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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un 12. 2024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다른 세상으로 헤어진 지 너무 오래돼서 너무 오래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지, 엄마!

되뇌이는 이름 말고 불러보는 이름이 얼마나 그리운지......


엄마, 내가 시집가서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옹알이를 연습해서, 나를 엄마라고 불렀을 때를 지금도 기억해.

아기와 엄마의 새로운 우주가 하나 생긴 거지.

그러니까 엄마가 내 곁을 떠났을 때에도 나는 하나의 우주를 잃은 거지.


내가 스물몇 살 때부터 엄마가 없는 세상을 살았잖아.

그때부터 엄마가 해주던 모든 것을 내가 했지.

계절을 감지할 때면 언제나 엄마생각을 해.


요즘엔 열무김치를 담그면서 엄마생각을 하지.

엄마랑 봄이 오는 길목에서 헤어졌고, 그 해 여름에 내가 처음으로 열무김치를 담갔어요.

내가 어찌어찌 담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엄마가 여름 김치를 담그던 모습은 또렷이 기억이 나네.


엄마의 여름 김치는 항상 작두샘가의 학독에서 나왔지.

엄마가 매일이다시피 학독에 휘휘 버무려서 밥상에 올려주던 열무, 얼갈이김치가 생각나서 지금도 어금니가 저리고 침이 고이네.


밭에서 한아름 솎아온, 가시털 따끔따끔한 열무를 손으로 뚝뚝 분질러가며 다듬지.

작두 펌프질한 시원한 물에 씻어서 굵은소금 한주먹씩 뿌려가며 간을 해두고.

엄마는 마당으로, 남새밭으로 뛰다시피 다니면서 양념 장만을 하지.


샘물 부어서 학독을 벅벅 씻고 물바가지로 그 물을 퍼내지.

삭-삭-하고 그 소리가 들리거든. 엄마가 몇 번이고 반복하지.

말강물이 나올 때까지.


아랫채 창고에서 붉은 고추를 몇 줌 내서 바가지에 불려두고, 

처마밑에 걸어 둔 마늘 몇 통을 부셔서 까면서,

엄마가 나를 불러서 부추 한 줌 베어 오라고 시킬 때도 있었잖아.


부추를 벨 때는, 흙에 닿도록 바짝 칼질을 해야 새싹이 올라올 때 깨끗하고 통통하다고 

엄마가 알려줬어요. 

때때로 내가 있는 일을 시켜줘서 지금 나도 엄마처럼 살림을 잘하는 걸까?


이제, 엄마 손에 크게 잡히는 공이돌을 쥐고 학독에 양념을 갈기 시작하지.

엄마가 맨 손으로 김치를 버무리고, 난 부엌과 샘가를 오가며 이거? 이거? 하면서 심부름을 했지요.


제일 먼저, 

불려둔 붉은 고추를 북북 갈고, 깐 마늘을 공이돌로 척척 깨 놓고, 보리밥을 반 공기나 턱 하니 넣고 또 갈고, 황새기 젓을 붓고 또 갈아서 양념이 다 되면, 살짝 숨 죽은 열무를 거기 넣고, 부추를 양손으로 쥐고 반 잘라 넣고, 설설 털어 가며 버무리잖아요. 


엄마가 내게 간을 보라고 한 손 먹여주면, 매운 입술을 빨아가며 고개를 끄덕끄덕했지.

김치 뒷설거지하면서, 밥상 차리면서, 엄마는 어쩜 그렇게 동당동당 일을 금세 추어대는지......


냉장고도 없던 시절,

익은 김치 절대 안 드시는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여름은 늘 뜀박질이었지.

논으로 밭으로 집으로 잰걸음으로 다니면서 많은 식구 건사하느라 엄마, 고생 많았어요.


성질 급하고 엄격한 남편, 아들 보려고 끝까지 낳은 일곱 자식, 얼마나 애타는 세월을 살았으면 그렇게 일찍 병을 얻었을까? 

일곱 자식이 다 철들기 전에 부모와 이별했으니, 호강시켜 드리기는 고사하고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했잖아.




우리 집 거실창 밖으로 물 잡아놓은 논들이 보이네.

모내기철이 된 거지.

논밭의 일거리를 보면 항상 엄마 생각이 나.


나도 참 나쁘지.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볼 때보다 

무논을 보고, 먼저 엄마 생각을 하는 거.


그래도 섭섭해하지 마 엄마!

엄마 꺼 우리 논,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엄마 장남이 잘 지키고 살아요.


언니들, 동생들 만나서 놀고 먹고, 좋은 가면 늘 엄마얘기를 하지.

엄마가 일찍 두고 간 자식들, 다 잘 살아서 건강하게 늙어가고 있어.

굽어보고 지켜주신 엄마 덕분이지요.

늦게라도 무한히 감사하고 사랑해요.

앞으로도 쭉--- 불어 나는 자손들 지켜봐 주세요.


엄마.

우리 엄마.

양애영 엄마. 안녕!!!


2024년 6월 12일 / 막내딸 올림.

사진일부 ; 네이버 블로그


*학독 - 돌확, 확독이라고 하며 고추 마늘등 양념이나 곡식을 가는데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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