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 아닙니다. 물론 세월은 지났습니다. 조금 많이..
동생에게 종종 용돈을 주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서 주곤 했다. 나는 꼭"고맙지?"라고 물었는데, 고맙기는 하지만, '해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라고 생각도 했다고..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복에 겨워하는 말이 이런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동생은 정말 해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고맙지?"라는 말 뒤에 "그러니까, 부모님께 잘해"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상대는 처음부터 바란 적이 없을지도 모르니 조건을 붙이지 않을 만큼의 호의면 충분하다.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중에서
나는 21살에 군대를 갔다 왔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기억이다. 사진으로 보면 정말 좋았던 추억이지만, 1억 줄 테니 다시 돌아가라 해도 절대 안 간다. 군 생활동안 휴가도 많이 못 나갔다. 차에 치이면 1달이라도 바깥세상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간신히 버텨냈다. 남자들말이 다 그렇듯 군대는 정말 어렵고 힘들다. 최전방 철원이든, 최후방 제주도든, 보병이든, 의무병이든 힘들게 나라 지키는 건 다 똑같다.
???: "에이 100% 정답인 게 어딨어. 군대 좋아했던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있었다.
노홍철 군대 후임 : "군시절부터 노홍철은 그 기질(돌+아이)이 다분했어요."
군대가 재밌다고 말하는 건 노홍철이었다. 사진만 봐도 그는 정말 재밌어 보인다. 그의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노홍철은 군대에 전설이었다. "선임은 형님, 이등병과는 친구로")
아무튼 나는 노홍철처럼 그런 기질은 없었다. 지금은 많이 올랐지만 그 당시 가장 힘든 건 작은 월급이었다. 나라를 열심히 지켜도 일병 기준 한 달에 10만 원 받았다. 군대는 24시간 동안 나라를 지킨다. (잘 때도 꿈에서 나라를 지킨다. 왜냐하면 군대 꿈을 꾸기 때문이다) 그 당시 최저시급인 6천 원으로 계산해 보면, 6,000원 x 24시간 = 144,000원. 한 달로 계산해 보면 4,320,000원이다. 물론 군대에서 옷 주고, 밥 주고, 잠까지 재워주니까 그 비용을 한 달에 132만 원(정말로 잘 쳐준 거다)으로 계산해서 빼면 1달에 300만 원은 받아야 한다. (지금 최저시급 9,800으로 계산하면 500만 원이 넘는다) 이렇게만 계산해 봐도 한 달에 10만 원은 너무했다.
???: “에이 그때 10만 원이면 뭐 든지 다했어!”
김구 선생님께서 계셨던 시절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물가를 생각해 보면 전화하고, PX에서 냉동식품 10개만 사 먹으면 없어지는 돈이었다. 월급날 돈을 받아도 막 쓰지는 못했다. 휴가 때 써야 할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3달에 한 번 정도 휴가를 나갔는데, 교통비를 빼면 15만 원 정도 모았다. PX에서 집에 줄 선물 사가고, 고기 사 먹고, 친구들이랑 술 먹고, 부대 복귀할 때 선임들 먹을 거까지 사면 15만 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느 날 복귀를 하는데 누나가 날 안쓰럽게 봤는지 용돈이라며 20만 원을 줬다. 다음 휴가 때도, 그다음 휴가 때도 20만 원씩 줬다. 당시 누나도 학생이었고, 잠깐씩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일 텐데 너무 고마웠다. 근데 용돈을 줄 때마다 가족들에게 더 잘하라는 식의 압박이 돌아왔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 압박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누나한테 전화를 했다.
태섭 : 누나 돈 주는 거 너무 고마운데, 내가 용돈 달라고 말한 적은 없어!!
누나 : 이 새끼가 돌았나. 힘들게 벌어서 돈 줬더니, 고작 하는 말이 그거야? 배가 불렀냐
누나가 도와줬으니 당연히 나도 그에 맞춰서 잘해야 하는 게 맞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렸고, 복에 겨운 말이었지만 계속되는 압박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누나도 처음에는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나중에는 이해해 줬다. 사실 용돈 주면서 본인도 점점 바라는 게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누나는 내가 병장이 될 때까지 용돈을 또 줬다. 이번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7년이 지난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당돌한 남동생에게 참 고마운 누나였다. 군대 때 쥐꼬리 같은 월급이라도 잘 지낼 수 있던 건 이해심이 깊은 누나 덕분이었다.
“고마워 누나. 용돈 줄 때만큼은 ‘손예진’ 이였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