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은 지켜내야 할 행복이다

by 버티기

1월 30일 이후로 실내에서도 마스크 자율 착용으로 전환되었다.

뉴스에서는 ‘무려 2년 넘도록 우리는일상을 잃어버리고 살았다.’고 그동안의 아픔을 되새겨 보게 한 후, 이제 ‘일상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희망을 부추겼다.

아마도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일상회복의 의미는 ‘자유에 대한 속박’에서 풀려난다는 의미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일상(日常)의 의미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의 중요성을 재조명해보고 싶다.

우리가 살면서 반복해 왔던 것을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다면, ‘계획이 변경’ 되었거나 ‘반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경우이다.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것은 개인의 의지가 작용된 것이라 볼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문제는 ‘반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상황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상이 깨졌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0530시! 알람 소리를 끄면서 실눈을 뜨고 화장실을 향한다.

볼일을 보면서 브런치에 올려진 글을 읽어본 후, 0600시에 씻고, 0630시면 아침을 먹는다.

여기까지는 근무를 하는 날이나 근무하지 않는 날이나 같은 흐름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근무하는 날은 아내가 챙겨준 것으로 내가 차려서 먹고, 근무하지 않는 날은 아내가 차려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상이 되면서부터는 늦잠의 호강도 포기한 지 오래이다.


0800시에 근무 교대를 하고 집에 도착하면 0900시 어간이다.

별로 한 거 없는데, 아내가 ‘수고했다.’면서 분에 넘치는 환대를 해준다.

옷 갈아입고 소파에 앉으면 아내가 모닝커피를 내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나간다.

그사이 나는 1200시 어간까지 잠을 보충한다.

근무 중에 잠은 자지만 숙면이 어렵기도 하고 피로가 누적되어 건강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1300시 어간이면 아내가 다시 집으로 와서 점심을 차리고 같이 식사를 한다.

여기까지가 이곳에서 근무한 이후로 거의 정형화된 나의 일상이다.


만약, 앞에서 말한 나의 일상에서 ‘아내’라는 말이 빠지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나는 어머니의 뇌경색 이후 12년 간, 아버지의 일상이 망가져 갔던 것을 알고 있다.

퇴직 이후 배운 그림을 즐기면서 노후를 보낼 아버지의 생각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

나의 일상도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반대로 내가 짐이 된다면 아내의 일상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꼭 지켜내야 할 행복이다.

아내가 곁에 있는 것, 자식들의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웃을 수 있는 것,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것,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것, 이 모두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행복의 파편들이다.

우리는 큰 뭉치의 행복만을 기다리면서, 이 작고 소소한 행복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일상에서 사소한 것들이 더 이상 사소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 그때가 바로 행복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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