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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Apr 23. 2019

눈물들

파스칼 키냐르가 그려낸 기원 - 눈물과 어둠

 파스칼 키냐르의 <눈물들>은 중세 프랑크 왕국 시대에 프랑스어가 최초로 기록에 남은 순간을 중심으로 그 시대 자체를 스케치하듯 ‘그려낸’ 작품이다. 사실과 환상이 뒤섞인 단편적 이미지들이 시와 노래, 신화와 더불어 다가온다. 먼 옛날, 신화와 전설과 기적이 진실이던 때, 그 시절을 사는 사람들이 떠올렸을 법한 이미지가 현대에 사는 독자들에게도 나타날 정도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프랑크 왕국이 주변에 어른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역사와 신화가 공존한 그 시절로 걸어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우선 프랑크 왕국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A.D. 476년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의 반란이 일어나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 이보다 앞서 훈족에게 쫓긴 게르만족이 동쪽에서 대규모로 이주해 오면서 로마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프랑크족은 게르만족의 일파로 A.D. 3세기 무렵 라인강 동쪽 저지대에 거주했다. 4세기에는 현재 프랑스, 벨기에 지역까지 진출했다. 족장 메로비크의 아들 힐데리히 1세가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고 A.D. 481년 힐데리히 1세의 아들 클로비스 1세가 즉위한다. 그는 서로마 제국의 잔존 세력인 수아송 왕국을 멸망시키고 486년에 교황으로부터 세례와 왕관을 받아 프랑크 왕국의 실질적 창건자가 되었다. 


 게르만족은 적자인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하는 전통을 갖고 있어 왕국은 여러 번 쪼개지고 합쳐졌다. 계속 어린 왕들이 즉위하면서 실질적 권력은 왕실관리인 ‘궁재’가 장악하게 된다. 궁재 중에서도 아우스트라시아의 카롤링거 가문이 가장 강성했다. 카롤링거 가문의 페팽 2세는 다른 지역을 쳐부수고 왕국 전체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의 적자들이 모두 사망하자, 사생아로 상속에서 제외되었던 샤를 마르텔이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 권력을 차지했다. 그는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덕분에 이슬람의 영향력이 피레네 산맥을 넘지 못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슬람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켜낸 중요한 전투였다. 샤를 마르텔도 분할 상속을 했지만 아들 중 페펭 3세가 조카를 유폐하고 궁재가 되었으며 751년 메로빙거의 마지막 왕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왕이 된다. 이로서 카롤링거 왕조가 열린다.


                                                              [메로빙거 왕조 지역 이름]


 페팽 3세의 장남이 바로 카롤루스 대제, 카를 마그누스, 샤를 마뉴로 불리는 이다. 그도 동생과 공동으로 왕국을 상속받았는데 동생이 일찍 죽는 행운(?)으로 왕국의 유일한 군주가 된다. 그는 북이탈리아에 있던 랑고바르드 왕국을 병합하고 당시 기독교도가 아니었던 작센족을 정벌하며, 이베리아 반도로 원정을 떠난다. 이 원정(778년)은 별 소득없이 끝났고 돌아오는 길에 피레네 산맥 론세스바에스 고개에서 바스크족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때, <롤랑의 노래>로 잘 알려진 기사 롤랑이 후미를 지키다 죽었다. 


 샤를 마뉴는 작센 정벌을 마무리하고, 바이에른도 정복하였으며 당시 중부 유럽을 호령하던 아바르족도 격파해 항복을 받았다. 영국, 이베리아 반도, 남부 이탈리아를 제외한 서로마 제국 영토를 거의 재통일한 셈이다. A.D. 800년 그는 로마로 진군하여 교황 반대파를 제거한다. 교황 레오 3세는 보답으로 샤를 마뉴에게 황제 대관식을 거행한다. 


                           [교황 성 레오 3세에 의한 샤를마뉴의 대관식, Friedrich Kaulbach]


