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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3. 2024

고양이(들녘)의 눈(빛)

고양이의 눈빛은 시를 부른다...

  『인생에 이런 황홀한 ‘도착’이 몇 번이나 더 있을까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이란 책을 보면, 카몽이스란 시인이 밤에 촛불이 꺼지자 “자기 고양이 눈빛에 기대어” 시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양이의 눈빛은 시를 부른다.』


  박연준의 산문집 《고요한 포옹》을 읽다가 위의 구절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래 전 가스통 바슐라르를 읽던 시절에는 우리집에 고양이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있습니다. 고양이의 눈(빛)이 집안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고양이의 눈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고양이의 눈은 아무리 자주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고요. 고양이의 눈(빛)은 때로 에로틱하여서 닿기 위하여 가만가만 손을 뻗게도 됩니다. 물론 고양이의 눈(빛)은 고양이가 원할 때에만 나를 향하여 멈춥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더욱 갈구하는 고양이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겨울 내내 책상 서랍 한구석에 들어 있던 내 푸른 고양이 눈을 끄집어낸다. 햇빛이 관통하여 빛나도록 구슬을 치켜들고 꼼꼼히 살펴본다. 그 크리스탈 원 속의 눈은 너무나 푸르고 너무나 깨끗하다. 얼음 속에 무엇이 얼어붙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어 학교로 가져간다... 이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때로는 나도 이 구슬이 보는 대로 볼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빛나는 자동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을, 그들이 아무 말도 발화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형태와 크기를, 그들의 색깔을, 그들에 대한 아무런 느낌 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눈을 통해서만 살아 있는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고양이 눈》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소설 속의 ‘고양이 눈’이 진짜 고양이의 눈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고양이의 눈이 가지는 어떤 속성을 옮겨 놓았다는 점에서는 고양이의 눈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나는 고양이가 없어도 고양이의 눈(빛)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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