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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May 03. 2024

순직소방공무원 추모기념회를 만나다...

[Memories in Fire] 2015년의 쓸쓸한 기억

해마다 대전 국립현충원에서는 순직소방관을 위한 추모식이 개최된다. 최근에는 소방청은 물론이고 여러 정부기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 주고 있지만 내가 맨 처음, 그러니까 2015년에 사단법인 순직소방공무원 추모기념회라는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방문했던 추모식 현장은 매우 초라함 그 자체였다.


미국의 순직소방대원 추모식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너무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니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해 미 전역에서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소방대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행사 진행을 돕고, 유가족 안내 등을 맡는다.


이런 성대한 추모식 행사는 순직한 소방대원들의 숭고한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겨진 유가족들을 어떻게 지원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추모식 장소에 도착해 사무총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린다. 그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서 해마다 추모식을 개최하는 것이 큰 부담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모식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일이 너무나 중요해서 손을 놓을 수 없다고도 말한다.


추모식 비용 또한 개인의 사비,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충당하고 있었고, 예산이 부족할 경우에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사용한다는 사실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우리의 소방관들과 그 유가족들이 이런 홀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2015년 당시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홈페이지에 있던 <순직소방관추모관> 링크에 접속해 보면 순직한 선. 후배 소방관들에게 과연 정부가 최선의 노력과 충분한 예우를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홈페이지 관리도 그렇고 방문객 숫자도 미미했다. 마치 “오려면 오고 가려면 가라”는 식의 무관심의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추모식 행사를 위해 준비해 간 나의 기도문은 자리를 함께 해 주신 분들의 기도문이 되었고, 낭독하는 내내 울컥했던 내 마음이 곧 그들의 마음이 되었다.   


2015년 제12회 순직소방공무원 추모기념식에서 기도문을 낭독하고 있다. (출처: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그렇게 순직소방공무원 추모기념회와 관계를 맺고 그 이후 몇 차례 더 만남을 가졌다. 한 번은 추모기념회 회원분들을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에 초대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미군 소방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 방문한 소방청 홈페이지 추모관에는 따뜻한 추모의 글들이 가득 차 있고 순직소방관 추모 백서도 올라와 있다. 해마다 열리는 추모식이 그 규모를 갖춰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미국의 '순직소방대원재단(National Fallen Firefighters Foundation)'이 해마다 몇 백 억 원의 예산을 가지고 순직소방대원과 그 유가족, 그리고 동료 소방대원들을 위해 마련하고 있는 유가족 네트워크 프로그램, 유자녀 장학금 수여, 힐링 캠프, 추모식에 대통령 초청, 순직을 예방하기 위한 연구 및 교육 활동 등과 비교해 보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낀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순직한 소방관을 잊은 소방에게 미래 또한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순직한 소방대원들과 그 유가족을 위한 의미 있는 고민들을 시작해 주기 바란다.



아래의 기도는 2015년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 당시 제가 낭독했던 내용입니다. 부디 이 기도문이 더 이상 회자되는 일이 없도록 지구촌의 모든 소방관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자신의 한 목숨 생각하지 않고 달려간 당신은 삶의 계산이 매우 서투른 사람입니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한 생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뜨거운 불길도 마다하지 않은 당신은 참으로 고집불통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정작 자신의 가족조차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당신은 정말 모진 사람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묵묵히 일했던 바보 같은 사람!


식사를 하다가, 혹은 잠을 자다가도 출동벨 소리에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던 자랑스러운 당신이 바로 나의 아버지요, 아들이요, 사랑하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를 많이 믿고 더욱 의지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생명의 시간을 나누어 주고, 자신의 한 몸도 무거울 텐데 다른 이들을 등에 업고, 또 품에 안고 나오는 그대 덕분에 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신께서 주신 숭고한 소명을 마무리해야 하는 생사의 문턱에서 당신은 얼마나 외롭고 또 두려웠을까요?


당신과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당신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보듬어 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소방관이 되겠다고 고집부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당신의 고귀한 선택을 존중하며, 그 숭고한 마음의 길을 따르고자 합니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소방관은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또 아무나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인가 봅니다.


그대들이 지켜주신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이 이제는 당신의 가족을 돌보겠습니다.


부디 출동 벨 없는 천국에서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소서. 그리고 누군가가 다치거나 순직하지 않도록 하늘에서도 우리의 손을 꼭 붙잡아 주소서.


#소방관 #이건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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