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늦은 오후 전화가 왔다. 하교 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응. 아들. 체육관 안 갔어?"
"정형외과 병원 왔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해?"
퉁명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조금의 두려움이 섞인 말투였다. 소아과는 매번 내가 예약을 해놓으면, 아들은 가서 이름을호명하면 진료받았었다. 그런데 나에게 말도 없이 혼자 찾아간 정형외과는 어찌할지 몰라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우선 접수를 해야 하는데? 접수했어?"
"그게 머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 간호사 누나들 앉아서 있는 곳이 있을 텐데? 이름도 물어보고 그러는 곳. 그쪽으로 가서 물어봐봐."
이야기를 들으며 접수 데스크를 찾는 듯했다. 휴대폰으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간호사라고 생각 드는 여성분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접수 데스크 직원으로 짐작되는 분과 통화를 하며 아들의 진료 접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이제 이름 부르면 진료받으면 돼. 아들 그렇게 많이 아팠어?"
"걷는데도 불편해. 뛰지도 못하고 점프도 못하겠어. 근데 어른들이 엄청 많아."
"그 병원은 어린이들만치료받는 병원이 아니라, 어른들도 치료받는 곳이라 그래. 오래 기다려야 할 텐데. 괜찮겠어?"
"응. 괜찮아. 폰 보면서 기다리면 돼."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아침에 다리 아프다고 했던 것에 대해, 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크게 다친 거 아닐 거야. 진료받고 아빠한테 꼭 전화해."
나도 덤덤하게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일을 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초등학교1학년부터 혼자 병원 다니게 한 아들에게 미안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아플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하다니. 어른도 몸이 아프면 괴로운데 말이다. 마음은 달려가서 안아주며 안심시키고 같이 있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오전에 딸의 부모 참관 학습에 다녀오면서 점심때 출근했기에 조퇴하기에는 눈치가보였다.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 몸이 두 개였으면 한다. 부모로서 아이들과 함께 해줘야 할 시간이 있다. 아이들의 학창 시절과 부모를 필요로 하고 함께 해주길 원하는 시기는 한 번뿐이지 않은가.
일도 성실히 해야 한다. 금전적으로 부족하게 되면 아이들 배우고 싶다는 학원도 보내지 못한다. 용돈도 아이들의 친구들과의 사회생활에 필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셋이 가까운 여행도 다니며, 어린 시절 추억도 만들어야 한다. 돈이 꼭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없으면 무엇하나 할 수도, 즐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퇴근하고 집에서 아들의 다리를 보니 절뚝거리며 걷는다. 물어보니 물리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처음 물리치료를 받은 것이 신기했는지, 나에게 치료받던 상황을 재잘재잘 떠들었다.아들의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했다. 절뚝이는 다리로 혼자 병원부터 약국, 집으로 걸어 다녔을 생각을 하니 더욱 그랬다.
나는 오늘도 몸뚱이가 부족해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뿐인 것 같다. 나 자신을 자책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불필요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자신을 자책해 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