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온 정순.
정처 없이 걷다가 큰 찜질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찜질방 옷 입고 황토방구석에 앉아 있는 정순.
휴대전화가 울린다.
받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받는 정순.
정순/
응, 미자야
미자(F)/
언니 어디야? 집이야?
정순/
아니.
미자(F)/
그럼 어딘데?
정순/
(울음 터지는)
미자(F)/
여보세요 여보세요.
서럽게 우는 정순. 주변 사람들이 수군대며 이상하게 쳐다본다.
수건으로 양머리를 하고 마사지팩 붙이고 나란히 누운 정순과 미자
미자/
많이 속상하겠다.
정순/
내가 뭐에 홀렸었나 봐.
미자/
그 남자가 뒤통수칠 줄 알았나 뭐.
정순/
근데 미자야. 요 며칠 동안 나 정말 행복했어.
가슴이 두근두근 막 설레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거 있지..
이런 기분을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처럼.
나도 이런 내가 낯선데 싫지는 않은 거.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는 것 말고도 내가 잘하는 게 있구나.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신이 나는 거야.
미자/
그래 맞아. 얼마나 좋았을까.
근데 재정이가 데리러 간 거 아니야? 왜 여기 있어?
정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자/
(일어나 앉으며)아, 그게..
정순/
네가 어떻게 아냐고!
미자/
실은, 나 언니랑 홈쇼핑 출연한 거
우리 남편이랑 애들은 모르거든.
근데 유민 아빠가 다 말해버린다고 해서..
정순/
뭐?
너 때문에 내가 오늘 재정이한테 어떤 꼴을 보였는지 알아?
(미자 머리채 잡으며)
종잇장보다 입 가벼운 년아.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미자/
악, 언니 이거 놓고 해! 왜 이래 창피하게.
정순/
너야말로, 너까지 나한테 왜 이래.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미자도 정순의 머리채를 잡는다.
두 여자의 괴성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머리 산발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정순.
“엄마”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든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면 딱 유민이 만한 꼬마가 자신의 엄마에게 뛰어가 안긴다.
밤늦게 일 끝내고 불 꺼진 집에 들어오는 정순,
내복 차림의 어린 재정이 “엄마” 하며 와다다 와서 안긴다.
한참을 꼭 껴안고 있는 두 모자.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인 정순.
다정한 엄마와 어린아이를 보고 있으면 주르륵 눈물이 넘쳐흐른다.
현관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정순.
순간,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연다. 깜짝 놀라는 정순.
도우미/
유민 할머니!
정순/
어떻게 여기 계세요.
도우미 평창동에서 보내서 왔어요. 집안일 좀 도와드리려고..
정순/
아, 네.
집안에 들어온 정순,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도우미/
차 한 잔 드릴까요?
정순/
아뇨. 제가 할게요. 이제 가보셔도 돼요. 고생 많으셨어요.
재정 부부와 유민, 정순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유민/
할머니! 나 안 보고 싶었어?
정순/
당연히 보고 싶었지~밥 많이 먹어.
갑자기 혜경이 헛구역질을 한다.
재정/
어디 안 좋아?
혜경/
아니, 어제부터 속이 좀 안 좋네.
정순/
혹시...
혜경, 재정/
아니에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는 혜경.
식탁 위에는 정순이 금방 만든 반찬 서너 가지가
뚜껑 열린 통에 담겨 있고(식히는 중)
정순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멸치 볶음을 만들고 있다.
멸치 하나 짚어 맛보는데 거실 쪽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정순은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달려간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은 명수. 거절 버튼을 누르는 정순.
연이어 또 울리는 벨소리. 망설이는 정순.
-10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