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독볶이 04화

3초만에 끝나버린 민망한 야자타임

독.볶.이 - 독백으로 볶은 이야기 (3)

by Fernweh

독.볶.이

(3) 3초만에 끝나버린 민망한 야자타임


[무대 전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의 박명. 무대 뒤편에는 가로로 길쭉하게 늘어진 평상이 놓여 있다. 그 위에 캐비닛처럼 보이는 함 다섯 개가 같은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세트 앞에 멀찍이 떨어져 선 주인공 역시 박명을 통해 어렴풋이 보인다. 5초간 정적이 흐른다. 이 정적을 깨는 날카롭고 높은 피치의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솬: 깔깔깔깔깔!

[무대 중앙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



앗, 죄송해요. 계신 줄 모르고 경박한 모습을 보였네요. 웃긴 얘기가 떠오른 바람에 그만...

여러분은 콤플렉스가 있나요? 다들 한두 가지는 있을 겁니다. 저도 있어요. 일단 겉으로 보이는 것 중엔 (한 손으로 코를 가리키며) 이 코가 콤플렉스에요. 콧구멍이 큽니다. 근데 성형하려고 했다거나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에도 콧구멍을 가리겠다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는 않았으니 엄청나게 심한 콤플렉스라고 할 순 없네요. 또 한 가지 콤플렉스라면 방금 들으신 웃음소리입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콧구멍보다 더 감추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이 갑자기 터져 나오는 순간에는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게 웃음소리니까요. 매번 웃을 때마다 늘 저렇게 깔깔거리지는 않아요. 방심한 순간 훅, 웃음이 터져 나올 때만 주변 사람을 놀라거나 당황스럽게 만들 웃음소리를 터뜨린답니다. 남자라는 제 성별이 프레임처럼 그 웃음 위에 씌워지면 ‘남자애가 왜 그렇게 웃냐’, ‘그렇게 좀 웃지 마라’ 따위의 지적을 받을 때도 있었죠. 노래할 때 이런 높은 소리를 쫙쫙 뻗어냈으면 가수가 됐을 텐데, 애먼 웃음소리에나 고음을 뽑아내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성별의 프레임에 이어 나이의 프레임도 해가 지날수록 차곡차곡 쌓입니다. 어렸을 때는 이렇게 웃는다고 손가락질받지 않았어요. 아이의 웃음소리가 차분한 저음의 소리면 더 이상하겠죠? 성인이 된 후에, 그러니까 성인 남자라는 프레임이 완성되고 나서야 제어할 수 없이 터지는 이런 높은 피치의 웃음이 주위 사람의 신경을 거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맹랑하기 그지없던 이십 대 초반에는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지적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프게 웃고 다녔습니다. 이십 대 중반에 접어 들자 제 스스로도 깔깔대는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졌어요. 그래 봐야 고작 한두 살 더 먹었을 뿐인데 말이죠. 잘 다린 셔츠와 정장 바지를 빼입고 회사로 출근하는 점잖은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이상적인 프레임처럼 구현된 사회에서는 경박한 웃음소리는 어우러지기 힘든 흠이었죠. 게다가 사회의 이런 보수적인 일면을 제가 처음 겪은 곳은 군대였답니다. 군에 있을 때는 정말 웃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웃음이 터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어요.

여기서 잠깐. 이십 대 중반으로 넘어왔다더니 군대라니요. 네, 전 군대를 늦게 갔어요. 적당히 철 들었을 거라 기대되는 적당한 나이를 먹은 채로 여성적인 면모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걸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한 군 조직에 들어갔으니 할 말 다 했죠. 그 면모라는 게 고작 웃음소리였지만 웃긴 감정을 최대한 참아야 했습니다. 군대는 계급 사회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이십 대 초반에 병장이 뒤늦게 들어온 이십 대 중반의 이등병을 짓누를 수 있는 곳이죠. 특히 하이 톤으로 이등병이 경박하게 웃어 젖히면 성격이 고약한 병장은 ‘긴장 안 하냐’ 따위의 지적으로 꾸짖음을 끝내진 않았을 거예요. ‘남자 새끼가 계집애처럼 웃냐’, ‘게이 새끼도 아니고 왜 그따위로 웃냐’ 같은 혐오 발언까지 했을 겁니다. 욕설을 조미료처럼 얹어서요. 다행히 전 이런 상황에 놓이진 않았습니다. 늦게 입대한 건 맞는데, 이등병으로 입대했다고는 안 했잖아요?

