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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by 고요


팀장이 된 첫 해, 매주 진행되는 주간 본부 회의는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매주 각 팀장이 돌아가며 팀의 업무 진행 상황과 다음 주 계획을 팀장이 돌아가면서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팀장들은 떠는 기색 하나 없이 여유 있고 조리 있게 말하는데 유독 나만 더듬거렸고, 주눅이 들어 말이 꼬이곤 했다.


이건 '팀장의 말하기' 어려운 순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임원들 앞에서 똑 부러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타 부서와의 갈등을 매끄럽게 푸는 팀장을 보면 '난 죽었다 꺠어나도 저렇게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나길 융통성 없고, 순발력도 없는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만나본 리더 중 정말 타고날 때부터 말센스가 넘쳤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도 말을 시작하기 전에 나와 같이 긴장하고 떨렸고, 심지어 1분짜리 스피치를 위해 몇 시간씩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들에겐 '말의 재능'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말을 설계하는 능력 즉, 말머리를 설계하는 구조적 감각이 있었다.


팀장의 말머리는 ‘센스’가 아니라 ‘구조’다

팀장의 말에는 대부분 공통된 조건이 있다.

목적이 있고, 대상이 있으며, 상황의 맥락이 존재한다. 말머리를 설계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정리한 뒤, 말의 순서와 표현 방식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보고를 누락하는 팀원에게 "보고 누락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보고가 빠질 때마다 팀 전체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져요. 다음부터는 꼭 공유해 줘요."라고 말하면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으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다. 이 차이가 바로 말의 '구조'다.


말머리의 기본 구조: 사실 – 맥락 – 의도 – 제안

상대의 방어심을 낮추고 대화를 열기 위해, 말의 구조는 다음 네 가지 단계로 설계할 수 있다.


1. 사실(Fact)

감정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은 배제하고 관찰 가능한 팩트만 간결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요즘 왜 이렇게 태도가 느슨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최근 2주 동안 지각한 횟수가 3번 있었어요."라고 대화를 시작한다. 이렇게 사실을 근거로 말하면 논쟁의 여지를 줄이고 대화를 할 수 있다.


2. 맥락(Context)

그 사실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이 팀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공유하면 팀원이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3. 의도(Intent)

사실을 맥락과 함께 전달한 후에는 지금 이 말을 꺼낸 진짜 이유, 즉 목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때 '비난'이 아닌 '팀을 위해서' 혹은 '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공통 목표를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4. 제안(Suggestion)

마지막으로, 그래서 이후 어떻게 할지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 단계다. 앞선 '사실-맥락-목적'까지 서로가 이해했다면 함께 해결책을 만드는 것은 수월하다. "앞으로는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제안하며 의견을 조율하면 수용성과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말머리 구조는 팀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협업 부서, 상사, 외부 파트너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이 네 가지 구성 요소를 인지하고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휩쓸려 말실수를 하거나 횡설수설하게 되는 상황이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된다.


팀장은 매일 말을 한다. 하지만 단단한 팀을 만드는 팀장은 다르게 말한다.

그 차이는 구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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