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떤 새끼가 막국수집에서 칼부림을 하고 난리가 나서 경찰이 쫙 깔렸어!
막국수집이란 말에 나는 하던 일을 다 제쳐두고 집으로 향했다
내가 막국수집 딸이란 사실은 회사에 공식적인 비밀. 굳이 회사에 말하지도 않았다. 회사 직원들은 일부러 내 귀에 들리는 거리에서 큰소리로 얘기를 했다.
불타는 빨간색 깍두기 8351
내 차를 타고 엄마 막국수가게로 날아가보니, 경찰은 고사하고 가게 문은 다 닫혀있고
엄마는 어딘가 출타 중이었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나 막국수집 딸이 거 뻔히 알면서 누굴 잡을라고 뻥을 쳐!
씩씩 거리며 돌아서는데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돼지막국수집에 사달이 난 거다
그 집 아들 광춘이가 형이랑 싸움이 형목에 칼을 대고 대치 끝에 경찰이 실탄을 다리에 쐈다는 거다.
광춘이
분명 한자 몇 개 모르는 아버지는 빛날 광자에 봄 춘 자를 써서 빛나는 봄이라는 참.. 김영랑 시 한 구절 같은 이름을 선물했겠지만
광춘이는 미칠 광자에 술춘자를 달고 나온 사람이었다
아 그 새끼는 미친개 같어! 뭔 말만 하면 지랄이고 발광이여~ 뭔 배알이 꼴려서 뛰쳐나왔는지 말만 하면 소릴 지르는데... 그 새끼 사람되긴 글렀어~
술만 취하면 자전거를 저 논두렁에 쏠아 박아 넣고 아무대서나 쳐 자~ 개새끼 같어~!
술만 마시면, 동네 누군가와 쌈박질이고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날락해서
20년 범죄 없는 마을, 백아니면 올수없다는 천국 같은 서면파출소에 큰 골칫거리였다
광춘이 형과의 칼부림 끝에 다리에 총을 맞고 교도소에 붙잡혀 갔다
이 말은 이제 다시 서면은 범죄 없는 마을로 복귀
파출소 순경들은 동네 마실 다니듯 순찰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광춘이가 징역을 간지 한참이 지나,
모범수로 일찍 출소하던 날, 동네는 한산했다
광춘이는 출소하고 나서도, 집에 틀어 박혀 한참을 나오지 않다가 9월쯤 배추 심을 때부터 나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말만 걸면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거는 광춘이를 슬금슬금 피했는데, 그걸 아는 광춘이도 사람들과 섞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광춘이가 동네친구들과 함께 엄마 가게로 와서 소주에 닭갈비를 먹었다
그렇게 한참 술을 마시다, 애들 주려고 쌓아놓은 김밥을 보고
야~ 김밥 맛있겠다~ 김밥 좀 주라~!!
애들한테 줄 것이었지만, 내심 주는 게 맘에 들지도 않고 짜증 나서
이거 선생님한테 드릴 건데... 말끝을 흐리니까 은사님께 드릴걸 본인이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달라고 했다.
아니, 보통 선생님 드린다고 하면 줘도 안 먹는다 할 텐데, 굳이 달라는 저 인간은 뭔가? 속으로 욕을 하면서 접시에 김밥 몇 알을 벌벌 떨면서 담았다.
접시에 담아준 김밥을 먹으면서
맛있다 맛있다 하는 광춘이가 언짢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한 번도 시내버스를 타본 적 없는 건하가 나에게 버스를 타고 할머니 가게로 가자고 했다.
그럼 인형극장에서 내려서, 20분 걸어야 해.
아들에게 다짐을 받고 가을길을 걸어오는데 집 앞에 광춘이.............
나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아들도 안녕하세요 배꼽인사를 했다. 어깨에 약통을 메고 배추밭에 약을 치던 광춘이가 곁눈으로 보며 까딱 인사를 했다
그리곤 아이를 보곤
야.. 아들 잘 컸다야~ 너 몇 살이냐? 묻더니 한참을 소리 없이 웃었다.
태풍이 불던 일요일,
광춘이와 친구들이 엄마 가게로 아침부터 술을 마시러 왔는데
오십넘어 장가간 친구의 결혼식인데 장가를 못 간 광춘이와 친구가 성이 나서 어제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한잔 더 마시러 가게로 왔다고 했다
야, 나는 여기 춘천이 존나게 싫어~ 난 여기 뜰 거야!! 난 저기 저기~ 밑에 지방 가서
색시 만나서 살 거야~ 나도 결혼할 거야~
광춘이의 다짐에 맞은편 친구가 손사래를 치며 떠들지 말라고 했다
술 취한 광춘이가 친구에게 건네는 말들이 다 괜찮게 그날은 다 내 맘같이 들렸다.
야 장가 못 간 게 뭐 대수냐? 잘살면 되는 거지~
우리 오늘 결혼식 갈걸 그랬다~가서 축하해 줄걸 그랬다~야~~
선영아! 소주 한 병 더 줘라~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주문하는 광춘이에게 맞은편 친구가 애 엄마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 미안해하길래, 나는 사장님 대신 삼촌이라 대답했고 인화는 잘 살고 있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시절 몇 달 우리 반에 있던 인화는 광춘이의 조카였고 나랑 종종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 우리 인화! ~ 우리 인화를 기억하는구나!
야.. 선영아 너하고 그 누구냐? 문수 동생??? 명희?? 걔하고 우리 인화하고 글공부해서 삼촌이 떡도 쪄서 방에 넣어주고 그랬는데 기억 안 나냐?
우리 인화가 지금 로스앤젤레스에 살고있댜~
걔가 옷장사 하는 기술이 있어서 거기서 옷장사 하고 잘산댜~
작년에 사진 봤어~ 남편이 아주 잘생겼어~
잘산댜~
내가 먼저 꺼내준 인화얘기를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들려줬다
맞은편 친구가 심드렁해 먼저 간다고 했더니,
광춘이는 친구는 뒷전이고 나를 붙잡고 끝도 없는 인화얘기를 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광춘이가 또 난리 치지 않을까
가게에 혼자 있는 나를 또 해치지 않을까. 왜 남편이라는 인간은 이럴 때 나타나지 않는 거냐는 원망과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다행히 광춘이는 내가 깎아준, 배도 먹지 않고 닭갈비도 그대로 남기고
비 오는 길을 추척추척 우산도 없이 걸어갔다.
고맙다 선영아..
우리 인화 기억해 줘서
미안하다 선영아
술이 많이 취해서
고맙다.. 우리 인화 기억해 줘서..
인화를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나에게 말 걸어줘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다.
할머니가 입으시던 한여름 냉장바지를 펄럭이며 차분히 내리는 빗속을 걸어가는 광춘이는 연신 고맙다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