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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l 18. 2022

태권소녀 되다

세 달 전쯤, 점심 먹고 후배 직원들과 커피숍에 갔던 날이 있었다. 입사 연차로는 10년도 더 차이나는 후배들이지만, 그중에는 자녀 나이가 내 아이랑 비슷한 후배 J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던 중에 J에게 "요즘 애들 뭐 시켜요?"라고 슬쩍 물어봤다. 그랬더니 J는 여러 가지 시키고 있다고 말하면서 말미에 태권도는 꼭 시키라고 권했다. 왜냐고 물으니, 태권도는 주말에 아이들만 데리고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부모에게 자유시간을 준다는 거다. 아~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그 순간엔 그냥 웃고 지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도 태권도 바람이 불었다. 아이가 태권도장에 보내 달라고 아내를 계속 졸랐다. 이유는 단순하다. 같은 반 친구들이 다 다니는데 자기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것. 나는 몰랐지만 거진 1달 넘게 노래를 불렀나 보다. 결국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태권도장 무료체험에 다녀왔다. 저녁 화상통화에서 "오늘 태권도 체험 잘 다녀왔어?"라고 물으니 "아빠. 나 다음 주부터 태권도 다니기로 했어."라며 기뻐했다.


한국민 대다수가 일생에 한 번 거쳐간다는 태권도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태권도에 대한 추억이 있다. 7살 때 태권도장을 한 해 다녔다. 군대 이등병 시절에는 태권도 1단이 없어서 가랑이 찢기를 하고 연병장에 나가 발차기를 수없이 했었다. 첫 번째 심사에는 떨어지고, 두 번째 심사에서 단증을 따면서 이후에는 열외가 되었다. 얼마 전 군대 시절 땄던 단증을 찾아서 아이에게 보여주었더니 신기해하면서도 "지금 아빠는 나보다 발차기 못 하잖아."라며 은근 자랑질을 했다. 흰 띠가 그것도 왕년의 검은 띠에게.  


어느새 태권소녀 된 지 두 달이 흘렀다. 아이는 태권도를 재밌어한다. 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이젠 노란 띠가 되었다. 후배 J가 말한 주말 프로그램은 한 번 했다. 반나절 프로그램이었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우리 부부는 부부대로 알찬 시간이었다. 이제 곧 맞벌이 부부에게 최대 고비인 '방학'이 다가온다. 태권도가 빛을 발할 시간이다. 마치 이렇게만 써 놓으니 엄마 아빠 좋으라고 태권도를 보내는 것 같다. 말은 이래도 태권도에 가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잘 놀고 밥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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