 샤를 마뉴의 아들들이 막내 루이를 제외하고 모두 일찍 죽어 경건왕 루이가 단독으로 제국 전체를 물려받았다. 경건왕 루이는 생전에 세 아들에게 제국을 물려줄 준비를 했다. 그런데 뒤늦게 막내 샤를이 태어났다. 그는 대머리가 아니지만 태어날 때 영지가 없었던 사실이 와전되어 대머리왕으로 불린다. 대머리왕 샤를 2세에게도 영토를 나누려하니 이미 영지를 물려받은 다른 아들들이 반발했다. 세 아들이 번갈아 반란을 일으켜 한 때 경건왕 루이가 폐위되기도 했을 정도다. 그가 죽은 후 장남 로테르 1세가 이탈리아와 로타링기아(알프스 산맥 북쪽의 좁고 길다란 지역, 알자스 로렌 지역이 여기 속한다.)를 영토로 가지며 황제로서 종주권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아들 페팽은 아키텐 왕이 되었는데 일찍 사망했다. 경건왕 루이 2세는 페팽의 영토를 대머리 샤를에게 주려고 했다. 그런데 아키텐 귀족들이 반발해 페팽의 아들 페팽 2세를 왕으로 추대하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다. 이는 훗날 아키텐을 둘러싼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셋째 아들 독일왕 루이 2세는 바이에른과 라인강 동쪽 독일 지역을 물려받았다. 대머리왕 샤를은 알레마니아(슈바벤)와 부르군트를 얻었다. 


                                                                      [카롤링거 왕조 지역명]


 경건왕 루이 사후 장남 로테르 1세의 종주권을 대머리왕 샤를과 독일왕 루이가 인정하지 않았다. 대머리왕 샤를이 자신의 지배권을 주장하며 아키텐으로 진격하자 로테르 1세가 페팽 2세를 돕기 위해 나섰고, 독일왕 루이가 대머리왕 샤를 2세 편을 들면서 퐁트누아 전투(841년 7월)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샤를 2세와 루이 2세 연합군이 승리했다. 로테르 1세의 종주권은 유명무실해졌고, 아키텐은 샤를 2세의 수중에 들어갔다. 샤를 2세와 루이 2세는 스트라스부르에서 맹약(842년 2월)을 맺어 현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영토가 대강 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843년 8월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어 이를 확정지었다.  


                                                    [베르됭 조약으로 분할된 프랑크 제국]



 로테르 1세는 사후 아들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분할해서 물려주었다. 북이탈리아를 제외한 현재 독일과 프랑스 중간에 있는 긴 지역은 이후 제 2차 세계 대전까지 천 년이 넘는 동안 서유럽에서 분쟁을 불러일으켰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알자스 로렌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도 이 긴 띠에 있는데 지금처럼 국경이 정해진 과정은 정리하기도 어렵다. 긴 시간 동안 유럽 전체가 얽힌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이 지역은 로테르 1세의 차남 로테르 2세가 다스렸는데 그가 죽자 대머리왕 샤를 2세와 독일왕 루이 2세가 메르센 조약(869년)을 맺어 나누어 가졌다. 이후에도 계속 샤를 마뉴의 후손들 사이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다가 맨처음 중프랑크에서 다음으로 동프랑크에서, 마지막으로 서프랑크에서 카롤링거 왕족의 후손이 모두 끊어진다. 


 프랑크 왕국의 역사를 소개한 이유는 이 책에 나온 역사적 사실에 대해 대략이나마 알고 있어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비록 서사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주인공에 해당하는 니타르와 아르트니 쌍둥이가 샤를 마뉴의 외손자이므로 당대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니타르는 핵심 주제인 프랑스어의 기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라틴어에서 분리된 로망스어(프랑스어)가 최초로 기록된 문서가 바로 스트라스부르 서약문이다. 프랑크 왕국의 성립과 경건왕 루이 사후 아들들 사이 분쟁에 대해 이해해야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니타르는 실제 역사에서 이 서약문을 작성한 사람이다. 


 “842년 2월 14일 금요일, 아침 끝자락, 추위 속에서 그들의 입술 위로 기이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 안개를 프랑스어라 부른다. 니타르는 최초로 프랑스어를 문자로 기록한다.”


 키냐르는 최초로 프랑스어가 기록되는 순간을 이렇게 나타냈다. 이 장면은 기원의 이미지다. 그러나 기원이 아니기도 하다. 원래 갈리아(고대 프랑스지역)에는 켈트인이 거주했다. 고대 켈트어가 이들의 언어다. 로마가 정복한 후에는 라틴어가 공용어로 쓰였다. 프랑크족이 들어오면서 이들의 언어가 라틴어와 결합하여 로망스어가 되었다. 스트라스부르 서약에 기록된 프랑스어는 사실 로망스어다. 문서를 보면 라틴어와 거의 구별이 가지 않는 하나의 방언처럼 보인다. 



