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아래 참새네 가족 이야기
올 봄부터 지붕이 수상했다.
처음엔 바람이 좀 심한가 싶었다. 기왓장 사이로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이면 꼭 ‘째잘째잘’한 소리로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엔 네 식구만이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허락도 없이, 계약도 없이, 참새네 가족이 먼저 이사를 해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참새들이라는 게 말이야. 새로 이사 왔으면 이사떡도 좀 돌리고, 인사라도 건네야 할 텐데.
이 녀석들은 그런 예의는 아예 모르는 모양이다. 고작해야 창턱에 앉아 하루 종일 속닥속닥, 재잘재잘, 아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떠드는 것뿐이다. 게다가 지붕은 지들 것인 양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종종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박고는 우리 식구들을 놀라게 만든다.
준서와 서정이는 요즘 거실에서 자는데, 그 아이들 머리맡 방충망 바로 너머에서 참새들이 어찌나 다정하게 내려다보는지, 보면 볼수록 우리 집 아이들보다 오히려 저들이 우리를 더 오래 지켜본 이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기왓장 사이로 드나드는 참새 수를 세어봤다.
하나, 둘, 셋... 열다섯.
‘허허, 이 정도면 대가족이지.’
혼잣말로 “참새네 가장은 능력이 참 좋네. 저 식구들 다 먹여살리려면 어진간한 부지런하으론 어림도 없겠는데” 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침 그때, 창턱에 앉아 있던 가장으로 보이는 참새 한 마리가 날 노려보듯 째려보더니 짹— 하고 울었다. 그 짹— 소리가 어쩐지 사람 말처럼 들렸다.
“어이, 아랫집 양반. 별 걱정을 다 하시네. 성경도 안 읽으시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시는 거라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참새한테 한소리 들은 것 같은 그 느낌.
그렇지,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존재. 그 말씀을 잊고 살았구나.
그날 이후, 나는 참새를 전보다 더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응시하다 보면, 이 녀석들은 이제는 도망도 가지 않고,
도리어 먹을 것이라도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좁쌀을 한 줌 쥐고 창가에 뿌린다.
"미안하구나. 이사떡을 내가 챙기지 못했네."
참새네 식구들은 그 좁쌀 앞에서 북적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다시 또 기와 사이로 날아가 사라진다.
그 하루의 시작과 끝이 그토록 평화롭고 충실해 보일 수가 없다.
살다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런 이웃들이 찾아온다.
인사도 없이, 계획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존재들이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참새들은 그냥 새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계시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이가 따로 계시다’는 걸 잊지 말라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그런 다정한 깨우침 말이다.
지붕 위 작은 둥지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 덕분에,
나는 요즘, 매일 아침이 감사하다.
비록 내 삶은 여전히 계산이 앞서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지만,
참새처럼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걸 배웠다.
삶이란, 꼭 대단한 곳에 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날갯짓 하나에도 마음을 기울이고,
거기서 사랑과 뜻을 읽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가에 좁쌀 몇 알 놓는 일.
그 일을 하며, 나는 세상 무엇보다 풍요롭고 따뜻한 이웃을 맞이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