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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Oct 12. 2020

신입은 휴가 가지 마!

라떼는 말이야

인턴 기간이 종료되고 당연히 정직원이 되는 줄 알았는데, 수습기간이라며 월급을 80%만 주겠단다. (관련 글 : 신입은 돈 따지면 안 되나요?)


월급의 80%만 받으며 출퇴근하던 어느 여름날, 대표가 본인의 휴가 계획을 이야기하던 중 내게 "너도 며칠 휴가 다녀올래?" 하길래  "와! 그래도 돼요?" 물었다. 그냥 리액션일 뿐이었다. 근데 그 말을 놓치지 않고서 "그러게. 안 되겠네. 넌 아직 수습사원이잖아"라고 했다. 맙소사. 그냥 고맙습니다 했어야 했나.


현타가 왔다. 평소 가족 같은 회사를 강조하며 점심시간에 쌀 씻고 밥하게 하더니, 이럴 땐 칼같이 회사라며 수습사원을 강조한다. (관련 글 : 점심시간에 밥해먹는 회사)


직원의 권리는 ‘가족 같은 회사' 운운하며 어물쩍 넘어가고, 직원의 의무에 대해선 ‘여기는 회사'라며 사회가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를 강조하는 아이러니.



당시 난 창립멤버였기 때문에 모든 직원(그래 봤자 몇 명 안되고, 대표의 오랜 지인)들과 입사일이 정확히 똑같았다. 하지만 본인들은 평소에도 별 희한한 이유로 자주 결근하면서 내겐 신입이라는 이유로 여름휴가를 단 하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내게 합법적으로 연차가 주어졌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으면서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업계 1~2위 회사 이름을 운운하며 '그래도 거기보다 우리 회사가 낫다'는 걸 자주 강조했다(... 네....?...)



이듬해 정직원이 되고, 재직한 지 만 1년이 넘어도 여전히 연차를 쓰는 방법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고, 쓰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시즌이 왔다. 그땐 나 같은 사원급 직원들이 조금 늘어났는데, 대표는 '너희들끼리 날짜 겹치지 않게 여름휴가 일정을 짜라'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겹치지 않게 일주일씩 잡았는데, 얼마 후에 대표가 알고 난리가 났다. 말 그대로 '난리'였다. 도대체 그 어떤 회사의 사원들이 휴가를 5일이나 쓰냐는 거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일장 연설이 시작되고, 옆에 있는 임원(대표 지인)들에게 '우린 저 연차 때 여름휴가 며칠이나 썼지?'라며 큰소리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과차장급이었을 때에도 주말 포함해 사흘 쉴까 말까였는데, 어떻게 사원이 평일 5일이나 쉴 생각을 하냐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놀랐다.


그럼 여름휴가로 며칠 쓰라고 미리 말을 해주든가! 말을 안 해주니 며칠을 써야 하는지 몰랐고, 대학 동기들이 다들 5일 쓰길래 그 정도 써도 되는지 알았다. 게다가 난 이 회사가 처음인 데다 휴가 역시 처음으로 내는 거라 감이 없었다. 하도 난리길래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너는 회사에서 별 말 없어?' 물어보니 다들 앞뒤로 주말 껴서 9일 정도는 쉬는 분위기라고 했고, 아무리 신입사원이어도 나처럼 여태 휴가 한 번 못쓴 친구는 없었다.


슬슬 퇴사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기점으로 했던 거 같다. 1년 넘게 딱 하루 쉬며 일했는데(대학 졸업식날), 만 1년 이상 다니고도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쓰는 게 이렇게 눈치를 볼 일인가. 여름휴가 5일 쓴다고 ‘라떼는 말이야'가 끝도 없이 나올 줄 몰랐다.


그럼 예약해둔 차편과 숙소를 취소하겠다고 했더니 대표는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네가 정말 몰라서 그랬던 거 같다"며 선심 쓰듯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찝찝했다.


아주 여러 번 퇴사 충동이 있었지만, 이때 결정적으로 결심했던 거 같다. 대표는 종종 ‘우리회사니까 가족처럼 품어주지, 큰 회사 다니기 힘들 거다'라고 가스라이팅 했지만, 이직은 너무나 순조로웠다.


새로운 회사 첫 출근 날, 인사담당자가 날 부르더니 내가 써야 할 월차와 연차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입사한 지 만 한 달도 되지 않아 '보장된 월차'를 쓸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연봉체계도 설명해줬는데, 어떻게든 월급 덜 주려고 꼼수 쓰던 전 회사와 달리 모든 게 명확해서 좋았다. 1년 N개월만 경력 인정이 됐으니 만 2년을 채우는 몇 달 후에 만 2년 차 연봉으로 반영될 거라고 명확하게 말해줬다. 전 회사라면 경력이 애매하다며 신입 연봉을 줬을거란 생각이 스쳤다.


보장된 휴가를 모두 쓰도록 장려하는 분위기, 중간 퇴사자는 미사용 연차를 칼같이 계산해서 급여에 포함해 지급하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새로운 회사에 경력직으로 들어갔을 때,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인턴들도 있었다. 인턴들에게도 한 달마다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고, 인턴은 야근을 시키지 않는 암묵적 룰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 회사처럼 기껏 인턴기간 끝나고 나니 '인턴 끝났으니 수습기간이며 월급의 80%만 준다'는 갑분 헛소리를 하지 않고 입사할 때부터 상호 간 명확히 했다. '인턴은 3개월 후 정직원이 된다. 다만 평가에 따라 인턴이 종료될 수 있다', '경력직은 수습기간 3개월이 있지만 급여는 100% 지급된다' 등 명확히 하고 시작했다.


가족같은 회사 = 가'족같은’회사 라는 걸 초년생 때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회사라 부족하고 서툰 부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지금의 근로기준법과도 일부 다를테고).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TMI - 2020년 기준 근로기준법]

- 1년 간 80% 이상 근로 시, 15일의 유급휴가

- 3년 이상 근속했으면, 2년 기준 1일씩 연차가 늘어남

- 모든 연차를 합해서 1년에 25일 이상 될 수는 없음


근무기간이 1년 미만인 신입사원의 경우

- 한 달 만근 시 1일의 연차 발생

- 연차 발생일로부터 1년 간 사용 가능

- 1개월마다 하루씩 발생하므로, 소멸일이 각기 다름

* 근로기준법에서는 기준일을 입사일로 잡지만, 회계연도 기준으로 하는 회사도 있음



'근성'을 강조하던 그 회사에선 나를 끈기 없는 사람으로 치부했겠지만, 난 항상 생각한다. '더 빨리 도망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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