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 중인 강남 개포동 부동산 임장기
초중고 시절. 내 도시락 반찬의 대부분은 김치볶음과 검은콩자반이었다. 그리고 농심 안성탕면 봉지에 잘 구운 김을 열 장 정도 항상 넣어주셨다.
4학년인가 5학년이었던 때로 기억한다 그 당시 모든 반에는 도시락 파벌이 존재했다. 소위 말하는 비슷한 반찬을 싸오는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여서 먹는 구조가 되었다. 그 맛있는 분홍색 소시지 전과 문어 대가리 모양의 후랑크 소시지를 주로 싸오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반찬을 공유했고, 365일 내내 김치를 싸오는 숫기 없는 친구들 역시 김치만 싸오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곤 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문학소년이 속했던 복불복파가 있었다. 매일 김치만 싸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매일 분홍 소시지나 후랑크 소시지만을 싸올 수 없는 형편의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어쩌다가 맛있는 반찬을 싸오는 학생들의 점심 모임, 바로 그곳에 문학소년이 속해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게릴라처럼 젓가락 하나만 들고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반찬을 훔쳐먹는 놈들도 있었다.
우리 복불복파 네 명은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통을 앞에 놓고 하나 둘 셋을 센 후 도시락 반찬 뚜껑을 동시에 열었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네 명의 반찬 통 모두 분홍색 소시지 전이 가득 차 있었고, 그 날은 한마디로 계 탄 날이었다.
그러나 매일 계를 탈 수는 없는 법...
4 명 중 한 명꼴로 반찬이 좋았고 나머지는 김치볶음에 콩자반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만 돼도 우리는 한 명이 가져온 소시지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그러나 상당수 많은 날은 네 명 모두 김치나 김치볶음이었는데 그런 날은 조용히 밥을 빠르게 먹고 운동장으로 나가서 놀았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고소한 튀김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했다. 문학소년은 엄마가 부엌에서 돈가스를 만들어서 내 도시락 통에 넣고는 그 위에 달달한 케첩을 듬뿍 뿌리는 것을 그만 봐 버렸다. 그것도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정도의 두툼한 돈가스였다. 어린 문학소년의 가슴은 콩닥거렸다. 이 얼마만의 돈가스 이던가.
학교를 가는 내내 문학소년은 갈등했다. 이 두툼하고 위대한 돈가스를 나 혼자 먹고 싶었다. 결국 생각해낸 꾀는 점심시간에 배가 아프다고 하는 거였다.
점심시간이 되니 복불복파 3명이 내 주위로 도시락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아, 나 배 아파. 밥 못 먹겠어. 너희들만 먹어.
양호실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가장 친했고 우리 집 바로 근처에 살던 친구 희석이가 이야기했다.
아냐, 그냥 나 누워 있을게. 너희들 먼저 먹어. 나는 내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픈 척 앉아서 물을 들이켰다. 복불복파 세명은 자기들끼리 옆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흣, 냄새를 보니, 저 중에 소시지나 맛있는 반찬은 없어 보이는군, 문학소년은 꼬르륵 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점심시간을 버텼다.
드디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시킨 심부름이 있다고 하고 친구들을 피해서 쪼르르 학교 운동장 구석으로 달려갔다. 독산 초등학교의 드넓은 운동장 한 구석에서 나는 드디어 그 크고 위대한 돈가스가 있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케쳡 범벅이 되어 있는 돈가스 덩어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감사하게도 돈가스를 내가 먹기 편하게 잘라 놓으신 상태였다.
감격에 겨운 문학소년은 급하게 손가락으로 하나를 집어서 그 케첩 범벅의 덩어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어?
그 맛은 돈가스가 아니었다. 첫 번째 문학소년의 입으로 냉큼 들어온 그 케첩 범벅의 덩어리에는 고기가 없었다. 원래 돈가스의 크기를 크게 하려고 얇은 고기에 두툼한 밀가루 피를 입히던 엄마였으니, 우연히 돈가스 가장자리의 한 덩어리가 내 입으로 들어왔겠지. 입에 있는 그 밀가루 덩어리 튀김을 급히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는 두 번째 돈가스 덩어리를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어?
두 번째 역시 밀가루 튀김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마지막 덩어리까지 그 돈가스에는 고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마지막 돈가스까지 결국 밀가루 튀김이었음을 확인한 나는 그냥 남아 있는 맨 밥을 먹었는지, 버렸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집으로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뒤로 친구 희석이가 따라왔다.
아까 운동장에서 혼자 머 먹더라?
아,,, 배가 좀 좋아져서 도시락 먹었어.
혼자 맛있는 거 먹었구나? 반찬 뭐였는데?
