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공항 Aug 06. 2024

그들의 연애

우리 반에 커플이 한 쌍 있다. 내가 3학년 담임이니까 열 살짜리 커플이다. 이름은 현우와 은서(둘 다 가명). 은서는 다재다능하고 성격 좋고 모든 활동에 적극적인 딱 회장감 여자아이, 현우는 내성적이고 욱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고 역시 다재다능한 남자아이다.


현우는 수업시간에 상당히 산만하다. 쑥스러워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전체 설명을 위해서 모두가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리기 전에는 교사를 바라보는 일이 없고, 항상 그림을 그리거나 뭘 만들고 있다. 그래서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아예 은서랑 짝을 시켜버렸는데 그러니까 수업태도가 좀 좋아졌다. 은서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인 것 같다.


스포츠 강사 선생님과 하는 체육 시간에 플로어볼(하키)을 했는데 은서가 상대팀 친구가 스틱으로 공을 치려는 순간 그걸 뺏어 보겠다고 뛰어들다가 스틱에 팔을 맞았다. 그래서 잠깐 경기에서 빠지게 하고 옆에서 다독이고 있었는데 많이 아팠는지 계속해서 서럽게 울었다.


그런데 잠시 후 현우가 일부로 넘어지지 말라는 스포츠 강사선생님의 경고에도 계속해서 넘어지더니 결국 퇴장당했다. 구석에 가서 주저앉아 우는 현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은서를 보니 엉엉 울던 울음을 뚝 그치고는 마음 아픈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반에 은서를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민준이라고 (가명) 한 명 더 있다. 워낙 남녀 안 가리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늘 입에 ‘은서야~’를 달고 다니고 늘 은서를 찾는다. 전해 듣기에는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며칠 전 급식 시간에 민준이가 나에게 “선생님, 현우가 제 등을 때렸어요!”라고 이야기하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현우는 억울한 표정으로 “민준이가 저랑 은서랑 사랑하는 사이라고 놀리잖아요!”라고 소리치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일단 민준이에게 사과시키고 반 전체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감정이고 그걸 가지고 놀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고학년을 담임을 많이 한 탓인지 “아~ 진짜. 너네 누구 좋아해 본 적 없냐?”라는 말이 먼저 나가고 말았다.


말을 하고는 ‘아차, 얘네 열 살이지!’ 싶어서 속으로 머리가 하얘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반 아이들 중 일부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기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내가 이 아이들을 너무 얕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 나이 때 ‘쟤랑 짝하고 싶다.’ 싶었던 아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아이가 한 달에 한 번 바뀌고 일 년 뒤에 생각이 안 날지라도 그때 그 감정을 하찮은 것이라 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


점심을 다 먹고는 민준이를 따로 불렀다. 풀이 죽어 있는 아이에게 “너 은서 좋아하지?”하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그런데 민준아 네가 나쁜 뜻으로 그런 것이 아닌 건 아는데, 그런 말을 하면 안 되고, 아까 같은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꾹 참고 네가 더 멋진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이들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는 편인지라 누가 연애하는지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걸 문제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좀 얕본 감은 없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12.25.)

작가의 이전글 어른노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