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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Aug 14. 2020

똑게를 이기는 필살기 더듬수


공공기관에는 공무원들이 모여 공무를 나누어 처리한다. 사람의 성격과 지능이 모두 다르듯이, 공무원의 업무태도와 능력은 모두 다르다. 다양한 구분이 있겠지만, 부지런하거나 게으로고, 똑똑하거나 멍청할 수 있겠다. 그러면 크게 4분면으로 구분된다. 멍부, 멍게, 똑부, 똑게.


멍부는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이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스스로 멍청한 지 모른다는 것이다. 간단한 일에도 지나친 정력을 쏟는다. 다른 조직의 일인데 자신의 일인양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은 없다. 당연히 성과도 없다. 그럼에도 멍부는 최선을 다하는 자기 모습에 취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업무분장을 따지고 효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약삭빠르다고 한심해 할 것이다. 상사로서는 최악이고, 똑똑한 상사를 만나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멍게는 의지자체가 없다. 멍게라도 자기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이 멍청해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노력하지 않아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생각해본다면 노력을 하지 않아서 경험도 쌓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만큼 업무의 지혜나 성취의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은 노력만 하면 그깟 성과는 금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사로서는 그냥저냥 모실만한 사람이고, 부하로서는 최악의 직원이다.


똑부는 의지와 능력이 갖춰진 사람이다. 성공의 경험이 쌓여 자존감이 높고 업무상 지혜가 빛난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니 업무가 더욱 재밌고 보람차다. 일상적 업무에도 쟁점을 찾아내고, 어려운 일도 돌파해 낸다. 다른 부서의 일이라도 금새 전략을 세우고 방책을 만들어 낸다. 상사라면 누구나 똑부에게 일을 주고 싶다. 업무가 걸쳐져 있으면 어떻게든 논리를 만들어 똑부에게 준다. 똑부는 기꺼이 임무를 받고, 목표를 달성해낸다. 최상의 부하이다. 똑부를 모시면 많이 배울 것이다. 그렇지만, 같이 똑부가 아니라면 똑부 상사를 모시기는 힘들 것이다. 통찰력이 밀려서, 게을러서 무능력하고 게을러 보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똑게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사람이다. 똑똑함에도 게으르다는 것은 게을러야 할 때와 부지런해야할 때는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나는 업무의 해결능력보다도 중요한 것이 업무의 경중을 가리고, 업무의 성과를 예측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마무리만 하는 업무와 완벽하게 반드시 달성해야 할 업무를 구분한다. 능력과 자산을 분산한다. 그래서 언제나 여유가 있다. 위험자체에 노출시키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업무가 쉬워보이고, 운이 좋아보인다. 모시기에 제일 좋은 상사다.


멍부, 멍게, 똑부, 똑게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똑게다. 똑게는 위험한 일, 성과 달성이 어려운 일, 다른 부서의 일은 절대 맡지 않는다. 그렇다면 똑게와 똑게가 부딪히면 누가 승리할까. 더 똑똑한 사람이 승리할까. 그렇지 않다. 이때는 똑똑하지만 똑똑하지 않은 척 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필살기 ‘더듬수’다.


똑게와 똑게가 대결한다는 얘기는, 위험하고, 성과내기 어렵고, 누구의 업무도 아니라는 얘기다. 업무를 맡는다는 것 자체가 실패를 의미한다. 이때 상사에게 합리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공을 들이는 사람은 더듬수를 쓰는 사람에게 결국 밀릴 것이다. 상사는 더듬수까지 쓰는 의지부족의 부하보다는 방어논리를 펴며 개념을 보여주는 부하에게 더 신뢰가 갈 것이다. 그렇게 더듬수는 패배인 듯 승리한다. 더듬수는 사무실을 나오며 미소를 비칠 것이다. 더듬수를 쓸 때의 민망함이란 잠시이고 이후에 들일 공력과 실패의 뒷수습은 길고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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