응,,,,,,,돈가스,
와.. 맛있었겠다. 근데 배는 이제 안 아픈 거지? 아 맞다. 나 이사 간대.
어디로?
몰라. 개포동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무슨 동네 이름이 그러니, 개가 사는데야?
몰라, 엄마가 여기 독산동은 아니라고 강남으로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응.... 친한 친구가 이사를 간다고 하는데 문학소년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돈가스 생각뿐이었다.
몇 개 월 후 친구 희석이는 독산동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갔다. 오늘은 강남 개포동 임장기이다.
개포동은 강남 끝자락에 있어서 일부 강남 사람들 사이에서는 강남으로 쳐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강남 임장은 압구정이나 도곡동 같은 유명한 데가 아닌 개포동을 먼저 보는 것이 강남 부동산 초보자들에게 효율적이다. 많은 분들이 재래시장이 이 비싼 강남땅에 아직도 남아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강남에는 여기 이외에도 의외로 재래시장들이 구석구석 남아 있다. 재래시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잠시 뒤 대치동 은마상가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낡은 상가 규모에 놀랄 것이다. 역삼동에 위치한 재래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 개포동은 강남의 초기 모습을 아직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금은 거의 상전벽해와 같이 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해서 강남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강남 임장의 첫 장소로 적합하다. 강남의 초창기 주공아파트 단지 모습에서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래로 탈바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과천을 가 보신 분이라면 숲 속에 있는 아파트 느낌도 들 텐데 개포는 강남에 있는 과천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 앞이 유명한 도곡동과 대치동이기도 하고, 지금은 저렇게 온통 낡은 주공아파트에 어수선한 공사장이지만 몇 년 뒤에 와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미 재건축이 완료되어서 입주를 마친 곳도 있다. 본격적으로 개포동/대치동 임장을 시작해 보자.
먼저 개포동과 대치동의 주요 지하철역에서 서울 주요 핵심 일자리인 강남, 여의도, 광화문, 용산, 판교까지의 소요시간을 한번 확인해 보면 대부분 30분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여의도도 교통의 요지였지만 여기도 만만치 않다. 서울 주요 핵심 일자리까지 40분 내에 다 갈 수 있다. 뛰어난 교육환경에. 직주근접에, 훌륭한 문화시설은 물론 개포동의 경우에는 과천과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셈이다.
개포동 임장의 시작은 분당선 개포동역 5번 출구에서 시작해서 지도의 노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위 아파트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먼저 개포주공 5단지 뒤 개포 골목시장 안에 위치한 ‘빨간 어묵 부산오뎅’에서 어묵 하나 먹고 임장을 시작하도록 하자. 가격도 저렴하고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뒤로 보이는 개포주공 5/6/7단지는 각각 천 세대의 총 3천 세대로 된 주택 재건축 중인 아파트로 조만간 저 뒤에 있는 디에이치 자이처럼 재건축이 될 것이다. 앞 양재천에 뒤로는 대모산이 있어서 강남권의 배산임수와 같은 지역이다, 물론 한강에 비해 양재천은 작지만, 매우 깨끗하고 철저하게 관리되고 조용하기 때문에 자동차로 늘 북적이고 매연이 있는 한강 인근보다 거주 만족도가 높다.
개포동 바로 옆의 일원동에 있는 디어이치 자이는 2021년 7월 입주 예정으로 앞서 본 주공 5/6/7 단지들의 미래 청사진이라는 생각으로 보면 된다 어차피 안은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을 터이니 바로 3분 거리인 일원 우성 7차 (개포우성 7차)로 가보자 이 아파트는 방금 본 디에이치 자이 공사현장 옆 3호선 대청역 근처 일원동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에 있는 동은 역까지 거의 1-2분에 갈 수 있는 대청역 초역세권 단지이다. 개포동에서 3호선을 이용하기에는 여기만큼 좋은 데가 없다. 분당선의 경우 서울 주요 일자리를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하철 노선이 아니기 때문에 직주근접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로 뒤의 개포한신 (일원동)도 우성 7차와 맞붙어서 3호선 대청역을 이용하기 수월하고 특히 대치동 학원가와도 인접해 있어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와서 보면 느끼겠지만 길거리에 정말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눈앞에 보이는 아이들이 다 대치동의 학원가를 이용하는 학생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여기 개포동의 아파트들이 향후 어떻게 변할지를 보기 위해서 2018년도 입주한 최신 아파트로 가보자. 3분 거리에 위치한 래미안 개포 루체하임 (일원동)으로 오는 길도 역시 중간중간 중/고등학교가 많이 있다. 개포동과 대치동이 교육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3호선 대청역과(8분) 분당선 대모산 입구역(15분)이 인접한 역세권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고 초품아 아파트를 넘어선 초/중/고품아 아파트다. 직접 와서 보면 길거리의 아이들이 부러을 것이다.
