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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Mar 29. 2024

"마음이 설레요?"

- 낯선 사람의 기습질문

이른 아침 산책길에 개나리 꽃밭을 만났다.

산책 길 옆으로 꽃을 기르는 좁고 긴 밭에 개나리꽃이 활짝 폈다.

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개나리꽃에 눈을 맞춘 채 느린 걸음을 걷고 있었다.


꽃농사를 짓는 밭주인이 그랬나?

꽃핀 개나리나무줄기를 잘라 밭둑에 쌓아 두었다.

그래서 좁고 긴 밭의 경사면이 개나리 꽃무덤이 되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 고요한 풍경 속에 개나리 꽃무덤이 황금처럼 빛났다.


저만치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온다.

나와 같이 아침잠 없게 생긴 나이 지긋한 영감님이다.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외면하고 지나치려는데, 쓱-날아오는 기습질문.


"꽃을 보니 마음이 설레요?"


"어? 네--"

난 순간, 이런 뽄떼 없는 대답을 하고 지나쳐가면서, 참 용감하고 낭만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022년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반 클라이번 콩쿨 최종결선 무대에 오르기 직전, 심사위원장이면서 지휘자였던 마린알솝이 열정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에게 했던 그 질문!


"설레니?"


그런 순간에 어쩜 저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심사위원장이었다면 "긴장되니?" 분명히 그랬을 텐데.

예술가들의 언어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그 질문을, 오늘아침 어떤 영감님에게서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걸기가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용건 없이, 목적 없이 말 붙이기를 못하는 내게도 이젠 간간이 낯선 사람이 말을 건네 온다.

나이 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일 수도 있다.


저번에 내가 저수지 주변에서 나물을 캘 때도 오토바이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멈춰 서서

"저 윗밭에 가면 나물이 더 많어요. 냉이도 큰 놈이 많더구만." 이랬지.


오토바이 아저씨가 지나간 뒤에,

또 한 사람, 맨발로 걸어가던 아저씨가 가만히 멈춰 서서

"아! 나물을 캐시는 고만요. 아이고--" 참 맥락 없이 이랬지.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낯선 사람도 반갑고 한마디의 대화가 귀할 때도 있다.

내가 하루종일 사람과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밥을 많이 먹는 나를 본다.

말이 고픈날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라도 말 한마디 건네보고, 그도 아니면 밥으로라도 채우게 되는 대화본능이 우리에게 있는가 보다.



난 작년 여름부터 도시와 시골의 중간쯤 되는 이곳에 살게 됐다.

처음엔 잘 정비된 공원의 산책길을 걸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안전한 산책로가 지루해졌다.


요즘에는 개발된 단지를 벗어나서 인근 동네를 걸어 볼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는 동네 어떤 집 대문 밖에 묶여 있던 백구가 짖어서 난감했다.

묶여 있는 백구가 '주인과 매일 산책도 하겠지?' 희망섞인 생각을 하면서 살금살금 지나갔다.


동네를 벗어나 인삼밭 옆을 지날 때 큰 백구 두 마리를 만나서 순간 당황했다.

주인도 없이 들판을 누비는 자유로운 백구 커플인가? 달려들면 어쩌지?

난감 해 하던 참에, 백구 둘이서 한 번 마주 보더니 지들이 먼저 나를 피해 인삼밭으로 올라갔다.


달려가는 백구들을 바라보면서 작년 봄에 별이 된 우리 강아지, 달래를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개나리 꽃밭을 만났고, 꽃구경을 하다가 그 질문을 받았던 거다.


"꽃을 보니 마음이 설레요?"

참 멋진 질문이다!






* 이젠 궁금해도 산책길에 동네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삼가야겠다.

개가 짖어서 민폐가 될 수 있고 또 개 짖는 소리에 집주인이 나오면 난 어쩔 줄을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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