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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pr 25. 2020

노인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노인이 되는 방법 - 요리를 시작하다.

은행에서 퇴직 후,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재테크 책도 몇 권 내고 관련 칼럼도 종종 연재했던 관계로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 사실 이는 그 누구도 쉽게 답변하기 힘든 질문이다. 모두들 처한 경제적 상황과 경제 외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 방문해서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 아래와 같은 기계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고객님. 현재 급변하는 세계경제와 사상초유의 저금리, 불확실한 부동산 시장으로 고객님의 소중한 자산관리와 안정적인 노후 준비는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저희는 국내 최고의 자산관리 전문가가 고객님의 개별 상황에 맞는 가이드를 드리고 있는데요, 먼저 고객님의 투자 성향을 파악해 드리겠습니다. 고객님의 투자 상향을 확인해 보니 '성장형'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OOO 상품을 추천드립니다. 본 상품의 예상 수익률은 ~"


물론 은행에서는 수십억 자산가들에게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각각에게 맞는 다양하고 효율적인 재테크 방법과 절세 방법을 알려준다. 설사 잘못되면 해당 지점에서 수십수백억이 빠져나가니 지점장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 보증금 혹은 평생 갚아야 할 담보대출이 껴 있는 아파트 하나가 재산의 전부이면서 화려한 재테크와 멋진 노후를 꿈꾸는 우리들이 들을 수 있는 은행원의 답변은 상기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내 집 하나와 노후 생활비 마련을 위한 재테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은행을 포함하여 금융기관을 25년 다니면서 노후 준비에 대해서 질문을 주셨던 수많은 분들에게 했던 나의 노후준비와 관련한 답변 역시 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이실직고한다.


노후에 돈은 물론 중요하다.

노후에 진짜 돈은 중요하다.

노후에 돈은 엄청 중요하다.


나이 들어서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하고, 여행을 가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어야 하니까.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누가 돼서는 안되고, 때로는 자식들이 나를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야 하니까. 자식들이 정말 힘들 때는 나에게 맘 편하게 연락할 수 있어야 하니까. (물론 자주 힘들면 안 되겠지...)


그러나 내 나이 50이 넘어보니 알게 되었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25년 동안, 매일같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가서 누가 지시하는 일을 하고,  나와 내 가족이 아닌, 회사 대주주와 회사의 고객을 위해 오후 늦게까지 일을 했던 이 노비 근성 탈피를 벗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어진 나는 혼자 공원을 향했다. 공원을 걷다 보니 커다란 현수막이 보였다. 그 현수막의 끝에는 오렌지색의 빨랫줄이 보였다. 빨랫줄을 만지작 거렸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한참을 고민 후 깨달았다.


"아..나는 지금 노인이 되고 있는 중인데, 나의 몸과 마음은 아직 노인이 되는 준비를 하지 않았구나."

"노후 준비는 재테크를 통해서 그럭저럭 하고 있었는데, 노인이 되는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았구나."


바로 집으로 와서 나는 그동안 했던 노후준비가 아니라 멋진 노인이 되기 위한 노인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멋진 노인이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를 종이에 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노인 연습 01] 최소한의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연습을 하고, 친한 친구를 초대하자.

[노인 연습 02] 최소 백 이상의 수입이 매 월 발생할 수 있는 투자를 미리미리 해 놓자.

[노인 연습 03] 물리적 소화력이 아닌, 급변하는 경제/금융지식에 대한 소화력을 높이고 운동을 하자.

[노인 연습 04] 비수기 가장 저렴할 때, 언제든 해외 자유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연습하자.

[노인 연습 05] 펀드와 보험은 우리의 안락한 노후를 보장하지 못한다. 적당하게 들어놓자.  

[노인 연습 06] 대학 간판은 무의미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자.

[노인 연습 07] 회사를 다니는 긴 시간 동안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기억하자.

[노인 연습 08]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다양한 도전으로 평생 같은 일만 하지 않도록 하자.

[노인 연습 09] 스위스 사람도 마냥 행복하지 않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노인 연습 10] 우물쭈물 말고, 지금 당장 평생의 취미를 찾고 노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하자. 뭐든!!




[노인 연습 01] 최소한의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연습을 하고, 친한 친구를 초대하자.


가끔 TV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빈약한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하시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반찬이라고는 대충 만든 계란프라이와 어제 드시다만 김치를 냉장고에서 김치통 그대로 꺼내서 드신 후,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시고 다시 하염없이 TV를 보시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다른 건 몰라도 노인이 되어서 요리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저 하염없이 TV를 보는 시간을, 나의 늙은 몸을 위한 멋진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지 않을까?


