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사석에서 만난 교민이 대사관 비난을 심하게 하길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마닐라에서 운전 중에 과속으로 단속이 되어 교통위반 티켓을 끊게 되었는데
경찰이 뇌물을 주면 그냥 보내줄 것 같아서 약간의 실랑이와 흥정 후에 돈을 주었는데
나중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사관에 전화를 했는데 딱히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월급도둑놈들' 이란다.
실제로 이런 전화를 꽤 자주 받는다. 필자가 받았더라도 아마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다.
재외공관에서 주재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이라고 불이익을 주지 말고
주재국 국민에게 기대되는 수준의 공정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특혜를 요구할 수 없고 요구해서도 안된다.
입장을 바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교통위반을 하면 우리 경찰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봐줘야 하나?
해당국가 대사관에서 담당경찰에게 연락을 하면 없던 일로 해줄 것 같은가?
재외공관에 그런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나?
게다가 단속된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해당 경찰관의 소속과 이름도 모른다는데
그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필리핀 경찰이 부패한 건 사실이고 뒷돈을 받은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큰 잘못이지만
운전자가 실수를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하면 그냥 보내주기도 하고
설사 뇌물을 요구해도 그냥 원칙대로 티켓을 끊어달라면 끊어준다.
다만 벌금을 내고 면허증을 다시 찾고 하는 과정이 불편하니 뒷돈을 주고 무마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결정을 한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필리핀이 못 사는 나라라 깔보고 무시하고
돈 몇 푼 만 쥐어주면 뭐든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솔직해보자.
만약에 미국이라면 단속하는 미국 경찰에게 우리 돈 몇만 원 쥐어주고 그냥 보내달라는 말을 했을까?
아니 애초에 위반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통위반은 단순한 예이지만 실제로 필리핀에서 우리 국민에게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의
큰 원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력으로만 다른 나라를 깔보고 재단하면 안 된다.
현지인에 대한 오만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그들이 못 느낄 것이라 생각하나?
대한민국도 선진국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독일 광부, 간호사 파견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월남전 파병, 중동 건설근로자 등
우리 윗세대의 피눈물나는 노력과 희생이 있었고 이젠 예전에 우러러보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젠 우리도 선진국의 국민다운 품격도 갖추면 참 좋겠다.
솔직히 우린 경제력에 비하여 매너 등에서 국제적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남을 존중해야 본인도 존중을 받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