 비비며 화재가 발생한 패턴, 관계자 인터뷰, 그리고 화점이라고 생각될 만한 장소, 또 전기가 어디서부터 연결된 것인지 등을 확인하다 보니 온몸이 얼어붙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내부에 CCTV가 있었다면 그나마 조사가 수월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소위 “다 타버린 재로부터 진실을” 찾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행히 관계자의 적극적인 협조와 진술을 통해 보고서가 완성되었지만 아직 다른 일들이 더 남아 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추위를 견디지 못한 배관들이 동파되면서 무전기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파가 몰려올 때마다 치르는 의식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신호일까?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올 한 해에는 우리 소방대원들의 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미군 소방대원이 심장 문제로 순직했을 때는 많은 소방대원들이 힘들어했었다.


이제 며칠 남지 않는 2023년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잘 마무리되길 바라며 2024년도에는 더 안전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이전 09화 회식의 역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