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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Jun 11. 2021

응급실에서 홀로 느낀 것

1인 가구를 살아가는 청년의 고충


 자정이 다되어가는 늦은 평일 저녁, 홀로 원룸에서 쉬고 있던 중에 갑작스레 목부터 발목까지 온몸에 붉은 반점이 미친 듯이 돋아나며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다. 마치 수백 마리의 모기에게 한꺼번에 물린 듯한 모습이었다.  


 급성 두드러기일까. 곧 괜찮아지겠지,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되뇌며 부기가 가라앉길 간절하게 바라며, 혹시나 모를 응급 상황을 대비해 불안감 속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응급실이나 피부과에 가는 것이 낫다는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가고, 이 시간에 갈만한 곳은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24시간 응급실이 있는 병원밖에는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돈이 얼마나 들까?"

 "내일 아침까지 버티다가 피부과가 문을 열자마자 가는 건 어떨까?"
 "내일 아침까지 버틸 수나 있을까?"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몸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변해있었다. 본능적으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밤 11시 30분경에 급하게 집을 나섰다. 더운 여름 날씨에 반팔을 입어야 했다. 반팔 소매 밑으로 드러나는 내 양팔은 지름 1cm가량의 붉은색 반점 수십 개가 나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지하철 막차시간을 봤다. 다행히 막차가 있었고 엄청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마스크와 푹 눌러쓴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 양팔을 최대한 가리며 앉았다. 
 나의 팔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이대로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본능적인 위기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병원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재빨리 내린 뒤 몇 분을 걸어가자 24시 응급실이 보였다. 

 나는 그 문으로 들어가 묵묵하고 담대하게 증상을 말하며 접수를 하고, 코로나 관련 사항 체크를 받고 잠시 대기하다가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이 정도의 심한 급성 두드러기라면 빨리 오시는 게 맞았다고, 두드러기가 목부분 근처의 호흡기까지 번졌으면 호흡하는 것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돈 몇 푼 아껴보겠다고 억지로 잠을 청하는 도중에 자다가 호흡에 문제가 생겼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지 몰랐을 상황에 등골이 서려왔다. 원룸 방에서 혼자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놀란 심정을 애써 진정시키고 수액을 맞으면 20분 정도 안으로 두드러기는 가라앉을 거라는 의사 말을 듣고 수액을 맞으러 응급실 침상에 누웠다. 스무 개 정도의 침상에 10여 명 정도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수액이 내 팔의 핏줄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그 순간, 극도의 무안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이 평일 늦은 새벽시간의 응급실에서 무리 없이 '혼자' 있던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응급실에 가야만 하는 위급한 상황이 오면 다들 주변의 친구나 지인, 가족을 데리고 오는구나, 하고 
 한 번도 응급실에 와본 적 없던 나는 그때 처음 생각해본 것이다.
  

 혼자 오랫동안 살아온 나는, 애초부터 삶의 위기가 찾아올 때면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 애썼고, 또 해내 왔다. 이번 응급상황도 마찬가지 었지만,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 생각했다.


 더 무섭고 기괴하고 이상했던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에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주변에 사는 가까운 친한 친구와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 두 명 정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이 생기기까지 나는 이러한 사람인 것을 몰랐다.

 정말로 내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미련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고독한 20분이었다. 

 

 응급실에서조차도 황야의 이리처럼, 나 혼자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토록 다른 사람에게 기댈 줄 모르는 것일까. 기대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을까.


 치료가 끝나고 기적처럼 두드러기가 80% 이상 호전되며 사라졌다. 약을 처방받고 계산을 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낯설고, 이질적이고, 숨만 들이쉬어도 토할 것 같은, 다른 세계에서 불어오는 공기가 한적하고 고요하게 나를 덮쳤다.  

 몸이 아픈 것을 통해 내 마음이 아픈 곳이 있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누군가 한마디만 나에게 어떠한 말을 걸어와도 눈물이 바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가끔 지나가는 차 몇 대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차 소리를 제외하고는 도로는 무척 고요했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이 없었다.


휴대폰으로 아무 노래나 들으려고 노래를 재생시켰는데, 가수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가 흘러나왔다.


도입부의 '도망가자'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술에 취하지도 않은 다 큰 청년이 새벽길을 혼자 걸어가며 서럽게 우는 모습을 누가 보든 말든, 감정은 이미 주체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울며 수 km를 걸어갔다. 나 스스로가 싫었고, 한심하게 느껴졌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감정의 끝에 와서는 '가족'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은 모두 서로 다른 타 지역에 혼자 떨어져 산다. 


분명 내가 이렇게 아플 때가 생기듯, 다른 가족들도 이렇게 아플 때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 또한 나처럼 이러한 아픔을 느끼진 않았을까 하며 가슴 한 켠이 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 덤덤하게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나 했다.

  
스트레스와 면역력 약화, 식단관리 부실 등으로 유발한 급성 두드러기.
 
나는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건강하게,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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