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의 어느 날, 제이클레프의 앨범을 들으며
나름의 씨네필로서 덧없이 각종 영화제에 다닐 때마다 괴로운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내 또래 신진 영화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봉준호나 이냐리투 같은 거장한테야 그저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류라 영광입니다, 하면 되지만 같은 세대의 창작자를 볼 때의 좌절감은 좀 다른 얘기다. 3년 전 전주영화제서 영화 <경계 위의 세 여자>의 클로에 로비샤드 감독이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88년도에 저 멀리 캐나다 퀘벡 땅에서 태어난 이가 이룬 남다른 성취에 마음 속 깊이 내상을 입고 말았다. 당연 비단 영화뿐만은 아니다. 최근 줄곧 이름을 알리고 있는 88년생 박상영 작가가 이 동네 출신이고 한 때 내가 다녔던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까지 상기시킨다면, 아아, 그 열패감이란 끝을 모르는 것이다!
하물며 입봉이나 등단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 없는 음악계에선 사실 상 우리 세대 아티스트가 이미 주류다. 리스너인 나와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보며 만든 음악들이니 배가 좀 아파도 귀 기울여질 수밖에 없다. 그 중 최근 들어 가장 낭중지추로 꼽는 뮤지션은 ‘제이클레프(Jclef)’다. 지난 해 <flaw, flaw>라는 첫 정규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음반부문상을 받은 그는 스물 일곱의 이과대 휴학생이다. 요즘 잘 나가는 김아일, 죠지, 콕재즈 등이 몸담고 있는 ‘크래프트준’ 소속이기도 하다. ‘싱잉 랩’이란 건 힙합에서 거의 장르화됐지만, 처음 접한 제이클레프의 보컬은 엄연히 멜로디 있는 노래이면서도 랩 작사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거꾸로 ‘래핑 송’이라 불려야 마땅할 것처럼 신선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저 힙합을 하는데 음색 좋고 가사 잘 쓰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 정도로 포켓에 저장해 두었었다.
며칠 전 그가 내놓은 따끈한 싱글, <Mama, see>야말로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다. 명확한 훅(hook)이랄 게 없고 곡 전개가 빤하지 않다는 사실은 지난 앨범의 연장선에 있는데, 가사가 짚고 넘어감직 하다. ‘엄마 세상이 자꾸 커져요 / 해서 먼길을 가야만 해요 / but somewhat weird / cuz my friends are still / 아직도 be killed stalked abused /… / 너무 흔해 빠져 / 메인이 될 수 없는 뉴스 / 그곳을 간신히 내가 피하면 족하다는 / 식으로 살 순 없잖아요 / 엄마 세상이 이런데도 / 나의 웃는 얼굴만을 바라요 (중략)’ 올 초 ‘아이즈(IZE)’ 인터뷰에서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 그가, 힙합 씬의 다수 리스너들에게 또 다른 ‘백래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찔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곡이 끝나갈 무렵 ‘엄마의 마땅한 세상 물려주는 일은 언제나 실패할 거’라면서도, ‘잔잔하던 세상에 파도가 일고 있으니 그저 내 옆에 서서 어리숙하게 탄 다음 세상의 끝이 달아나는 걸 보자’는 93년생 뮤지션의 말은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가.
그러고 보니 그는 번역하면 ‘흠, 흠’으로 읽히는 지난 앨범 <flaw, flaw>부터 비슷한 시선을 견지해왔다. 평단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에서는 ‘덩치를 가진 이들은 / 약한 자의 소란 앞에 / 웃음이 터지지’라며 불편을 방관해온 자들을 꼬집었고, ‘우울을 확인하는 것마저 너무 자연스러워 /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 / 길을 잃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The Uncertain’s Club>을 노래했다. 1인 카페 알바와 수학, 과학 과외를 하며 돈 벌던 시절을 담은 믹스 테잎 직후의 첫 싱글 <Multiply>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누군간 내 일을 비웃음에 담아내고 / 나는 내 시간이 푼돈 위에 얹어져 있으면 / 꿈의 값이 저렴해 라고 반문을 하는 새에 / 벤 냄새가 머릴 지배해’. 역시 이 시대 공허한 청춘의 멘탈리티를 대변하기에 모자람 없는 시(詩)다.
평론가 신형철은 ‘문학적 인식은 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가장 훌륭한 위로’라 했다. 실제 신형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제이클레프는 음악에 문학을 얹고 싶었다고 한다. 시대가 지금 당장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아티스트라면 대중 음악에서는 충분, 아니 과분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무기가 세상의 변화와 역사의 진보에 맞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라면, 예술가의 책무는 그것을 가장 먼저 해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장강명은 작가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바로 ‘당대성(當代性)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당대성이란, 시대상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만을 뜻하는 말은 아니리라.
지난 밤, 친구이자 내가 시기해마지 않는 91년생 작가 정재윤과 SNS로 만화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반갑게도 대학 시절 교환 대학에서 글로벌 페미니즘인지, 문화인류학인지의 수업 교재로 쓰여 봤다가 ‘인생 만화’가 된 나의 <페르세폴리스>를, 그도 가장 영향 받은 작품 중 하나로 꼽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저자인 마르잔 사트라피가 실제 이란 대혁명과 전쟁을 거치며 이슬람 여성으로서 겪은 사회적 억압과 정체성 혼란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마르지’의 성장기이자 저항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며들어 지금의 모습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정재윤의 책 <재윤의삶>에도 이것이 드러난다. 내 또래의 창작자를 보며 느끼는 마음을 좌절이라 엄살 떨었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실 좌절과 가장 거리가 멀다. 그것은 동료애이자 연대 의식이며, 세상을 향한 의지다.
제이클레프의 초창기 믹스테잎 제목은 <Canyon>이다. 그랜드캐니언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가 깎여나가는 이미지를 떠올려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여러 요인들로 인해 깎여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제 삶은 커다란 장관임을 이야기한다.’ 우리 시대의 젊은 예술가가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