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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김 Sep 10. 2022

레드벨벳 Feel My Rhythm, 바흐,오필리아

오만과 편견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다. 밀레이의 오필리아 그리고 바흐

발행시간: 2022년 9월 10일 00:25

copyright reserved @ 지나김

글쓴이 지나김 (예술마케터 & 예술감독)


알고보면 소름돋는 이유있는 클래식 샘플링

작곡가의 이상을 담은 아이돌과 K팝

레드벨벳 Feel My Rhythm과 바흐, 오필리아

[오만과 편견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다. 밀레이의 오필리아 그리고 바흐]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거실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 우울함을 넘어 약간의 섬뜩함까지 담고 있는 그림 하나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방송에서는 화가 밀레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나름의 사춘기 앓이를 하던 시기의 감수성 풍부한 여중생이었던 나는 작품이 담고 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오함과 강렬한 감정을 느꼈고,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날 정도다.  

화면을 통해 보인 그림은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작품 '오필리아(Ophelia)'였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1829-1896)

그림을 보며 나는 이미 1600년경의 덴마크 어느 숲 속 물가에 가 있는 듯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문득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가 뇌리를 스쳤다.


'오필리아'가 왜 그렇게 내 심장을 사로잡았는지

또 '바흐' 'G 선상의 아리아'가 왜 떠올랐는지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누군가는 분명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K팝그룹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바흐'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 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의 공식 뮤직비디오는 클래식 음악 샘플링뿐만 아니라 약 10여 편에 이르는 명화를 오마쥬 하여 제작했다.


도입부에 'G 선상의 아리아'가 흐르며

오마쥬 된 명화 중 하나가 화가 밀레이의 '오필리아'다.

레드벨벳 Feel My Rhythm 공식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오마쥬 했다.


'오필리아'는 영국 출신 세계 최고의 극작가라 불리는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 흔히 줄여서) 희곡 '햄릿'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알려진대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이들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초래되는 비극적 이야기를 전한다.

희곡 '햄릿'의 주인공인 덴마크 왕자 햄릿은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구나
잔인한 운명의 화실을 받고도
마음속으로 꾹 참아내는 것과,
무기를 들고 고난의 바다에 감연히 맞서서
그걸 박멸해버리는 것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인가? ..........
여기서 망설여지는구나 ㅡ
그렇다, 오직 이 망설임 때문이다. (햄릿 제3막 제1장 Scene1 중에서)


'햄릿'이란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어도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햄릿'의 대사다.  

수많은 연극, 문학에서 사랑받고

많은 매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되는 문구다.


'햄릿'의 내면에는 선왕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 자신의 어머니를 빼앗고 아들로서 당연히 물려받아야 할 자신의 왕위까지 찬탈해 간 악인인 삼촌, 클라우디우스를 향한 복수심이 들끓는다.

사랑하는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정욕과 권력이라는 욕망에 굴복한 배신자이기도 한 어머니를 향한 증오심도 가득하다.


작품 '햄릿'은 격정적 분노와 이성 간의 갈등 그리고 사랑과 증오라는 양가감정 사이에서, 그토록 우유부단해질 수밖에 없는 생각 많은 한 인간으로서의 '햄릿'에 관한 이야기다.

양립할 수 없는 가치 사이에서 질서는 무너지고 그 불균형이 삶의 파괴를 불러온다.  


이러한 설정은 '햄릿'이라는 작품 속 인물의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닌 부조리한 사회구조 혹은 관계의 균형이 깨진 가정 내에서 누구나 겪을만한 상황이기에 고전작품이지만 지속적으로 리메이크 되고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편에 소개하는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에 이어, 화가 '밀레이' 뿐 아니라 (이번 편에서는 생략하지만 '워터 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와 같은) 여타 예술가들 중에는 주인공 '햄릿'이 아닌 '오필리아'에 집중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그저 주인공의 스쳐 지나간 연인에 불과한 '오필리아'를 조명한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오필리아는 클라이디우스의 재상 폴로니우스의 딸이다.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오필리아 역시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와 오빠 레어티스는 햄릿의 사랑고백은 "젊음의 일시적 기분이거나 한때의 바람기(레어티스의 대사 중)"에 불과하다며 그녀의 사랑을 만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비밀리에 사랑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햄릿은 그의 어머니이자 왕비인 '

거트루드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그녀의 방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 경을 클라우디우스로 착각해 찔러 죽이게 된다. 이 사건으로 햄릿은 역적으로 몰리고 그의 왕국인 덴마크를 떠난다.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연인 햄릿에 의해 아버지가 우발적으로 살해되고, 그가 역적에 몰려 떠나버리는 끔찍한 상황에 처한다. 결국 그녀는 미쳐버리고 스스로를 죽음까지 내몰아버린다.


왕비 거트루드: 버드나무 가지가 시냇물 위에 비스듬히,
은백색 잎사귀를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치고 있는 근처에서 그 앤 어린가지로 이상한 화관을 만들고 있었데-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데이지, 그리고 자란을 곁들여서.
그 자란을 망나니 목동들은 상스런 이름으로 부르지만,
얌전한 처녀들은 죽은 이의 손가락이라고 하지.
어쨌든 늘어져 있는 버들가지에 그 애가 예쁜 화관을 걸기 위해 올라갔을 때,
짓궂은 가지가 부러지면서 잡초호관과 함께 그 애는 시냇물에 떨어지고 말았어.
옷자락이 펴져서 인어와 같이 잠시 떠 있는 동안, 그 애는 찬송가를 띄엄띄엄 부르고 있었대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과 같이.
(햄릿 제4막 중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을 발견한 뒤 왕비인 거트루드의 대사 중)


오필리아의 죽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화관을 만들다 손에 쥔 채 물에 빠져 죽은 그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불운의 사고인지 혹은 죽음을 자처한 것인지 모호한 상황이다.


