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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9. 2022

기분 좋은 헤어짐

하얀 집. 나의 두 번째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 주는 곳. 병원.


사람들은 아플 때 찾는 그곳이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수시로 들리거나 죽을 만큼 아플 때 나아지기 위해 가는 곳이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쉬었던 시간의 반은 우리 집이었고, 또 다른 반은 병원이었으니 두 번째쯤 되는 집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 전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는 길. 다소 낡았던 병원 외벽을 새롭게 도색하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점처럼 보이는 사람이 줄을 매달고 높은 꼭대기까지 새하얀 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휠체어를 밀어주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벽면 어느 한 부분은 네 거겠네.”

우스운 말장난이지만 실제로 저 벽을 채우던 하얀색 페인트의 어느 정도에 지분은 있다고 엄마의 말에 동의했다. 그만큼 나의 시간은 병원에서 많이 보내졌다.


 입원을 할 때는 대개 수술을 앞둔 그런 날들이었다. 일찍이 꺼지는 조명, 밤 열두 시부터 시작되는 금식, 긴장되는 두근거림. 쉽게 잠 못 이루는 병원 침대 위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고요한 병실에 울려 퍼진다. 나의 또 다른 집 병원은 나를 쉽사리 잠들지 못하게 한다. 공허한 공간, 적막한 공기. 사람 소리로 가득했던 6인실의 소란스러움도 어둠 속에 숨어버렸다. 새벽이 보여주는 진짜 병원의 모습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 괜히 어두운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옆자리 아픈 아이의 얕은 신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낮에 보았던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수술하기 전에는 그럭저럭 잘 만한 병원 침대가 수술을 하고 나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퇴원을 가장 기다리게 되는 날은 병원 밥이 맛이 없어졌거나 움직이지 못해 답답한 것보다 등이 너무 아프고 뜨거운 침대 대신 내 방에 있는 폭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을 때였다. 수술 후 뼈를 깎는 아픔에 울다 지쳐 잠에 빠졌다 문득 눈을 떴을 때 옆자리 꼬마 아이가 침대 너머로 똥그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수술 전 옅은 신음을 하던 아이일까. 아이는 갑자기 배시시 웃으며 은밀하고 조용하게 입을 뻥긋거렸다.


‘누나 나보고 웃어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웃기려던 아이는 엄마에게 들켜 누나 괴롭히지 말라는 꾸지람을 들으며 침대 난간 사이로 다시 쏙, 하고 사라졌다. 다른 병동과 달리 정형외과 병동은 수술을 중점으로 입원을 하기에 수술 후 후유증이 없다 싶을 때쯤 퇴원을 한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일주일 이상 얼굴을 마주하며 아픔을 나누는 우리는 헤어질 때 가장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모두가 모르는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위로한다. 우리의 아픔이 멀어지기를. 이곳에서 만나지 말기를.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대신 기분 좋은 헤어짐은 있었다.


병원에서 가장 좋은 인사말은 다시 보지 말자쯤. 퇴원할 때면 웃는 얼굴로 다들 다시 보지 말자며 헤어진다. 다시 보지 말자는 말이 어쩜 그리도 정겹게 들리는지. 공간이 주는 헤어짐은 같은 말이라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씁쓸한 인사말과 달리 기분 좋은 헤어짐을 고하며 병실을 나서는 마음은 한없이 가볍다. 보통 퇴원하는 날에 나의 모습은 여전히 앉아있기도 힘들어 이동하는 내내 누워있는 상태로 퇴원을 했다. 구름이 침대 같다는 낭만적인 말 대신 흔들리는 하늘에 마음이 울렁거린다. 병원에서 서로에게 끝인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위급한 상황이거나 세상을 등지거나. 누워서 파란 하늘을 보며 퇴원을 하는 순간에도 이곳은 삐용 거리는 구급차에 실려 오는 사람,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나를 빗겨 지나가고 있다. 헤어짐과 만남이 공존하는 애매한 공간,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헤어짐 속 나는 오늘도 무사히 살아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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