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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Feb 21. 2024

강간범을 때려라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평일 밤이었는데 한국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고 파사이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급히 담당 영사와 해당 경찰서를 찾았다. 이미 용의자는 잡혀서 수갑을 차고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얼굴이 좀 상해있었다. 먼저 피해자를 만났는데 예상했던 것과 분위기가 좀 달랐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였는데 어려서 필리핀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다는 그녀는 웃으며 따갈로그어로 경찰관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대사관에서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며 실제로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니고 마닐라 국제공항 경비원으로 일하는 현지 남자와 사귀는 관계였는데 그 남자가 언제부터 연락도 받지 않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화가 나서 허위로 신고를 했다고 자백했다. 대사관에서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냐고 물어보니 이미 남자는 경찰에게 혼은 좀 난 것 같지만 아까 경찰서에 끌려와서 본인을 보자마자 나중에 가만히 안 놔두겠다고 했다고 이제는 만나기가 무섭다며 접근 금지 약속을 받아달라는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담당 경찰에게 조사받던 그 남자와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담당 수사관은 알겠다는 듯이 우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들이 이미 때렸으니 옆 방으로 데려가서 때리면 된다며 부하 경찰을 불렀다.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대사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묻길래 그건 맞는데 우리가 왜 그 남자를 때리냐고 되물으니 중국 대사관에서 아니냐고 해서 한국 대사관에서 왔다고 신분증을 보여주니 그 경찰은 그제야 우리를 쳐다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착각했다며 중국 대사관에서 나온 영사나 직원들은 중국인에게 가해를 한 현지인이나 범죄를 저지른 중국인을 만나면 경찰에게 양해를 구하고 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강간범들은 예외 없이 때린단다. 


가끔 공항에서 국외도피범 강제송환을 할 때 다른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중국 대사관 직원들은 서슬 퍼런 기세가 남달랐던 기억이 난다. 송환되는 범죄자들도 대사관 직원이나 호송관인 중국 공안들의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는 것 같았다. 중국으로 송환되는 범죄자들은 대부분 마약이나 부패사범 들인데 본토에 돌아가면 재판에서 중형을 피하기 어렵고 사형당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그 남자에게 다시 저 여자에게 접촉을 하거나 협박을 하면 또 경찰에서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선처는 없을 거라고 하자 그 남자는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며 사건은 그대로 종료가 되었다. 필리핀도 아동과 부녀자에 대한 폭행은 일반 폭행보다 무거운 처벌로 다루고 있으며 강간의 경우는 더러 종신형을 받기도 한다. 반면에 허위신고를 한 경우에도 입증이 어려워 사실상 처벌은 없다시피 하니 이런 식으로 셋업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마닐라 말라떼에서 2~3인조로 이모와 딸이라고 속이고 실제로는 포주와 여자가 짜고 미성년자 강간사건으로 신고하겠다며 주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셋업을 일삼으며 합의금을 뜯어내던 일당이 있었는데 경찰서에서 나를 번번이 만나고 경찰에서도 한소리 듣고는 사업이 전처럼 잘 안된다며 다른 동네로 옮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그 후로는 못 만났다. 보통 관광객이 이런 일을 당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성매매로 처벌받거나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공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실제 피해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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