그러나 적어도 왕비의 묘사는 가련한 오필리아의 슬픔과 억압 그리고 그로 인한 숨 막히는 처절함까지 전한다.

작품은 조연인 오필리아의 감정까지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기에, 그녀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마녀사냥이 난무하며 여성의 신분이 미천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 사랑하는 연인이 휘두른 칼에 아버지가 죽고, 연인까지 떠난 채 사회적 보호자 없이 홀로 남겨진 한 여성이 작품에서 비친 것처럼 정말 미쳤던 것인가에 대한 약간의 의문도 있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미친척을 했던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오필리아라는 인물에 집중할수록 궁금해지는 여러 의문점을 해소해주듯 풀어낸 작품이 마침 있다.


영화 오필리아 포스터

클레어 맥카시 감독, 오필리아 역에 데이지 리들리, 햄릿 역의 조지 맥케이가 캐스팅된 2021년 개봉작 영화 오필리아다.

영화 속 오필리아는 더 이상 억압당하는 가녀린 여성이 아니다. 지성과 총명함으로 가득한 당찬 젊은 여성이다. 원작과 같이 충격에 빠져 힘없이 미쳐버리는 여인도 아니다. 화가 밀레이가 묘사한 손에 꽃을 꼭 쥔 채 뭍에 빠진 오필리아를 여전히 만날 수는 있지만,그것이 그녀의 삶의 끝이 아니다. 영화 속 오필리아는 오히려 정의를 향한 투쟁과 희망의 아이콘이다.  


작품 속 시대적 상황에서 설정해 놓은 당대의 여성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모습은 공교롭게도 레드벨벳이 추구하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상상'과도 닮아있다.



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
우릴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마 자유로워 지금
Feel my rhythm Come with me 상상해봐 뭐든지
온 세상 모든 경계를 다 휘저을래 꽃가루를 날려
더는 어제와 내일에 가두지 마 자유로워 지금 (Feel My Rhythm 가사 중)


사회가 만들어 낸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 모든 경계를 휘젓는 레드벨벳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꽃 뭉치를 쥐고 세상의 경계를 넘어가고 싶었던 오필리아의 모습을 닮았다.


이즈음에서 'G 선상의 아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자면, 이 곡을 작곡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865-1750)라는 엄청난 작곡가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처럼 유명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여느 평범한 음악가들과 같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힌다.


현 시대에 클래식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그가 살아 생전에는 그저 평범한 음악인 정도로 알려졌다는 것 또한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여하튼,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Air on G)'는 그의 작품 중 '관현악 모음곡 제3번(Orchestral Suite No. 3 in D major BWV 1068)'의 제2악장 '아리아'를 19세기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빌헬미(August Wilhelmj, 1845~1908)가 바이올린 독주로 편곡한 버전이다.


 '관현악 모음곡 제3번'은 바로크 시대(1600-1750)에 작곡한 곡이지만 낭만파 시대(1815-1960)의 음악과 닮아있다. 바로크 시대에 탄생한 작품이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처럼 굉장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 중 일부를 축약해서 전해 본다.


바로크 음악은 규칙적인 박자와 통주저음 기법(주어진 단음의 저음 위에 즉흥적으로 오른손 파트를 연주하는 방식) 등을 포함한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은 이러한 시대적 음악적 색채를 다소 갖고 있음과 동시에 다가오는 시대적 음악의 특징을 모두 품고 있다.


예를 들어 고전파 음악이 추구한 자연스러움과 화려함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 음악에서 주로 나타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바흐'는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1809-1847)'을 비롯한 이후의 음악가들에게 가장 사랑받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을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을 정도로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높이 평가되었다.



시대의 형식과 틀을 넘어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작품, 'G 선상의 아리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들끓던 시대, 갈 곳 없던 '오필리아'가 추구한 죽음 넘어 세계를 향한 이상


영화 오필리아에서 각색한 편견과 상식을 모두 뛰어넘어 왕자 햄릿이 사랑한 오필리아


오만과 편견을 뒤로하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상상'을 갈구하는 노래 'Feel My Rhythm'


이들은 모두 사회가 만들어 낸 형식과 상식에 가려진 범주와 영역을 넘어서는 자유와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이 닮아 있다.


14살 내가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보며 'G선상의 아리아'를 떠올렸던 것,


그리고 'Feel My Rhythm'이란 K팝에 특별히 'G 선상의 아리아' 와 명화 '오필리아'가 덧 입혀진 것은

이처럼 묘하게 같은 이유란 생각과 함께 이번 편을 마무리해본다.  




바흐 G선상의 아리아 감상하기

J. S. Bach: Aria from third Orchestral Suite in D major BWV 1068 I Musici di Roma 출처 크레디아TV 유튜브 채널


글 예술 마케터 지나 김

발행시간: 2022년 9월 10일 00:25

본 글은 무단 배포 및 무단 복제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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