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Jul 26. 2020

드라큐라가 아빠 회사를 무서워한다고?

6살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아빠 회사 이름 알아."

"그래?"

"아빠 회사 적찝짜사지?" (발음이 귀엽다)

"어. 아네~~.”


"근데 아빠, 드라큐라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그게 뭔데~~?"

"십자가랑 마늘이야. 아빠 회사 십자가잖아. 드라큐라는 십자가를 무서워하니까 적찝짜사에는 못 들어가. 깔깔깔깔.”

"ㅎㅎㅎㅎ"


아이 덕분에 또 웃는다.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할까. 아빠 회사 이름을 아는 것만도 흐뭇한 일이지.


딸아이가 아빠 회사를 몇 번 와 봤었는데 그때 건물 외벽에 크게 붙어 있는 적십자 표장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아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적십자의 십자가는 종교적인 색채에서 직접 유래되었다기보다는 적십자를 창시한 사람들의 나라인 스위스 국기와 관련이 있다.


스위스인 장 앙리뒤낭(제1회 노벨평화상 수상자)은 이탈리아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을 경험하고 책 <솔페리노의 회상>에서 모든 국가에 자발적 구호단체를 조직하고, 의료요원이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들을 중립적으로 간주할 국제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따라 1863년 국제적십자가 탄생되었고, 1864년 최초의 제네바협약이 체결되었다.


이제 다음 과제는 전시 의무요원과 자원봉사자, 무력충돌 시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한 식별 표지를 채택하는 일이었다.


이 표지는 심플하고, 멀리서도 식별하기 쉬워야 하며, 누구나 알고 있는 형태여야 하고, 아군과 적군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오스트리아 군 의무부대는 흰색 기를 사용하고, 프랑스는 붉은 기를, 스페인은 황색 기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병사들은 자국 의무부대의 깃발은 알고 있었지만 상대 국가의 의무부대 깃발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때문에 중립적으로 간주되어야 할 의무부대가 공격의 타겟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1864년 앙리뒤낭의 모국인 스위스 기의 색깔을 거꾸로 한 백색 바탕에 붉은 색 십자가를 군 의료활동을 보호하는 표장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좌측은 스위스기, 우측은 적십자 표장(Red Cross)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1876년부터 1878년까지 벌어진 러시아와 터키간의 전쟁에서 오트만인들에게 붙잡힌 의료요원들이 적십자 완장을 둘렀다는 이유로 살해되었다. 이슬람 군인들은 과거 11~13세기 유럽이 중동을 침공한 십자군 전쟁을 떠올리며 민감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터키에서는 적십자 대신 초승달 형태인 적신월을 사용하였다. 적신월은 점차 이슬람권으로 퍼져 나갔고, 1929년 마침내 제네바협약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적신월 (Red Crescent)


여기에 2005년 세 번째 표장이 승인된다. 바로 적수정(Red Crystal)이다. 당초 이스라엘은 1980년부터 다윗의 별(Magen David Adom)이라는 독자적인 표장으로 적십자 활동을 하였는데, 정삼각형 두 개를 엇갈려 겹쳐 놓은 이 모양이 유대교를 상징했기 때문에 이슬람권 국가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육각형 대신 사각형 마름모 모양으로 새 표장이 승인되었다.


이렇듯 적십자와 적신월 그리고 적수정은 표장 모양은 달라도 같은 국제적십자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적십자는 각 세계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1917년(1차대전)과 1944년(2차대전), 창설 100주년을 맞은 1963년까지 3번의 노벨평화상을, 앙리뒤낭까지 포함하면 4번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어제는 장맛비에 집에 있으면서 딸아이에게 적십자 십자가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아직은 아이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아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아이에게 드라큐라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어서 드라큐라가 아빠 회사의 십자가를 무서워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같이 코로나19 발생으로 전년보다 헌혈자가 급감한 상태에서는 드라큐라라도 있다면 2달에 한 번 전혈에 동참시켜야 할 판이다.


이래나 저래나 내가 아이에게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드라큐라가 나타나더라도 아빠는 네 곁에서 지켜줄 거다."라는 것.


"알겠지?”





<사진 출처: olleh 광고패러디 - 드라큐라헌혈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