대충 만든 계란프라이가 아니라 계란이라는 같은 값싼 재료로 예쁜 계란말이를, 김치통의 쉰 김치가 아니라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서 먹으면 좋지 않을까. 그 김치볶음밥 위에 화분에 대충 심어 놓은 대파 조금 잘라서 송송 썰어 위에 올린 후, 예쁘게 만들어 놓은 계란말이를 같이 먹으면 같은 재료라도 노인이 된 나의 삶이 조금은 더 풍족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노인이 되기 전에 습득해야 하는 요리 SKILL No.01] 김치볶음밥과 계란말이


우리가 노인이 되기 전에 습득해야 하는 요리 SKILL 중 Number 1 은 단연코 김치볶음밥과 계란말이다. 노인이 된 우리집의 냉장고 안에는 늘 김치와 계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필요한 재료는 싸구려 소시지와 청양고추, 대파, 식은 밥, 계란 3알, 혹시 모르니 냉동실 깊숙하게 손을 넣어서 뒤져보자, 언제 샀을 지 모르는 냉동새우가 깜짝쇼를 할 지 모르는 법, 그리고 마지막은 오늘의 화룡점정 김치다.  


모름지기 음식이라는 건, 재료 손질이 90%인 것을 알아야 한다. 소시지는 반으로 잘라서 반은 계란말이를 위한 통으로, 나머지 반은 김치볶음밥 안에 들어갈 속재료로 잘게 잘랐다.


대파는 파 기름을 내야 하고 청양고추는 느끼함을 잡아주는 용도로, 계란을 풀어서 후추 휙휙, 김치는 꼭 짜서 송송 썰고 (절대 물에 씻으면 안 된다.) 냉동실 깜장 봉지의 새우 4마리는 비린내가 날 지 모르니, 향이 좋은 술을 조금 넣은 물로 찌는 것이 좋겠지? 계란말이 안의 화룡점정, 싸구려 소시지 반토막, 음... 생각대로 모양이 잘 나와야 할 텐데, 계란말이 특성상 한번 모양을 잘 못 잡으면 끝장이니, 조심 또 조심하는 중


새우는 비린내 없이 잘 쪄졌고, 계란말이는 모양이 잘 나와야 할 텐데. 이제 김치볶음밥을 만들기 위해서 고소한 들기름으로 파 기름을 내 볼까?


물기를 뺀 김치와 위에서 송송 썬 소시지들을 투하 후, 밥을 넣고 잘 볶으면 김치볶음밥이 완성된다. 오늘의 화룡점정, 계란말이 모양이 잘 나와야 할 텐데...... 두근두근....오.. 잘 나왔다. 정성스럽게 술로 찐 새우랑 같이 데코를 해 볼까? 청양고추로 눈을 만들어 보겠다, 모름지기 첫인상은 눈웃음이 최고니까.


김치볶음밥을 모양을 담아 잘 데코를 하고, 그 위에 김가루를 솔솔 뿌리고, 랍스터 맛이 나는 새우 한 마리를 올리면 완성!!!!


노인이 될 예정인 나는 김을 좋아하니까 김가루를 조금 더 솔솔솔~


중요한 건 맛있게 먹고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뭐든 뒷정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오 마이 갓.  노인이 될 예정인 당신의 냉장고에 김치가 없다구요? 괜찮습니다. 파와 반숙 계란만 있어도 우리 예비 노인을 위한 근사하고 눈에 보기 좋고, 맛있는 한 끼 식사가 가능하거든요.


이처럼 나는 얼마 후 노인이 되어 대충 맛없는 한 끼를 후다닥 먹고 하염없이 TV를 보느니, 삼시세끼 차승원의 마음처럼 3 시간에 걸쳐서 큰 비용 지출 없이 매 끼 식사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와이프와 함께 열심히 먹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 요리책을 보면서 비슷하게라도 따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나중에 그때가 되면, 노인이 된 나는 3시간 동안 열심히 만든 음식을 마음이 맞는 친구 한 명을  가끔 초대해서 같이 먹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가끔씩 와이프와 친구들이 먹고 싶어 하는 요리를 라디오 신청곡 받듯이 신청받을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재료비 원가는 받으려 한다. 닭볶음탕을 한다면 생닭 반 마리 비용 정도는 청구해야지.


물론 아무도 내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삼시 세끼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 철마다 나오는 채소를 이용해서 다양하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어야겠지. 그리고 드립 커피 정도는 전문 바리스타 부럽지 않게 내려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


'어이~ 친구. 내가 맛있는 감자전과 김치찌개, 후식으로 맛있는 커피 준비할 테니 천 원만 가지고 내일  한시까지 와, 알고 있겠지만 공짜는 안돼.'


“엇..쏘리..여보, 당신 친구를 먼저 초대할께. 노인이 된 나는 현명하게 사는 방법을 잘 아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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