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 차운하여

by 휘루 김신영

그대 이름, 차운(次韻)하여/김신영

-대경(大驚)하다


오늘은 배짱 두둑이 하늘을 먹고

온 산동네 아득하게 그대 이름 나란히 적어

차운하여 그늘막에 앉혀 놓았네


소학(小學)을 읽다가 몇 번이나 경(黥)을 친다는

중문에 서는 것만으로도 실절(失節) 한다는

그 말씀에 대경하여 문안에서 서성거린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 사람들 꾸중하는 소리

이런 경을 칠, 하루에도 열 번씩 경을 치던

이제는 머언 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조상님이시여


살 속에 죄명을 새겨 넣어 경을 치는 일

금칙(禁飭)한 죄에 한 번 더 대경하여


중문에 서서 한 발짝도 넘지 못하던 고약한 인습과 전통을

아름드리 두 손에 안고 문지방 넘어 사뿐히 걷는 버선코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장옷 입은 말쑥한 비녀, 그녀


사소절을 읽으며 여인만이 가져야 할 단정한 태도

그대의 얼굴, 똑바로 보아도 안 되는 지극한 예에 놀라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무릎맞춤하며


살아생전 널따란 힘으로 온 산을 품은

그 큰 사람, 멋없이 휘날리는 머리카락

장옷 자락, 너울 자락, 쓰개 자락


오늘은 배짱 두둑이 하느님을 먹고

산동네 아득한 그대 이름 적어

차운하여 그늘막에 포근히 앉혀 놓았네


-시와문화 25년 여름호 특집




keyword
이전 13화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