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유진목 《슬픔을 아는 사람》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안다는 것은...

  “오토바이가 달리는 동안에 길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문이란 문은 모두 열려 있는 집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골목을 오토바이는 빠르게 달려갔다. 거기서 나는 두 마리의 흰 닭과 세 마리의 커다란 소를 보았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커다란 벌판이 펼쳐졌고 듬성듬성 돌로 지은 묘비들이 보였다.” (p.45)


  여행이라고 부를만한, 마지막 이동을 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동하고 있는 동안 움직이고 있는 내게 집중하는 대신, 움직이는 내게 아랑곳하지 않는 주위의 풍경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고, 나는 여행을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바라보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적고, 바라보고 먹고 마시고, 바라보다 그만 바라보는 나를 응시하게 되는 그런 여행을 향하여 출발하고, 그련 여행으로부터 도착하고 싶다.


  “어디에나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느슨하던 마음이 이내 선연해진다. 나는 왜 여기서 태어난 게 아닐까. 여기서 태어난 사람은 왜 내가 아닐까. 그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무엇에 행복하고 무엇에 불행할까. 나처럼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까. 자주 일기를 쓰고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까. 말 못할 비밀을 가졌을까.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와는 사이가 좋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p.45)


  유진목의 《슬픔을 아는 사람》은 베트남 하노이라는 장소를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는 여행기이지만 베트남 하노이라는 장소가 원하는만큼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우리들의 표면 아래에 감춰져 있는 여러 감정들이고,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 중에서도 슬픔이라는 감정이 도드라진다. 환한 태양 빛 아래 무더운 나라에서 도드라지는 슬픔, 그 아이러니가 여행 내내 함께 하는 것이다.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내가 있고 싶은 곳과 있고 싶지 않은 곳을 알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는 밝은 곳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어 온 것이다. 무엇도 나를 압도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에도 압도당하지 않고 단지 계속해서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에만 순순히 이끌리고 싶어 온 것이다. 아름다운 것도 싫고 추한 것도 싫고 끝없이 펼쳐진 자연이나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산물들에 감탄하는 것도 싫어서 온 것이다. 나는 그저 그늘이 아닌 밝은 곳에서 더이상 화내지 말고 분노에 차 있지 말자고 사십 도의 햇빛 아래 서서 다짐했다.” (p.82)


  작가가 겪는 고난을 여기저기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겉으로 실체화된 고난도 고난이겠지만 겉으로 실체화되지 않는 감정의 고난도 만만치 않겠구나 짐작했던 기억도 있다.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베트남을 향한 연거푸의 여행은 그 고난의 여정 끝에 이뤄지고 있는, 다 끝나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고난에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의지의 일환으로 보이는 것은 그 기억들 때문인 듯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p.92)


  내게는 작가의 그런 성향이 없어 부딪치는 대신 피하고, 마주치는 대신 주로 돌아선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나는 아예 슬픔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슬픔을 말해본 적은 있지만 가슴으로 들이닥친 슬픔을 대면할 힘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육체를 피로하게 만들어 여러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줄이는 데에 몰두하며 일 년여가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직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불행은 어두운 밤길과 같다. 가로등도 없고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어둠뿐인 밤길과 같다. 어디선가 풀섶을 뒤척이는 소리가 나고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나를 덮칠 것만 같아도 보이는 것은 없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며 속도를 내 걷다가 넘어지길 반복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라고 다그친다. 언제 날이 밝을지도 알려주지 않고 언제 두려움에서 벗어날지도 알려주지 않고 희망은 일단 계속해서 가라고만 한다... 불행한 사람에게 희망은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불행이 그저 있는 것처럼 희망도 그저 있다. 그저 있으면서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p.136)


  이제야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간다.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분명히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슬픔은 알기 이전에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슬픔은 알아야만 느낄 수 있게도 되는 것인지, 슬픔을 아는 사람은 슬픔을 모른 척 할 수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슬픔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것인지... 나는 슬픔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방도를 아직 모르겠다.



유진목 / 슬픔을 아는 사람 / 난다 / 207쪽 / 2023

매거진의 이전글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