 현재 프랑스어가 로망스어에서 비롯되었고, 로망스어가 라틴어 방언이라면 진실한 기원은 라틴어가 아닌가? 샤를 마뉴도 그런 생각을 했나보다. 그는 황제가 되자 영국에 새로운 문자 형태를 만들라 주문했다. 이를 카롤링거체라 부르며 유럽에 퍼뜨렸다.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별, 마침표와 쉼표의 사용, 띄어쓰기 등이 여기서 시작했다. 한편 고대 라틴어의 원형을 찾아내 복원하려고 시도했다. 프랑스 언어학자 앙리에뜨 발터는 샤를 마뉴 이래로 프랑스어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이 아니라 교회나 국가와 같은 권력기관이 보호나 부흥을 목적으로 언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주장한다. 


 기원의 탐구, 먼 옛날의 이미지는 키냐르가 천착하는 핵심 주제다. 스트라스부르 서약은 한 언어의 기원으로만 중요한게 아니다. 이 조약에서 현재 유럽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유럽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과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는 다툼들이 싹텄다. 이탈리아의 분열, 알자스 로렌 지역의 오랜 영토 분쟁, 베네룩스 삼국과 스위스, 프랑스 국내 문제, 독일의 분열이 경건왕 루이 사후 그 아들들의 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문제도 더 파고들면 기원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기원전 이천 년 전부터 시작된 아리아인의 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키냐르는 기원의 우연성에 주목한다. 스트라스부르는 원래 라틴어로 아르겐타리아였다. 예전에는 스트라스부르 서약을 아르겐타리아 성사라고 불렀다. 니타르는 그가 저술한 <역사>에서 아르겐타리아를 “지금은 대부분의 주민이 스트라스부르라고 부른다.” 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해 키냐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징적인 것이 꿈틀대는 순간을 인지하는 사회란 거의 없다. 자신들의 언어가 태어난 날짜, 상황, 장소, 일기(日氣). 기원의 우연. 숫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문자로 변환되는 광기 어린 순간을 지켜보는 것, 이것은 기적에 속한다. 우리는 새로운 상징계가 발생해서 단번에 확립되는 동요를 목도한다. 반(半) 언어란 없다. 추위 속에서 사람의 숨결이 언어를 완전히 바꾼다. 아무런 실마리도 없는 공(空)에서, 즉 순전히 우연하게 일이 발생한다. ‘Argentaria’란 호칭이 ‘Strazburg’라는 말로 바뀌는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바뀌는 것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이 구절에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들어있다. 프랑스어가 탄생하는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그러면 한글로 번역된 이 소설을 내가 읽는다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도 한 언어의 탄생이라는 기적같은 우연이 일어나는 현장을 ‘기이한’ 이미지로 보는 기쁨을 맛보았다. 우리가 근원을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행위는 주체와 객체를 가리지 않는다. 나의 근원이 궁금한만큼 너의 근원도, 그것의 근원도 알고싶다. 나아가 모든 것의 근원을 찾고 싶다. 근원이 궁금하다는 건 원인을 찾고 싶다는 뜻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그리고 세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현대 과학은 그것이 ‘빅뱅’이라고 대답하겠지만 키냐르는 그것이 어둠이라고 말한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며 과학이 수행하는 지식의 확장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만 진실이며 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근원이 어둠이라는 상징적 표현은 또다른 본질을 일깨운다. 과학과는 다른 종류의 인식을 갖게 하여 세계를 확장한다. 물리학의 언어가 아닌 직관의 언어 표현이 새로운 길을 열지도 모른다. 어떤 맥락에서는 빅뱅과 어둠이 같은 의미일수도 있다.


 “우리보다 선재하는 최초의 어둠”


 “빛보다 선재하는 어둠에서 태어난 자들은 누구나 빛 속으로 솟아오르게 되면 종종 어둠을 호출했다.”


 “개들이 울부짖을 때, 우리는 구슬피 울면서 밤처럼 캄캄한 최초의 동굴을 뒤로하고 떠난다. 어둠이 우리를 뒤쫓아 오니까 우리는 필시 어둠에 도달하고 말 테지만, 우리는 진저리를 치며 힘껏 어둠을 물리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어둠이 가득한 입이 있어서 매일 죽은 것들로 그 안을 가득 채운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사건은 출산, 탄생을 의미한다. 프랑스어의 탄생도, 빅뱅으로 인한 우주의 탄생도, 창세기에 나오는 야훼의 창조도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상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최초의 어둠은 탄생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근원으로서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르트니처럼 “미래의 지복이나, 심지어 영원보다, 기원에 더 끌”린다. 어둠에서 나온 우리는 그 일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어둠을 채워야만 살 수 있다. 어둠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죽여서 넣어야 한다. 어둠은 어둠으로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에 다시 어둠으로, 근원으로 돌아간다. 


