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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Oct 30. 2022

맘마와 엄마

사랑 프리패스

엄마야!!!!!!!!




나는 나이 40을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넘어진다.


내려오는 계단을 잘못 새어 발이 꺾이는 순간, 흙길을 걷다가 나무 뿌리에 걸린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떨어진 화분이 깨지는 순간 나는 '엄마'를 찾는다.


내일 모레도 아니고 곧 내일 당장 40이 되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놀랄 때마다 "엄마야!"를 외치다니. 엄마를 부른들 엄마가 달려올 것도 아니고 엄마가 손을 잡아줄 것도 아닌데 그 두 글자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이 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 살이나 사십짤이나 매한가지인 걸 보니 어쩌면 구십짤이 되어서도 '엄마'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 음..머? 맘마???"


엄마인지 맘마인지 모를 그 말에 눈이 세 배는 커졌다. 바나나를 까던 손을 멈추고 눈도 손도 아이에게로 향했다. 남들에게는 맘마인지 음메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들릴 테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엄마나 맘마나 아이이겐 세상 가장 소중한 것이니 나를 엄마로 부르면 어떻고 맘마로 부르면 어떠랴. 그러고 보면 '엄마'라는 이름은 참 잘 지은 단어가 아닌가.  



 낯선 세상에 태어나 본능적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내 생존을 오롯이 맡기는 대상에게 주어지는 단어이니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에너지원인 '맘마'와 비슷한 이름인 것도 이해가 간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




"엄마아, 등 두드려 줘."

체기가 있어 영 속이 부대낄 때 엄마의 투박한 손이 등을 몇 번 두드려주면 이상하게도 이내 편안해진다. 이제는 나보다 작아진 주먹에 영 여물지 못한 손끝임에도 이상하게 그 손은 '약손'이 된다.  아무래도 몸이 엄마를 기억하는 모양이다. 열 달을 한 몸인양 그 안에서 들었던 심장소리며, 떨어져서도 한참을 살갗을 부볐던 기억. 배가 아프면 배를 쓸어주고 발이 아프면 발을 주물러 주었던 그 기억들 말이다. 굳이 머리로 기억하지 않아도 내 머리카락이, 내 등이, 내 배가, 내 손이 '엄마'를 기억한다.




어느날 침공한 외계인이 내 머리에 스텐그릇같은 걸 씌워놓고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고 "엄마야!"를 부르게 될 것이 뻔하다. 내 나이 70에도 엄마를 부르며 혼자 우스워하겠지. 지금껏 내가 수시로 그 이름을 불러재꼈듯 이제는 누군가가 평생 수억번 이상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입에서 터져나오듯 내뱉어질 그 단어에서 나를 떠올리겠지. 그때 떠오른 나의 모습이 삐딱하게 대충 올려 묶은 푸석한 머리에 늘어진 고무줄바지여도 나쁠 것은 없다. 어쩌면 바쁘고 치열하고 단정했던 순간들보다 느리고 게으르게 보냈던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침대에서 부대끼고 내내 뒹굴던 아침, 집 앞 공원에서 온종일 개미만 따라다녔던 그 여름날, 엉망진창이 된 방을 정리한답시고 나란히 앉아 더 어지르다 터졌던 웃음같은 것들 말이다. 원래 기억이라는 건 의도하고 준비했던 것들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한 찰나를 담는 법이니까.





결국 나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로 산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받는 프리패스같은 거였다. 이쁘지 않아도 부지런하지 않아도 깔끔하지 않아도 부자가 아니어도..



"엄마야!"

평생 불리어질 그 이름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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