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수학교육 에세이, 점박이 09편
이건 수학교육에 대한 내용이 아니지만, 육아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Case 01.
점박이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다른 사람에게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 앞에서 성질을 부린 것은 점박이가 세살인가 네살 정도일 때,
자꾸 그러면 장난감 갖다 버린다
라고 했을 때, 점박이가 벌떡 일어나서 장난감을 휴지통에 갖다 버린 게 아마 처음인가 마지막 아닌가. 무슨 일이었는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그러한 점박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였다. 어느날 집에 와서 울면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얘기인 즉슨, 여자아이 하나가 점박이에게 와서 내기를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가위바위보 해서 내가 이기면 네(점박이)가 나한테 이천원을 주고, 네(점박이)가 이기면 내가 너(점박이)한테 천원을 줄게.
...
...
...
이건 조금, 아니 많이 불공정한 내기 아닌가? 다행히 우리 점박이는 멍청하지 않아서 그 아이에게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끈덕지게 하자고 졸랐나 보다. 점박이는 착하다고 해야할지, 호구라고 해야할지, 멍청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승낙을 하고 이천원을 빼았겼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 일을 갖고 고민을 좀 했다. 금액이 큰 것도 아니라서 사실 어린애들의 장난이라고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상대편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그 어머님이 자기 딸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여자아이가 어머님에게는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설명을 했나 보다.
사실 이런 걸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는데, 마음이 여리다고 멍청하게 이런 일을 계속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중립의 입장이라 다음 날 아이들에게 사건에 대한 청취를 하신다고 하셨다.
이 부분에서 우리 부부는 돈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점박이가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필요 할 때, 이야기하지 못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여겨서, 점박이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내일 선생님이 그 일에 대해 물어보시면, 분명하게 네 입장에 대해서 또박또박 얘기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선생님이 네 말을 믿어주시지 않을수도 있는데, 그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꼭 필요하니까.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는 있는데, 최소한 자기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심하다고 자기 입장도 분명히 못 밝힌다면, 그건 당해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다행스럽게도 다음 날, 우리 점박이는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선생님 앞에서 자신이 유리한 대로 설명해 나갔지만, 선생님께서 다른 아이들의 말이나 우리 점박이가 평소에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점박이의 편을 들어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점박이가 상황설명을 분명하게 잘 했다고 칭찬해 주셨다고 했다.
Case 02.
점박이의 사교성이 별로 없는 편이라 친한 친구를 하나 만들어 주려고 와이프가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곱상하게 잘 생겼는데, 점박이보다 더 활동적이었다. 문제는 같이 놀다가 점박이를 좀 거칠게 장난 치거나 장난식으로 때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점박이가 이걸 싫어했다는 거다.
어느 날은 장난식으로 좀 심하게 때려서 집에 와서 너무 억울하다며 엄청 울었던 적이 있다. 중학생이 되면 남자애들끼리는 좀 더 남자다움으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어서, 점박이가 너무 약하면 중학교 때부터 좀 괴롭힘을 당할 것 같기도 해서 격투기를 하나 시켜보기로 했다.
초등학생 대상의 태권도는 격투기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집 주변에 있는 복싱 체육관에 보내보기로 했다. 복싱 커리큘럼은 일단 줄넘기를 하고 펀치 연습을 조금 하는 것 정도인데, 점박이는 혼자 집중하는 걸 좋아해서 잘 맞을 것 같았다. 근육이 좀 붙으면 일단 시비가 붙어도 얕보이진 않을테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관장님이 너무 남자다우셔서, 우리 점박이는 그러한 남자다움을 견디지 못 했다. 결국 얼마 다니지 못 하고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 격투기를 맛본 영향인지 가끔씩 내가 게임하고 있으면 뒤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거나 씻고 나오면 자신의 근육 붙은 모습을 좀 살펴보긴 하는데, 잘 모르겠다.
Case 03.
이 부분은 점박이의 교육이 나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시점부터 점박이의 학교 시험공부를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았다. 그 전에는 우리 와이프가 점박이 문제집을 사서 범위를 정해주기도 하는 식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주려고 했었다.
그동안 해왔던 방임형 교육의 영향인지 점박이는 크게 어려움 없이 혼자 공부해서 시험을 준비했다. 결과물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이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사실 위와 같이 점박이의 수학교육에 관계없는 육아 관찰내용을 써놓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수학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함이다. 우리 점박이는 나름 혼자 잘 공부해서 초등학교 학교시험을 보면, 내 생각으로는 나름 좋은 점수를 맞았다. 4과목 정도 보면 한두개 정도 틀리는 정도. 수학으로 한정지어 말하자면 실수로 한두개 틀리는 정도였다.
