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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문학소년 May 22. 2020

회사는 망했고 와이프는 말없이 지갑에 오만 원을 꽂았다

그 번화한 역삼동 뒤편에 고즈넉한 아파트가 있었구나.

1998년, 지도교수님과 선후배들이 합심해서 벤처회사를 창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IMF의 풍파를 맞고 합격을 보장했던 대기업과 은행으로부터 채용 취소를 당한 뒤, 총 직원 5명의 조그만 개인회사를 다니고 있을 당시였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긴 교수님이 나에게도 창업 멤버로 들어오라고 권유를 하였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사표를 냈다. 그리고 바로 밤샘의 연속이었다. 당시 창업한 회사는 요새 핫 트렌드인 빅데이터 관련 IT회사였다.


처음 몇 개월은 어려웠으나 사장님 겸 교수님의 탁월하신 능력과 창업 멤버 5명이 수개월 간 집에 가지 않고 밤을 새워서 일하는 발군의 노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십억의  Funding을 받게 되었다.


회사는 당시 대한민국 벤처의 심장이었던 강남구 역삼동의 번듯한 사무실로 옮기고 정상적으로 굴러가게 되었다. 직원 5명의 벤처는 3년이 지나자 직원 30명의 어엿한 회사로 성장했다. 월급은 200 만원도 안되었지만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꽤 많은 지분이 있었으니까.


회사는 스멀스멀 코스닥 상장 이야기가 나왔고, 교수님과 창업 멤버 중 가장 맏형이었던 M선배는 나를 포함한 후배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회사가 상장한 후 큰돈을 만지게 되어서 인생을 망칠까 봐 조심스러워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회사의 모든 기획을 도맡아 하던 친구 S의 얼굴도 점점 밝아져 갔다.  그만큼 우리는 잘 나갔었다.     




이 무렵 첫사랑이었던 와이프에게 다시 연락을 하고 결혼도 했다. 월급은 150만 원 밖에 안 되었지만 와이프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분의 존재를 얼추 알고 있었다.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  


당시 회사는 자금세탁 및 보험사기 적발과 관련한  대규모 프로젝트와 솔루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고, Funding 받은 상당 금액을 그곳에 투자했다. 사업성은 확실해 보였고 곧 성공할 것 같았다. 우리들은 코스닥 상장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신혼여행을 갔다 온 후, 회사의 분위기가 약간 이상해졌다. 심혈을 기울인  자금세탁과 보험사기 적발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되었고, 솔루션 개발에 투자된 회사 자금의 상당 부분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우리에게 투자를 한 창업투자 회사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긴 회의 결과 사장님을 포함한 우리 창업 멤버는 프로젝트 실패로 인한 자금 손실을 포함한 모든 책임을 지고 모두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퇴직금도 절반 정도밖에 못 받고, 가지고 있던 지분은 헐값인 대략 두 달치의 월급으로 새로 부임하는 사장에게 넘겨야만 했다. 사장님 겸 교수님은 회사 자본금의 원천이었던 강남의 집을 날리고 학교로 다시 돌아갔고, 나를 포함한 4명은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가게 됐다.


때는 바야흐로 호기 있게 결혼식을 올리고 3개월이 막 지나는 시기였다.


마지막 출근 날 나의 얼마 안 되는 짐을 가지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정처 없이 역삼동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때 알았다. 벤처 사무실만 있는 줄 알았던 역삼동에도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결혼 3개월 만에 실업자가 된 나에게, 이혼을 하자고 요구할 줄 알았던 와이프는 오히려 덤덤했다.


잘 되겠지,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받아야 했던 퇴직금이나 가지고 있던 지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이력서를 제출할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PC방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했다. 당시 돈 아끼느라 신혼집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와이프는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불러 세웠다.


'잠깐 지갑 좀 줘바.'


그때 내 지갑에는 PC방 이용료와 점심으로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컵라면 하나 먹을 오천 원이 있었다. 와이프는 자기 지갑을 열고 오만 원을 꺼내서 내 지갑에 꽂아줬다. 안절부절못하는 나와 말없이 오만 원을 지갑에 넣어주던 와이프의 눈이 마주쳤다.