약 30분 정도 걸어가면 주공 4단지가 재건축을 하고 있는 개포동의 대장주 개포 그랑 자이에 도착한다. 예전 재건축 직전에 10평 아파트가 15억까지 했었다. 말이 그렇지 10평이 15억이면 입이 벌어질 만 한데 당시 용적률이 80%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10평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 30평대 강남 아파트가 나오는 구조였는데 추가 분담금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유명한 경기여고와 개포 고등학교를 거쳐서 래미안 개포 주공 2단지가 재건축이 완료된 2019년 2월에 입주한 블레스티지로 가보자.
참고로 중간에 보이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는 1924년에 전기기술자 양성을 위해서 일제시대 때 '경성전기학교'가 만들어진 후, 거의 100년이 된 역사가 있는 학교다. 수도공고에서 약 10분 더 걸어가면 나오는 래미안블레스티지 (개포주공 2단지)는 2019년 신축 아파트로 수영장/골프/사우나 등 Community센터가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방금 지나온 수도공고 앞 디에이치아너힐스와 개포공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대단지 숲세권 아파트인 셈이다. 이 두 아파트 모두 잠시 뒤 살펴볼 대치동의 편의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고, 바로 옆 개포주공 1단지가 개발이 완료되면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물론 역이 좀 멀다는 게 단점이 있기는 하다.
개포주공 1단지는 재건축 전에 5000세대가 넘었던 아파트로 거의 미니 신도시급인 재건축 단지다. 개포주공 1단지 옆에 위치한 개포동 우성 9차는 포스코건설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모든 개포동 아파트들이 재건축만 기다리는 거는 아니라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여기는 동 2개/용적률이 250%에 달하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애당초 재건축이 힘들다 판단 후, 리모델링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연이어 보이는 개포동 우성 3차 > 현대 1차 > 개포동 경남 아파트는 통합 재건축 추진 중이다. 이 3개를 합치면 약 1500 세대고 용적률은 모두 170% 정도여서 통합이 가능했다. 바로 아래의 개포 현대 2차는 용적률이 156%로 조금 더 낮아서 따로 가는 게 더 실익이 크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앞의 단지들과 같이 재건축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익일지 손해일지는 역시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매봉역 쪽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개포동 현대 2차는 양재천 변 근처의 조용한 아파트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분당선 구룡역이나 3호선 매봉역 까지는 도보로 약 10-15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천천히 걸어올 수 있으나 날씨는 항상 좋지만은 않다는 점이 초역세권이 아닌 애매한 역세권의 함정이다. 개포동 임장이 얼추 끝났으니 이제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으로 가자. 바로 도곡을 둘러볼 계획이라면 구룡 중학교와 개일 초등학교를 지나 도곡역으로 이동해 보자.
그 날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따졌을 법도 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실망감과 배신감이 너무 커서였을까? 아마 당시 사춘기였던 누나에게 돈가스를 싸주고 나니 남은 게 없어서, 아무거나 잘 먹는 나에게는 밀가루를 튀겨 주신 거였겠지. 그나저나 그 날 아들에게 밀가루를 튀겨서 반찬으로 싸 주신 엄마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다시 복불복파에 열심히 붙어서 도시락을 먹었다. 가끔 나만 분홍 소시지 전이였고 3명이 김치였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사이좋게 소시지와 김치를 나눠 먹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정말로 희석이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강남으로 이사를 간 희석이는 과학기술고등학교를 가고 KAIST를 간 뒤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으로 박사학위를 따러 갔다는 말을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엄마를 통해서 우연히 들었다. 당시 문학소년은 IMF 때문에 유학을 포기하고 직원 3명의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https://brunch.co.kr/@ksbuem/169
https://brunch.co.kr/@ksbuem/83
희석아 너 유학 갔다 와서 강남에 살고 있니? 아니면 미국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니? 전세계적인 경기불황 때문에 요새 미국에서도 직장 잡고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뉴스가 나오더구나. 이번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를 받은 와이프 사촌동생도 미국에서 좋은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얼마전 국내로 돌아와서 S전자로 들어갔다고 하네.
혹시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면 거기서 잘 버티면 좋겠구나. 그나저나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지금 누구 걱정을 하고 있는 거니..
브런치 독자분들의 격려와 지원 덕분에, 문학소년의 가슴 따듯한 에세이와 일반 재테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 "적금밖에 모르는 문과생의 돈공부"가 출간 되었습니다. 강성범(문학소년) 저-2022년 1월 밀리의 서재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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