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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Feb 20. 2024

필리핀인 호소인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비쿠탄 Bicutan이라고 불리는 필리핀 이민청 외국인 수용소는 국외도피범이 검거되거나

필리핀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법체류 등으로 외국인이 추방되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인 수용자의 수가 평균 50명이 넘어가기 때문에 자주 이곳을 방문하여

면담도 하고 여권이 말소된 경우에는 여행 증명서도 발급을 해주곤 한다.


세부에서 체포된 이 남자는 영사면회를 거부하여 지문을 조회해 보니 한국인 수배자였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도 사기 혐의로 고소되어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강제추방이 어려운 상태였다.  이 남자가 영사면회를 거부하는 이유는 본인이 필리핀 사람인데 왜 한국 대사관 직원을 만나야 하냐며 착오가 있어서 들어온 거라 곧 풀려날 것이라고 이민청 직원을 통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다른 수용자 면회를 갔다가 옆에 있던 그를 맞닥뜨리게 되어서 잠깐 대화를 시도했는데 방금 전에도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던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서투른 따갈로그어로 아노 아노 ano? 하는 것이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좀 웃겼지만 참고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가 구사하는 영어나 따갈로그는 딱 들어도 어디 술집이나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듯한 수준으로 내가 필리핀에 온 지 6개월 되었을 때가 저랬다. 따갈로그를 왜 잘 못하냐고 하자 자기는 세부 출신이라서 세부아노를 한다고 하길래 담당 영사는 그럼 졸업한 학교이름이 뭐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답을 하지 못했고 필리핀 국가國歌를 불러보라고 하자 당황한 듯이 얼굴을 붉히며 달아나듯이 자리를 피하여 도망갔다. 


그게 벌써 8년 전인데 그는 아직도 거기에 있다. 현재 비쿠탄에서 가장 오래된 수용자이다. 필리핀에서 계류된 사건은 이미 끝났는데 억지로 다른 사건을 추가로 만들어서 계속 추방결정을 미루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지은 죄도 그다지 무거운 것이 아니어서 그 당시에 협조하여 추방이 되었다면 이미 죗값을 다 치르고 자유의 몸으로 다른 인생을 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는 최근에는 태도를 바꾸어서 가끔 면담을 신청하기도 하고 한국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도 하는데 필리핀에서 사건을 일으키길 때마다 계속 가명과 다른 생년월일을 써서 현지법원에서 서류조차도 꼬여있는 상황이다. 본인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악수가 되어 본인의 인생만 망가진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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