'밥 굶지 말고.'


그 앞에서는 내색을 못 했지만 현관문을 나오고 문이 닫히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런 모습 보여주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나는 PC방으로 가서 이력서를 작성한 후 여러 회사에 제출을 했다. 이력서를 쓰고 제출하다 보니 어느덧 12시가 다가왔고 나는 밥을 먹기 위해서 PC 방을 나왔다. PC 방에서는 라면을 팔고 있었지만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건물 1층의 편의점을 지나 그 옆의 중국집으로 갔다.


여기 자장면 곱빼기 하나요!




세월은 흘렀고 나는 운 좋게도 H카드와 H캐피탈을 거쳐서 S은행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였다.


그동안 재테크와 서울 부동산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였고, 아래는 당시 맴돌았던 강남구 역삼동에 대한 아파트 임장이기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역삼동에 대단지 아파트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선릉역 (2호선, 분당선)로 나와서 7분 정도 걸어 동부 센트레빌에 도착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많은 분들이 역삼동 인근만 보고 대형빌딩과 유흥가가 밀집한 곳이라 생각하지만, 이 곳 역삼동만큼 사무단지와 주거지가 완벽하게 분리된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이 대치동 학원가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중의 하나다. 그래서 역삼동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중에서 동부센트레빌은 나 홀로 동이라 큰 인기가 없지만, 바로 인근 대단지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갭 메우기를 하는 착한 아파트라고 보면 된다. 이어서 주욱 이어지는 개나리 SK 뷰 (5차) / 테헤란 아이파크 / 현대 까르띠에 710 / 역삼 자이 (개나리 6차 재건축) 모두 도성초/진선여중/진선여고/선릉역/한티역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이며, 인근의 개나리 4 차역 시 2021년 입주 목표로 역삼아아파크로 재건축 진행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이어지는 삼성래미안 펜타빌 / 개나리래미안/ 역삼 푸르지오/ 개나리 푸르지오/ 역삼 e편한 세상 모두 한 번 와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역삼동의 대표 아파트 들이며, 역삼역 인근의 번잡한 사무실만을  본 사람들이라면 여기가 과연 역삼동인지 헷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가격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비싸다. 이들 모두 도성초/진성여중/진성여고/ 선릉역/한티역 초인접했으며 마트와 재래시장도 인근에 있는 단지들이다.


이어서 있는 역삼 래미안/ 역삼 2차 아이파크 / 래미안 그레이튼 3차 / 래미안 그레이튼 2차 모두 합치면 약 2,000세대에 달하는 대규모 아파트로 역삼중학교와 역삼 재래시장이 인근에 있어서 생활에 편리하다. 래미안 그레이튼 2차에서 6분 정도 걸으면 한티역 (분당선)에 도착할 수 있으며, 이로서 역삼동 임장을 마칠 수 있다.




 20 후반을 바쳤던 회사가 망하고 (정확히 말하면 초기 창업자 5명만 망했고, 회사는 창투사에서 새로운 사장을 뽑아서 사업 방향을 바꿨다. 바뀐 아이템으로는 상장을 해서  돈을 벌지 못하지만 직원들 월급 정도는 밀리지 않고   있는 수준으로 그 후 20년 넘게 그럭저럭 운영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역삼동 지역을 정처 없이 돌아볼 당시, 나는 안산에 5천만 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었다.


당시 내 재산으로는 택도 없는 역삼동 아파트를 보면서 그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었다. 실업자가 된 마당에 아파트는 무슨 아파트,


그때 그 무심코 지나쳤던 역삼동 아파트를 어떻게든 샀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만 누구나 그렇듯이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여보, 그때 내 지갑에 꽂아준 5만 원 가지고 컵라면 말고 짜장면 곱빼기 먹고 힘내서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어, 고마워 ~  땡큐!!!

 



브런치 독자분들의 격려와 지원 덕분에, 문학소년의 가슴 따듯한 에세이와  일반 재테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 "적금밖에 모르는 문과생의 돈공부"가 출간 되었습니다. 강성범(문학소년) 저-2022년 1월 밀리의 서재 Original


모두 브런치 독자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https://millie.page.link/GCL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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