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했다는 기쁨과 성취감도 잠시, 새로운 곳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는 게임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위에선 천천히 적응하라고 하지만 막상 떨어지는 업무들은 지금 당장 실전 투입과 다름없다. 팀원들도 호의적인 듯 보이지만 이들도 새로 온 팀장에 대해 판단을 시작한다. 내 행동, 말투, 태도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판단 기준이 된다. 만만한지 아닌지, 팀장으로 인정할 만 한지 별 거 아닌지, 보이지 않는 곁눈질이 빠르게 오고 간다. 타 팀과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직 후 약 한 달은 서로 간을 보는 시간이다. 이때는 너무 쉬운 사람처럼 보여도 안되지만 너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서도 안된다. 적당히 좋은 사람 포지션을 취하되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오히려 쉽다. 진짜 어려운 건 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 쫄고있니?
나만 빼고 모두가 오래된 구성원일 때 느껴지는 소외감은 춥지 않아도 추운 것 같고 배고프지 않아도 허기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런 낯선 환경에 혼자 뚝 떨어지면 누구든 일단 쫄게 되어있다.
사람도 분위기도 모든 게 어색한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배짱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말 한마디, 메일 한 줄에도 고심을 거듭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쫄았다는 게 다른 사람 눈에도 다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럴 땐 마인드컨트롤이 관건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에 있어선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으로 임하자. 의외로 힘 있는 말투와 문장만 잘 구사해도 자신만만해 보인다. 내가 그들을 모르듯 그들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태도로 커버가 가능하다.
인정받고 싶은가
인정욕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이다. 특히 직책자로 이직을 했다면 빠르게 실력을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로 일하다가 빠르게 지쳐버리는 내 모습과 맞닥뜨리곤 한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지만 내 상사와 팀원이 나에게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게 사무실 공기에서부터 느껴질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다.
이럴 땐 시간이 답이다. 이직한 지 3개월도 안된 내가 그들에게 느낌표를 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답답한 만큼 상대도 답답하다는 걸 인정하고 아직은 질퍽하게 젖은 진흙 바닥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민폐덩어리가 된 것 같다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직한 곳의 프로세스를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조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판단하고 결정해 오던 것과 의사결정이 아예 반대로 정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면 그동안 내가 배워왔던 것들이 모두 틀린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잘 몰라서 실수하고 의견이 묵살당하는 그런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어 힘든가. 이직 초반에는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차피 1년 뒤 내 평판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능력했나 자책할 필요도 없다. 이게 진짜 내 실력이 아니란 것을 내가 알면 된다.
지금은 나를 믿어주는 시간이다. 내가 이곳이 편해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오직 그것뿐이다.
쉬운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다 보니 포지션이 그렇게 되었을 뿐. 이직한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라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1년 뒤에는 지금 이런 고민도 다 사라질 것이다. 나를 짓누르는 부담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무시하는 그 상대와 둘도 없는 친한 동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기억하자. 지금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면 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