자, 여기서 어떤 어머니들은,
백점이 아니라고? 못 했네.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요새 초등학교 시험은 쉬워서 백점 못 맞으면 실력이 없는 것이라고. 사실 우리 와이프도 그런 기준에서 점박이에 대한 평가가 매우 짰다. 자기 주변의 엄마 애들은 다 백점 맞는다면서. 다행인 것은 점박이가 나름 노력하는 모습을 평소부터 보여왔기 때문에 안타까워할 뿐, 더 좋은 성적을 거두라며 갈구지는 않았다는 것일까.
난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수학시험은 혼자 공부했을 때를 기준으로 90점 정도 맞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저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혼자 공부했을 때 90점 정도가 나온다면, 일단 기본적인 독해능력이나 공부습관적인 면에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틀리는 문제들은 실수이거나, 혹은 정말 꼬아놓은 문제들인 경우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런 경우 어떻게 더 잘 시킬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정말 어렵게 꼬아놓은 문제를 틀렸다고 하자. 이 문제는 원래 어려운 것이고, 이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미리 경험을 해서 알지 못 하면 시험시간에 다 풀기가 어렵다. 만약 그런 문제를 맞추겠다고 고난이도 문제집을 사서 아이들에게 풀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자유롭게 사고하는 방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보통 학원에서 그런 문제집을 교재로 쓰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대부분의 경우 답을 베끼거나 하며 그 순간순간을 넘기려고 한다. 그럼 단순하게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모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할 때 정직하지 못한 방식을 몸에 익히기 때문에 절대 하지 말라는 거다. 물론 가끔씩 정말 열심히 따라가는 애들도 있기는 한데, 그 경우도 풀이 자체를 외우기 때문에 수학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지 않다.
그럼 이번엔 아이가 실수로 틀렸다고 치자. 당연히 안타깝다. 그런데 종종 아이가 실수할 때, 이렇게 얘기하는 부모님들이 있다.
문제를 몰라서 틀리는 것은 이해하는데, 실수로 틀리는 것은 네가 문제를 집중해서 제대로 안 읽었기 때문이야. 이건 더 나쁜 거야.
아마 아이가 시험에서 실수해서 틀렸다고 할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이 꽤 계실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옳은 것처럼 느껴지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실수는 말 그대로 실수다. 물론 실수라고 하는 것도 파고 들어가면 여러가지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것이다. 부모님 자신도 실수를 하는데, 왜 아이들은 실수를 하지 않는 기계처럼 되어야 하는가. 수학공부에서 실수는 고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넘겨야 할 것이다.
실수를 고치지 않고, 왜 그냥 넘기라고 하냐고? 그 이유는 저 말 뒤에 부모님이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때문에 그런 거다. 만약 수학적인 지식과 아이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다고 있다면, 실수를 고치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실수를 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문제를 풀게 한다. 많이 겪어보면,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90점 정도 맞는 상황에서 그 두문제 실수로 틀린 것 때문에 평소 공부하는 것보다 많은 문제를 풀라고 하면, 그 문제들을 푸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집중력은 바닥이 난다. 아이들은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나도 1시간 30분 정도 집중하면, 더 이상 공부해 봐도 효과가 별로 없음을 느낀다.
공부습관을 잡을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상태, 보통 우리가 몰입이라고 말하는 그러한 상태를 겪어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것을 경험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러한 집중상태를 겪어보지 못 한채로 공부를 억지로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집중하지 못 하면 공부시간이 길어도 효과가 별로 없다.
그런데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더 많은 문제를 꾸역꾸역 풀면서 집중력 저하상태에서 공부를 지속하면, 아이들은 그게 공부할 때 자신의 기본적인 상태로 인식한다. 그것은 매우 지겹기도 하지만, 그걸 뇌에서 습관처럼 받아들이면, 공부에 적합하지 않은 머리가 되어 버린다. 책상 앞에 앉아만 있지, 실제로는 그냥 허송세월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 수학시험에서 아이가 혼자 공부해서 90점 정도를 받아왔다면, 그냥 두어라. 만약 80점 정도라도 그냥 두어라. 50점 미만이면, 그땐 고민을 해야겠지만.
초등학교 시험에선 성적 자체에 크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것은 항상 체크해야 하지만, 백점을 못 맞아올 땐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더 중요하다. 그렇게 백점 맞게 만들어서 중학교 올려보내면 그 부작용이 그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걸 나는 너무 많이 봐 왔다.
초등학교 수학교육의 목적은 공부습관이나 자세를 잡아주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혼자 공부할 때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베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은 평생 그 덕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아이에게 몰입을 억지로 경험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제발.
교육에서 절대 된다거나 절대 안 된다는 것은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면 보통 안 좋은 결과가 더 많이 나오니까. 그게 되고 안 되고는 내 경험상, 하나님의 뜻이다. 뭐 운빨이라고 해도 좋지만.
아, 그리고 앞에 점박이의 육아관찰 내용을 쓴 이유는, 공부할 때 물론 지능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상황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능이 아무리 좋아도 아이가 주변상황에 너무 많이 휘둘리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문제가 될 것 같은 습관들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뭐,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러한 노력의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고?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의 자세에서 배운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