네, 저는 어울리지 않게 장교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여기서 또 한 차례, 장교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겠네요. 앞서 보신 경박한 웃음소리는 좋은 리더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장교의 이미지엔 그다지 어울리지 않죠. 저도 그걸 잘 알았기에 자대에서 적응하기 전까지는 까불거리는 모습을 꽁꽁 숨겼습니다. 문제는 적응하고 난 후였죠. 숨겨왔던 웃음소리의 빗장은 같이 지내던 이들과 친해짐과 동시에 저절로 풀려버렸습니다. 물론 대대장 이상의 지휘관 앞에서까지 긴장의 끈을 놓은 건 아니에요.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부대끼던 선배들에게나 제 본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낸 거죠. 운 좋게 같이 지내던 선배들이 모나지 않아서 제 경박한 웃음소리를 같이 웃어 넘겨주었습니다. 엄연히 동기나 후배가 아닌 만큼 친해졌다는 걸 빌미로 선을 넘은 적은 없기도 했고요. 긴장을 완전히 푼 건 병사들과 있을 때였습니다. 특히 당직 근무를 설 때는 중대에서 제 계급이 제일 높았기 때문에 윗사람과 있을 때 차리는 불편한 격식을 다 던져버릴 수 있었습니다. 군 생활에 뜻이 있어서 장교로 지원한 게 아니니 그들 앞에서 참다운 장교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죠. 제가 장교로 군 복무한 건 제대 후, 프랑스로 유학을 갈 때 쓸 돈을 모으는 것이었어요.

[스포트라이트 OFF, 전체 조명 ON. 흐릿하게 보이던 세트는 군부대의 생활관이었다. 주인공은 모델하우스를 선보이듯 세트 앞을 좌우로 서성거리며 대사를 이어 나간다.]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병사들을 짓누를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죠. 보시다시피 누굴 압도할 만한 덩치나 인상의 소유자도 아니고요. 아, 인상이요? 그래요, 공룡상이라 아주 조금은 위압감을 지니고 있긴 한데... 뭐, 아무튼 전 군기를 쏙 빼고 병사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당직 근무에 투입된 그날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점호를 하려고 했죠. 특이사항이나 전달 사항이 하나도 없는 평화로운 밤이었습니다.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던지고 점호를 끝내려다 너무 심심했는지 야자타임을 하자고 했어요. 이등병, 일병은 머뭇거렸는데 저와 유달리 친했던 상병, 병장 녀석들이 이때다 싶어 득달같이 달려들었죠. 감당할 수 있겠냐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호들갑까지 떨면서요.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 불만이 있었다면 이참에 털어놓으라는 취지고, 욕하면 안 되고, ‘야’ 라고 부르는 것도 안 된다는 치졸한 제약을 만들어 놓고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득달같이 달려든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손을 번쩍 들고 발언권을 가져갔어요. 뭐든 처음이 중요합니다. 무료하기 그지없던 점호 시간에 한바탕 웃어 보자는 기대감이 녀석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망울에서 반짝거렸습니다. 반대로 저는 얘가 뭔 얘기를 할지 몰라 조마조마했어요. 녀석은 하려는 대사를 어느 정도의 선에서 잘 다듬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눈치는 있다 이거죠. 3초 정도 정적이 흐르자 드디어 녀석의 입이 열렸습니다.


형, 진짜 다 좋은데 웃음소리는 좀 고치자.

그의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 온갖 웃음소리가 생활관에 울렸습니다. 큭큭, 키득키득, 하하, 호호, 낄낄. 다들 공감했는지 제각기 웃음소리를 뽐내더라고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 한 사람 있었군요. 바로 접니다. 그들이 뿜어낸 웃음소리는 제 방정맞은 깔깔거림과 달랐습니다. 폭소. 말 그대로 폭소는 맞는데, 남자의 음역을 벗어나진 않았으며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들 경박함도 없었습니다. 야자타임의 첫 표적이 돼 버린 제 웃음소리와 명백하게 대비를 이뤘는데, 그 대비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얄밉더라고요. 웃자고 한 얘기에 웃지 못한 이가 하필 웃자고 하는 놀이를 해보자고 한 장본인일 줄은 녀석들은 꿈에도 몰랐겠죠.


(고개를 오른쪽 아래로 45도로 떨구며 ‘흥’ 하는 콧바람을 내며 오른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피식, 하고 비웃는 제 웃음소리가 점점 수그러드는 각양각색의 웃음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어요. (올라갔던 입꼬리를 굳게 내리며 떨군 고개를 천천히 치켜 든다. 잔뜩 힘준 두 눈으로 눈치 없이 웃고 있는 병사들을 매섭게 노려본다. 낌새를 눈치챈 병사가 하나둘 웃음을 그친다. 소란이 멎자 정색하고 있던 주인공이 한마디를 던진다.)


"야자타임 끝. 50분까지 청소 마무리하고 취침 준비해라."

생활관을 나오기 전, 첫 스타트를 잘못 끊은 녀석의 동기들이 녀석에게 왜 하필 그런 농담을 했냐는 타박의 시선을 보내는 걸 봤습니다. 저 역시 그 녀석이 하필 제 콤플렉스를, 제 아픈 곳을 후벼 팔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웃는 걸 고치라는 그의 말에 모두가 싸하게 반응했다면, 그래서 다른 웃음소리와 제 웃음소리가 비교되지 않았다면 야자타임을 이렇게 갑자기 끝내진 않았을 거예요.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3초짜리 야자타임의 허망한 기억이 오랜만에 떠올랐네요. 허허허.


전역 후에 그때 야자타임을 도대체 왜 한 거냐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단톡방에서 ‘인제 와서 이야기하는 건데’라고 운을 띄운 한 친구는 그날 이후 잠시 저를 지칭하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어요. 그 별명의 뭐였냐고요? 사. 이. 코. 패. 스.


깔깔깔깔깔!


[암전] 3초만에 끝나


버린3 민망한 야자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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