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로 건너온 파리의 오후

추억의 음식 선물

by 해은

“엄마, 생일 축하해. 점심에 맛있는 거 해주러 갈게.”큰딸에게 전화가 왔다. 매일 세끼를 차려야하는 내게 누군가 음식을 해 준다는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생일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주인공이 되어 식탁에 앉아서 요리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음식을 만들며 내게 생소한 요리 재료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보라색 껍질의 미니양파인 샬롯, 허브 종류인 딜과 타임, 더블크림 등. 크림홍합스튜는 비교적 간단했다. 샬롯과 마늘은 편 썰고 샐러리는 곱게 다졌다. 버터 한 수저를 냄비에 녹여서 위의 채소를 볶았다. 고소한 향이 나게 볶아지면 홍합을 넣고 섞은 뒤 화이트 와인을 넣고 월계수잎 한 장 넣어주고 섞어줬다.


와인이 팔팔 끓으면 뚜껑을 닫고 홍합이 전체적으로 입을 열 때까지 끓였다. 입을 연 홍합만 건져내고 약불로 줄여 타임을 잎만 훑어서 넣고 더블크림을 넣어 잘 풀어줬다. 마지막에 파슬리랑 후추, 레몬 껍질을 약간 갈아 넣었다. 홍합에 간이 되어있어 국물에 따로 간을 할 필요 없는 상큼한 요리가 완성 되었다.


그녀는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고 화이트와인을 잔에 따라 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튜의 국물을 맛보았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그 식당에서 먹었던 맛이야. 정말 고마워. 어떻게 이 음식을 선택 했을까. 행복했던 두 딸과의 여행을 다시 한 번 음미하라고 준비했단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여행의 추억을 나누었다. 식탁 위로 파리의 오후가 건너왔다. 홍합 살을 모두 발라 먹고 나서 남은 국물에 파스타면을 넣어 먹었다.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마시며 행복감에 취했다. 마음 한편에 따뜻한 흔적을 남긴 선물이었다.


큰딸은 결혼하기 전, 우리 식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 여러 가지 파스타를 비롯한 양식부터 일식, 중식, 머핀이나 쿠키 등 디저트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배, 생강, 마늘, 무를 갈은 향신 즙을 만들어 얼음 틀에 얼려 놓고, 여러 가지 야채와 과일을 넣어 끓인 맛 간장을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한 음식에 양념으로 쓰는 등 요리에 진심이었다.


나는 가족을 위해 항상 음식을 하지만 의무감으로 만들게 된다.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삼십 년 넘게 시부모 모시고 살면서 삼시세끼 만드느라 지친 탓이라고 생각한다. 정성들여 누군가를 위한 의미 있는 식사를 차려 본 것이 언제였던가. 마음먹고 하면 나도 잘 만든다. 다음 날, 큰딸의 음식 선물에 발동이 걸려 오랜만에 솜씨 한 번 발휘했다.


“자, 오늘은 프랑스식 배추 술찜 입니다.”식구들은 담백하다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뿌듯했다. 이 맛에 요리하는 거지.


음식에는 이야기가 있다. 애틋한 사랑과 아름답던 어느 한 순간이 음식의 맛과 향기에서 되살아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과거를 음미하며 현재에 불러오는 것, 그리고 삶의 깊이를 터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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