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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Oct 04. 2023

워킹맘의 딜레마

9화. 일하는 자아와 엄마 사이의 시소 타기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편이다. 7개월쯤이었던 것 같다. 이제 막 혼자 앉을 수 있는 정도의 시기였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너무 짠하고 미안하다. '네발기기도 못하는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다니...'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잘 뛰어다니는 18개월쯤의 사진을 보아도 짠하고 미안한 건 마찬가지다. 언제쯤 기관에 보내야 엄마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임신할 당시 한창 상담가로서도 작가로서도 업무가 많던 시기였다. 프리랜서인지라 일이 전혀 없을 수도 있기에, 내게 들어오는 원고나 강연, 협업 제안, 또 심리상담요청 하나하나가 귀하고 감사했다. 덕분에 책 집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원고와 강연,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그 일은 출산 후에도 이어져 조리원에서도 노트북을 펴고 부지런히 글을 썼고, 자연스럽게 어린이집도 일찍 알아보았다.


다행히 한국에서 다녔던 어린이집 선생님과 이후 폴란드에 와서 다니게 된 유치원의 선생님들 모두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펴주시고 있다. 아이도 잘 적응하고 선생님들도 좋으셔서 (아마도 운이 좋은 편에 속할 것 같다.) 세돌이 지난 지금은 안심하며 보내고 있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일을 모두 내려놓고 아이를 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내려놓은 건 몇 달 되지 않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면 아무래도 자주 아플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돌도 안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게 나뿐일까. 어떤 집은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맡겼다더라, 산후조리도 되기 전에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간다더라, 아침 일찍 등원시키고 삼시 세 끼를 기관에서 다 먹고 난 후에야 하원시킨다더라 등의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들도 나처럼 마음이 무겁고 일상은 분주하겠지. 체력은 부족하고 걱정과 불안이 넘치는 날들일 것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아직까지 아이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라는 (주입된)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상당히 높아졌지만 심리적인 부분은 여전히 차이가 커 보인다)  똑같이 직장에 다니는 입장이라도 부담감과 죄책감은 엄마가 더 짊어지게 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물론 아빠들은 아빠자리에서의 고충과 부담이 있다. 그렇기에 워킹맘이 많다는 건 일하는 자아와 엄마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며 부담감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결코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문화적인 영향(아빠는 경제활동, 엄마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관념)을 무시할 수 없고 우리의 한세대 위, 그러니까 부모님 세대만 해도 그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여자들의 부담감도 덜어지기 위해서는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 사회시스템 등 여러 방면에서 워킹맘 워킹대디의 부담을 나눠 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일하는 엄마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미안해하고 애달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것을 몸소 경험하면서 더욱 무겁게 느끼고 있다.



일을 놓을 수 없고, 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영유아 시기는 부모의 손이 가장 많이 갈 때이지만, 가장 일을 관두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하루종일 일을 하던 여자가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뿅 하고 완전한 엄마가 되지는 않는다. 몸은 아이에게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아이가 없던 시절의 직장인 어디 즈음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 적응해 가는 속도로 엄마도 엄마의 세상에 적응해 간다. 아이가 두 살 세 살일 때에도 여전히 여자는 백 퍼센트 완전한 엄마라기보다는 '엄마 되기'의 과정 속에 있다. (어쩌면 평생 '엄마 되기'의 과정일 것이고) 정체성이 변화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일상은 이미 엄마의 역할로 가득 차 있으니 꽤나 힘든 숙제로 다가올 수 있다.


