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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Nov 21. 2019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이뤄진
지금의 즐거움

헤이젤 참사의 현장, 브뤼셀 킹 보두앙 스타디움 방문기

땅거미가 진 브뤼셀의 모습 @풋볼 보헤미안

브뤼셀에선 정말 짧은 기억밖에 없다. 애당초 런던행 유로 스타를 탑승하기 위해 찾은 경유지였다.  그래서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적 여지 밖에 없었다. 그런데 브뤼셀에 관련한 사전 정보를 추릴 때 축구와 관련한 이미지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벨기에에서 가장 손꼽히는 축구 박물관이라는 골미네 풋볼 뮤지엄은 브뤼셀에서 떨어진 헹크라는 작은 도시에 자리하고 있어 방문하기에는 시간적 여지가 없었다. 브뤼셀에는 안더레흐트라는 유명한 클럽이 있긴 하나, 이 팀이 근거지인 브뤼셀 남서부 지역은 최근 치안이 매우 좋지 못한 곳으로 악명 높아 외면하기로 했다. 모름지기 여행에는 안전이 최고다. 


유럽 입성 후 바삐 움직였던 걸음을 잠시 쉬게 할 수도 있었다. 호스텔의 좁디좁은 침대에 몸을 누여 아무런 걱정 없이 눈을 감았을 땐 한동안 잊고 있었던 ‘꿀잠’을 자기도 했다. 그럼에도, 몸을 일으켜 정말 축구의 흔적이 없나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브뤼셀에 축구와 연관된 이슈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브뤼셀에서 일어난 최악의 이슈 때문에 전 세계가 몸서리를 친 적이 있다. 

킹 보두앙 스타디움의 외관 @풋볼 보헤미안

그 흔적을 찾으러 킹 보두앙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브뤼셀 시내에서 트램 51번을 타고 종점까지 달리면 만날 수 있다. 킹 보두앙 스타디움은 현재 벨기에 축구 심장부로서 기능하는 곳이다. 1930년에 문을 연 이곳은 벨기에 유일의 UEFA 스타디움 카테고리 4, 흔히 말하는 5성급 경기장이다. 당연히 세계적인 국제 대회가 많이 열렸다. 네덜란드와 공동 개최했던 유로 2000 당시 로테르담의 드 쿠이프와 더불어 메인 스타디움으로 기능했다. 현재도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으로 쓰인다.


지금의 킹 보두앙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 구장 개보수가 마무리된 1995년의 일이다. 1993년 서거한 벨기에 왕 보두앙을 추모하고자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 이전에는 헤이젤로 통했다. 축구 역사를 즐기는 이들, 특히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오랜 팬이라면 이 경기장 이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1985년 6월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헤이젤 참사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헤이젤 참사는 1984-1985 UEFA 유로피언컵(現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서 벌어진 관중 사망 사건을 말한다. 중립 구역에 있던 유벤투스 팬들을 흥분한 리버풀 팬들이 공격하면서 끔찍한 일이 빚어졌고, 매우 취약한 경기장 구조, 미흡한 안전 관리까지 작용해 사고를 더욱 키웠다. 공식적으로 39명이 목숨을 잃고 600명이 다친 이 사건 때문에 리버풀은 물론 잉글랜드의 모든 클럽에 향후 5년간 유럽 클럽대항전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지기도 했다.

온통 철문으로 막혀 있던 킹 보두앙, 아니 헤이젤 스타디움 @풋볼 보헤미안

참사가 일어난 지 30년도 훌쩍 지난 터라 그때의 흔적은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명비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킹 보두앙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그런데 현장에 찾아간 후 난감한 상황이 주어졌다. 온통 철문에 가로막혀 출입구가 도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시간이 너무 늦어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는 안 했지만, 아예 외곽에서부터 ‘철벽’을 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보통 경기장 외곽 지역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접근이 가능한데, 그마저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최근 브뤼셀의 치안이 그만치 좋지 못하기에 그러지 않나 싶은 추측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에 원했던 스폿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었다. 킹 보두앙 스타디움 외벽에는 헤이젤 참사 사망자를 위로하는 명판이 새겨져 있다. 유벤투스와 당시 사고 유가족들이 참사 30주년을 위로하기 위해 설치한 명판이다. 당시 리버풀 팬과 유벤투스 팬이 뒤엉켰다고 알려진 경기장 내 Z구역 외벽에 붙어 있다. 희생자 명단에서 알 수 있듯, 목숨을 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탈리아인과 벨기에인이었다. 사고의 당사자인 리버풀 팬 혹은 잉글랜드인의 이름은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Z구역은 지금 기준으로 생각할 때 굉장한 이상한 구역이었다. 축구 경기장 내 안전을 위해 팬 성향에 따른 지역 구분은 필수다. 더욱이 킹 보두앙 스타디움처럼 제3지 경기장으로 쓰일 때는 더욱 철저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양 골대를 기준으로 맞상대하는 팀들의 팬들이 자리하고, VIP석등을 포함한 중앙 지역에는 중립 팬들이 자리하도록 한다. 중립 팬들이 나름의 완충 작용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Z구역은 그렇지 않았다. 이 구역은 리버풀 팬들과 지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중립 팬이 자리해야 하는데, 이곳에 유벤투스 팬들이 섞여 있었던 게 문제였다. Z구역은 리버풀과 유벤투스 팬들의 욕설과 패싸움으로 얼룩졌고, 급기야 경기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이런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헤이젤 참사 희생자 명단. 총 39명이 사망했으며, 대부분이 유벤투스를 좋아하던 이탈리아 팬들이었다. @풋볼 보헤미안

헤이젤 참사가 축구계에서 남긴 여파는 실로 막대했다. 앞서 언급했듯 리버풀을 포함한 모든 잉글랜드 클럽의 유럽 클럽대항전 출전이 금지됐다. 하필 이때 리버풀의 라이벌 에버턴이 잉글랜드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유로피언컵 출전권을 얻었는데, 밖에서 사고 친 앙숙 때문에 괜한 불똥을 맞아버렸다. 자크 조르쥬 당시 UEFA 회장은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고, 알베르트 루센스 당시 UEFA 사무총장은 문제의 Z구역 티켓 발권과 관련하여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죄명으로 6개월이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참사의 현장 킹 보두앙 스타디움도 홍역을 앓았다. 향후 10년간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긍정적 여파는 당시 사고를 계기로 킹 보두앙 스타디움이 개보수에 들어갔다는 점, 그리고 낙후되고 폭력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잉글랜드 리그가 지금의 EPL로 변모하는 시발점이 됐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의 쾌적하고 즐거운 EPL 관전 분위기가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이뤄진 결과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개인적인 추억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 명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경기장 관리인에게 쫓겨나야 했다. 언급했듯이 이 경기장 주변이 온통 철문으로 막혀 있었는데, 경기장 앞 광장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열려 있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지역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사유지라고 한다. 경기장이 사유지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전임 왕의 이름이 헌정될 정도면 이 경기장이 벨기에 왕실이 소유한 사유지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조금 쑥스럽게 물러나야 했지만, 그래도 헤이젤 참사와 관련한 흔적은 살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현지인에 따르면 킹 보두앙 스타디움은 사유지라고 한다.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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