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3교시 쉬는 시간이었다.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와서는 화가 난 듯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누가 남자 화장실 바닥에 똥을 싸 놓았어요!!!” 그러고는 정말 더럽네, 바보네, 냄새가 나네, 떠들다가 x을 구경하러 가겠다는 다른 아이들을 쫓아서 우르르 나가버렸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져버렸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께 알리자니 어디 계시는지 모르겠고, 행정실에 알리자니 기분 나빠하실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치워야 하나. 우유 먹다 토한 아이 토사물을 치운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문득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와 슬퍼지려는 때였다.
교실 뒤 쪽에서 우리 반 통통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물론 실제로 그 아이를 통통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내가 치우러 가야겠어!!!” 그러더니 한 손에는 롤 휴지를, 다른 한 손에는 물티슈 봉지를 들고 비장하게 화장실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x구경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영웅을 만난 기쁨에 통통이의 뒤를 환호하며 우르르 쫓아 나갔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나는 아이들을 쫓아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남자 화장실이라 함부로 들어가 지는 못 하겠고 어정쩡하게 문 앞에 서서는 “도와줄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교실로 가.”라고 외쳤을 뿐인데 몇 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는 통통이만 남아버렸다.
아이 혼자 치우게 할 수는 없어서 화장실로 들어섰는데 오 마이 갓. 냄새가 얼마나 심한지 나도 교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쓰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통통이를 바라보니 아이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치워야 할까요?” 물었다.
다행히 x은 쪼그려 앉아서 큰일을 보는 변기 바로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롤 휴지를 두껍게 풀어서 아이에게 쥐어주고는 “이걸로 톡톡 밀어서 변기에 떨어뜨리면 되겠다.”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못 하겠고 ㅠ
통통이는 한 번에 x을 무사히 변기에 안착시키고 x이 놓여 있던 자리도 두꺼운 휴지로 한 번 닦은 뒤,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통통이의 용기에 대해 칭찬하고, 손이 더러워지지 않는 방법으로 x을 치웠으니 절대로 놀리지 말라고 못 박아 이야기하고는 줄을 세워 음악 교실로 보냈다. 그리고 텅 빈 교실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안타까운 감정이 밀려왔다.
“난 항상 행복해!”라고 말하는 통통이. 양보도 봉사도 잘하는 통통이. 하지만 어느 날 “저희 엄마는 스물일곱 살이세요.”라고 이야기한 것을 들은 이후로는 3학년 같지 않게 의젓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아프다.
시 수업을 할 때 아이들에게 동시집을 한 권씩 주고는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낭독하고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도록 했었다. 통통이는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열심히 장어를 잡는 내용의 시를 골랐고, 자기는 아빠가 집을 나가서 안 계시기 때문에 이 시가 좋다고 했다. 아빠가 멀리 떨어져서도 자식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한다는 내용이 통통이에게 와닿았나 보다.
진로주간을 맞이하여 부모님 직업 체험하고 보고서 쓰기 숙제를 냈을 때 통통이는 그 숙제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이상하게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절대로 저한테 얘기를 안 해 주신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 힘든 일을 겪었을 텐데도 친구들을 위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통통이를 보면 세상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통통이가 자신이 또래 친구들처럼 철없지 못했음을 슬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쩌면 그건 나의 개인적인 투사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에 날이 갈수록 통통이에게 아무 생각 없이 웃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
통통이에게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201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