 과학의 세계가 아닌 신화와 기적의 세계에서 기원은 하나가 아니다. 키냐르가 이야기한 솜 강의 기원이 너무나 생생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솜 강은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을 서북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영국해협으로 들어간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가 솜 강 일대에서 벌어졌다. 1916년에 있었던 솜 전투 결과 독일군, 영국군, 프랑스군 120만 명이 죽었다. 이 책에서 솜 강의 기원은 샤먼 사르의 눈으로 나온다. 솜 강은 원래 작은 개울에 불과했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솜 강이 북해에 합류하는 만을 다스리던 샤먼 사르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가졌다. 어느 날 그녀는 바이킹(노르만인)이 침략한다고 예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일지 모르는 예언을 비웃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범람하는 날 아이슬란드섬에서 온 노르드인(노르만인)이 쳐들어와 죽이고 약탈했다. 바이킹이 물었다. 당신들에겐 불행을 예고하는 샤먼이 없냐고. 사람들은 사르의 예언을 떠올렸고 바이킹에게 알려줬다. 바이킹은 사르를 잡아 두 눈을 파냈다. 그러자 새파란 동공들이 끝없이 흘러내려 솜 강이 생겨났다.   




 끝없이 흘러내리는 동공은 눈물에 다름아니다. 키냐르에게 눈물은 어둠과 같은 또다른 기원이다. 샤먼 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눈 안쪽 모서리에 구겨진 피부 같은 미세한 분홍빛 살점이 있다. 애초에 기원의 여신이 눈 귀퉁이에 그 살점을 밀어 넣은 까닭이야 누가 알겠는가? 약간 겹을 대서까지 밀어 넣은 이유를 어찌 알겠는가? 여자나 남자의 눈 귀퉁이에 자그만 분홍 살점이 붙어 있는 이유를 내가 알려주겠다. 그것은 기원의 여신의 아버지, 태양을 지닌 신, 한밤중의 어둠을 지배하는 까마귀와 관련 있다. 이 살점은 인간이 나타나기에 앞서 새들에게 있던 투명한 젖빛을 띤 제 2의 눈꺼풀의 흔적이다.” 



 키냐르는 눈물이 그곳에, 제 2의 눈꺼풀에 고인다고 했다. 이 꺼풀은 안구가 보려고 할 때, 안구를 씻어내고 축축하게 적셔 대상을 파악하려는 욕망을 충족시킨다. 고대인들은 그것을 ‘어머니들의 살점’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보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 본다는 행위는 대상을 파악하려는 욕망, 앎의 의지다. 봄과 앎은 주체의 기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기원에 눈물이 있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원자들은 만물의 눈물들이다.”


 주체가 있으려면 단독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주체가 성립한다. 세상은 주체-객체로 나눌 수 없다. 한 주체와 나머지 객체(대상)이 있는게 아니다. 세계는 주체들의 상호작용이며 주체와 객체가 섞여 있다. 주체와 객체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한다. 그러므로 주체의 기원이 눈물이라면 세상 전체의 기원도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이 기원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카오스, 빅뱅, 탄생 이전의 암흑. 그런데 눈물이 기원이라는 말은 따라잡기 쉽지 않다. 눈물 자체는 보는 행위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가?


 기원과 탄생 이야기에는 항상 고통이 깃들어 있다. 고통과 더불어 환희도 깃들어있다. 라캉이 말했던 ‘주이상스’란 기원의 탐구와 창조의 희열이 내포한 고통과 열락이 아닐까? 눈물은 슬픔과 기쁨에서 나온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느낌과 감정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일지도 모른다. 감각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일지 모른다. 행위의 부산물로 느낌이 따라오는게 아니다. 우리는 느끼고 감각하기 위해서 행위한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느끼고 감각하여 이에 반응하는 존재다. 우리의 근원이 눈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그래서 키냐르는 프랑스어의 기원을 둘러싼 이야기와 이미지를 쓴 글에 <눈물들>이란 제목을 달았다. 























































성녀 욀랄리 


“프랑스어는 갓난애가 어머니의 성기에서 나오듯 라틴어에서 나온다. 새가 성녀의 목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문학의 탄생 성녀 에울랄리아의 세퀜티아


롤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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