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 눈높이와, 구몬, 재능 같은 학습지를 하고 컸다. 매번 미루기는 했지만 친구들 중 그런 걸 하지 않은 이는 없었고 그냥 나도 당연하게 눈높이 선생님을 일주일에 한 번씩 기다렸다. 지금 7살이 된 우리 아이는 지면학습지 대신 웅진스마트올이라고 하는 패드로 하는 수업을 듣는다. 온라인에서 선생님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온라인으로 받는다.
아이가 웅진 스마트올에 있는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엄마인 나는 자주 엎드려서 신문을 읽는다. 오늘 아이가 패드로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지금보다 큰다고 해서 학교에 가면 과연 신문을 즐겨보게 될까? 이 회색 빛 종이를 나처럼 좋아하게 될까? 그 생각을 넘기다가 신문에 마침 2000년대생 특징이 나왔다.
(참고로 현재 2000년 생은 23살이지만 우리 아이 역시 2017년생, 7살이라 해당이 된다.)
사진에 보이는 작가는 '1990년대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작가인데 그가 이번에 '2000년대생이 온다'도 출간했다고 한다.
그가 2000년 대생을 분석한 특징은 3가지다.
첫째, 초합리적.
검색해서 얻은 정보로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디지털세대.
주장보다 사실, 정통이나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손해는 피한다.
단점: 한 치 앞은 내다볼 수 있지만 그 너머는 보지 못하기도.
정보를 잘 찾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세대라서 불필요하고 잘못된 사회적 관행, 불공정 계약등이 이들로 인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정보가 너무 많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만 딱딱 보길 원하기에 내가 알고 싶은 정보만 큐레이션 해서 보여주는 걸 원한다. 그래서 사실 정치, 사회, 과학, 예술, 문화 경제를 다 아우르는 종이 신문이 얼마나 그들에게 가치 있어 보일 까는 의문이다.
둘째, 초개인
권리, 자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 추구.
2000년대 초부터 중시 도니 자존감 교육 영향받아.
단점 : 개인 권리만 우선시하는 초이기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나 자신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사회전반적으로 이들 덕분에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2016년도 이후 인기가 많아진 '자존감'이라는 걸 잘못 해석해서 내가 마치 이 세상에 중심이고 나는 잘했어, 똑똑해 아무 근거도 없는 믿음이 생기는 사례도 늘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을 분석하지 않고 무조건 내가 잘났다는 믿음이 생기기 쉬운 세대이다.
셋째, 초자율
자신의 원칙, 결정에 따르는 자율성 두드러져.
기존 기업 대신 근무 시공간을 선택하는 배달라이더 등을 선호
단점 무조건적 자율로 질서 깨지고 갈등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무엇보다 (지금의 2000년대 생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의견을 말하는 데 조심스럽긴 하지만) 검색해 얻은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실패를 더 두려워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가장 그들의 큰 문제점이 아닐까 한다.
검색하면서 그 일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고 뭐든지 알아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것은 마치 두려움이라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꼴이다. 그래서 그들의 합리적인 선택 이면에는 그 어떤 것도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있는 것 같은데 그게 사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처럼 이 일 저 일, 막 시도하면서 경험을 통해 무조건 배우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음식점을 검색 없이 갔을 때, 어떤 회사를 검색 없이 찾아가서 일을 하루 했을 때 분명히 내가 가고자 했던 결과치로는 실패에 가깝겠지만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 가장 좋은 회사에 취업하겠다 등) 그 이면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은데 그런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다. 일종의 무모함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 것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기사란 인터넷에서 읽으면 되고, 종이를 구입하는 게 번거롭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종이신문에 밑줄을 치면서 읽었을 때 훨씬 더 신문의 내용을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신문의 어느 모퉁이에 있는 사설 하나에 감동하게 되고 광고 문안이 내 눈을 사로잡을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그들이 우리와 자라온 문화 자체가 다른 건 사실이다. 그들이 마치 우리 때 없었던 걸 다 누리며 사는 것 같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가 누렸던 많은 걸 그들은 못 누리고 있는 듯도 하다. 나는 어릴 적 신문을 통해 아빠가 글씨를 가르쳐주었다. 신문에 나온 알짜배기라는 글자를 쓸 수 있게 되고 바로 초등학교로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집 옆에는 약수터가 있었고 그 약수터엔 개구리가 많이 있었고 개구리알도 많았다. 나는 그걸 잡아다가 집에 들고 와서 키우고는 했다. 그러나가 숲 속에서 뱀을 발견한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런 것들 없이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고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을 사 먹고 유튜브로 여러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적당히 내가 골라준 방향대로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방향으로 걷게 되길 바란다. 나처럼 아무 산이나 막 올라가고, 숲에 혼자 갔다가 뱀을 만나고 그런 상황을 아이가 마주치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혼자 휴대폰 매장 문을 닫다가 칼을 든 남자가 내 가게 앞에 서있는, 그런 상황을 아이가 겪게 하고 싶지는 않다. 쌍욕을 일삼았던 일자리에 아이가 취업이 되길 바라지 않고, 휴대폰을 10개 사면 너는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냐는 대표의 이상한 제안 같은 것도 듣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가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생각을 많이 하고 성숙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최소한 아이가 신문을 읽으면서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다양한 분야에 아주 기초적인 내용 정도는 알면서 자랐으면 한다. 신문은 최초의 경험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중 관심 없는 분야를 365개씩 1년 동안 읽게 되는 최초의 경험을 신문을 통해 할 수 있다. 그래봤자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좀 넓어지게 된다. 요즘 2000년대생은 동물에 대해 진심이며 차 문화, 다도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한다. 또한 음식을 맡김 상차림이라는 뜻의 오마카세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런 트렌드를 모두 신문으로 접할 수 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신문을 통해 알게 되고 사실 그들 역시 나를 (기성세대) 신문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해하라는 게 아니다. 단지 유튜브에서 나이대끼리 모여있고, 같은 가치관끼리 모여있는 콘텐츠만 계속 소비하다 보면 세상은 그런 사람들 밖에 없다는 착각 속에 살게 된다. 그러나 아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것을 단돈 1000원, 하루 신문만 구해서 읽어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관심을 넓히기 위해 신문을 읽어보는 건 어떤가?
읽다 보면 확실히 아는 게 많아지고 아는 게 많아지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게 된다. 그럼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아이를, 2000년대생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면 모두 종이신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