나는 직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의 양을 조절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무리일 것 같은 일들을 많이 걸러냈다. 그럼에도 업무제안을 모두 거절할 수 없었던 건 단순히 일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작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몸이 힘들면 힘들었지 일을 안 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선배인 대학원동기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출산 후 1년 차에 일을 가장 많이 했다고. 양가 어머니께 번갈아 도움을 받으며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야 들어왔단다. 몸도 회복이 안되었을 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나도 임신 이후에서  17,18개월 정도가 될 때까지 일을 가장 많이 했다. 나의 일정이 조율이 되지 않으면 남편은 연차를 썼고, 어린이집에 부탁드려 좀 더 오랜 시간 맡기는 날도 있었다. 몸이 힘들어서 한약도 해 먹고 체력을 늘리느라 운동도 해가면서 시간을 쪼개서 썼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해외에 나와있는 탓도 있지만, 이전만큼 일을 내려놓는 데에 마음의 어려움이 없다. 거절해야 하는 제안이 훨씬 많아졌지만 이전처럼 '이렇게 계속 거절하면 나중에 일이 안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 엄마의 역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었던 게 크다. 워낙 정신없는 신생아 시기를 지나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돌 이후 시기, 아이의 자아가 강해져 곤혹(?)스러운 날들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엄마의 자리가 내 자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서 의무나 책임의 비중이 줄어들고 순수한 기쁨의 시간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육아가 (아~~ 주) 조금 수월해진 현재는 그 일상 사이사이에 일하는 시간의 비중을 조금씩 다시 늘려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내 개인적인 상황과 경험일 뿐, 아마도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의 경우는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많고, 여전히 바쁘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아이에게 손이 덜 가는 시기까지는 퇴사할지 말지를 계속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엄마 되기'의 과정 속에서 엄마의 정체성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 시대의 여자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남자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고 또 받는다. 즉,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일하는 미래를 향해서 스텝을 밟아왔다는 뜻이다. 가사와 육아를 하는 미래만을 위해서 고등, 대학교육까지 받지는 않는다.  멋지게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한다거나 전문성을 가지고 능력을 인정받는 그런 미래를 향해서 스펙을 쌓아간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현실적으로 그 미래를 실현시키는 무척 힘들다.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휴직을 하거나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게 된다. 만약 부모님이든 어린이집이든 도움을 받아 무사히 복직을 하더라도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있을 게 아니라 사표를 쓰고 아이를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 그것이 결국 '죄책감' '불편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정과 지지가 필요해


육아를 하면서는 직장일에서 얻는 만족감이나 외적 보상 따위를 얻기란 힘들다. 직장에 있던 시간과 개인시간을 모두 살림과 육아를 위래 쓰게 되지만 누가 월급을 주지는 않는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 또 아이와 함께하는 그 시간 자체가 기쁨이 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무척 힘들게 느껴진다. 힘들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려 하면 '남들 다하는 건데!' '네가 선택해서 낳은 아이인데!'라는 내면의 소리 (때로는 외부의 목소리^^)가 스스로를 타박한다. 아이가 다치거나 잘못되면 부정적인 피드백은 쉽게 들을 수 있어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기는 어려운 게 가사와 육아가 아닌가 싶다. 그것이 직장일보다 돌봄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인정과 지지의 부재는 전업맘, 워킹맘 모두에게 꽤나 큰 결핍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이 바로 일을 놓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정시간 나의 재능을 쓰고 그만큼의 월급, 인정, 여러 가지 외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거기다가 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육아를 할수록 더더욱 일을 붙잡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육아를 하며 틈틈이 글을 쓰던 정아은 작가는 6년간 공모전에서 떨어지다가 소설 공모에 합격한 후 버럭하는 엄마에서 상냥한 엄마로 화했다고 한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수많은 육아서와 강연을 찾아들었지만 해낼 수 없던 것이, '주체적인' 변화를 통해 단번에 해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오롯이 해낸 그 일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마음이 크게 채워진 게 아닐까. 육아를 통해 '나 정말 잘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받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엄마들은 누구라도 그 일을 통해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그 일을 하는 자신을 지지받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사와 육아를 통해서도 이런 지지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인정과 지지가 너무 부족할 때 엄마들은 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때로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게 아이를 돌보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다 하는' '너무나 당연한'일로 치부될 때, 내가 열정을 쏟아 인정을 받을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나 주변의 능력 있어 보이는 워킹맘들을 보면서 '나도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돼도 일하는 엄마를 좋아한다던데'와 같은 생각을 한 번씩 떠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워킹맘들이 계속해서 '내가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닐까'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완벽주의 내려놓기는 필수 


아이가 4~5살 정도 손이 덜 가는 시기가 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몸도 마음도 힘들다. 이 시기는 일을 하지 않고 육아만 한다고 해도 상당히 힘든 시기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일까지 잘 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간혹 그렇게 해내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좌절하지 말자 나여..)  그렇기에 최대한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만 버틸 수 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시기에 '육아도 일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까지 자리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재앙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기쁨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고 나아가 매일매일 좌절의 연속일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아이 등원을 준비하고 (여기서 벌써 체력은 다 쓴다),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떼어 놓느라 마음을 쓰고,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면 마음은 아이에게 가 있고,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라도 오면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연락이 안 와도 '아이가 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일하는 와중에 불쑥불쑥 떠오를 텐데 과연 평온할 틈이 있을까.


워킹맘의 시간은 한정적이고 체력도 한계가 있고 정신적인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마음을 덜 괴롭게 하는 방법은 있다. 최선을 다하되 둘 다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시에 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무리한다거나, 아이를 너무 잘 키우려고 마음을 쓰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과거에 회사를 다닐 때 육아휴직 후 복귀를 한 선배가 '어우 너무 좋아. 육아에서 도망친 이 기분!'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던 말이 기억난다. 미혼이었던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느낌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쁨을 누리는 것도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 앉아서 아이 걱정을 하고 죄책감에 눌려있는 것보다, 직장에서는 직장에서의 기쁨을 누리고, 아이와 함께할 때는 또 직장일의 고단함을 잊는 자세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건 필수다. 육아도 일도 반쪽자리로 있어서 속상한 게 아니라, 양쪽 다 반정도만 해내도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퇴근 후 들어온 집안 꼴이 엉망이라고 무너지지 말자. 자신이 전업맘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자책하지 말자. (아이가 어릴 땐 일을 하지 않아도 집안꼴은 엉망이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육아와 가사를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실제로 나는 일을 모두 놓았던 몇 달의 시간 동안 집안일과 육아를 드라마틱하게 더 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같이 하는 요즘이 (긴장감이 있어서인지) 더 부지런하게 집을 정리하고 챙기게 되는 것 같다. 둘 다 잘할 수 없음을 어렵게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양쪽에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음을 느낀다. 여전히 체력은 달리고 시간은 빠듯하지만, 아이와 있을 때는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일단 너무 귀엽..) , 일을 할 때는 내가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등원시킨 날에는 아이가 나에게 보너스로 준 시간이라고 여기며 귀하게 시간을 쓴다. 더 집중해서 원고를 쓰고 더 정성으로 상담을 한다. 일을 하느라 마음이 많이 뺏긴 날에는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원 전에 3분이라도 명상을 한다. 나 자신이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면서 마음을 돌보는 명상법에 대해서는 이후 18화에서 다룰 예정)


또 하나는, 육아도 일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무얼 포기할지'를 주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떤 것을 더 내려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청결에 대한 기준을 조금 내려놓고, 때로는 아이에게 영상과 달다구리를 허용하면서 내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한 완성도를 조금 낮추면서 '완결'자체에 목적을 두기도 한다. 그래야만 무사히 병행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워킹맘의 복지는 무얼 얼마큼 포기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희생'이 아닌 '선택', 일을 한다고 해서 죄책감 가지지 않기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워킹맘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것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 되게 하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희생한다는 생각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 '아이 때문에 일을 관뒀어.'와 '지금은 일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내가 맘이 더 편할 것 같아서 선택했어.'는 확연히 다르다. '돈 벌어야 돼서 일해야 해'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일하는 게 여러모로 더 날 것 같아서 나는 일을 관두지 않을 거야.'는 다르다. 내가 나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언어선택이 내가 이 삶을 더 주체적으로 꾸려가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어느 쪽이든 나의 선택이어야 하고, 다소 상황적인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능동적인 선택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에 벌어지는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아가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어차피 아이 입장에서는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전업맘은 전업맘이라서 워킹맘은 워킹맘이라서 아이에게 좋을 수 있고 또 어떤 면은 아쉬울 수 있다. 모든 게 그러하듯 정답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녀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결코 부모가 나를 위해 희생하기를 원치는 않지 않는가? 지금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입체적인 시각에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 판단은 엄마의 몫이며 본인이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아닌가 한다. 그 선택이 곧 내 삶의 정답이 되는 것이다. 일을 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엄마로서의 몫을 다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때로는 모든 게 잘못 돌아가고 있고 뭔가 엉망인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그것이 기꺼이 내 선택이라면 그 또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 어떤 것도 정말 엉망인 것은 없으니까. 어쩌면 내가 요즘 네발기기도 못하는 시절의 아이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애를 어린이집에 보냈지?' 하며 자책하고 미안해하는 마음까지도 육아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일하는 자아와 엄마 자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소를 타는 내 모습이 육아의 일부이듯이 말이다. 



9화 끝.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글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워킹맘을 주제로 한 꼭지는 꼭 쓰고 싶었는데, 제가 경험한 워킹맘으로서의 삶이 아주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많이 조심스러웠어요. 이번 기회에 회사를 다니는 주변 지인이나 맘카페에서 접하는 워킹맘의 얘기를 더 많이 찾아보고 들어보았네요. 알면 알수록 워킹맘의 현실적인 고민은 훨씬 더 무겁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물론 일을 하지 않아도 육아하는 엄마들은 모두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라도 덜 힘들게 육아와 살림,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갖게 됩니다. 이 세상 엄마 아빠들 파이팅. 우리 아이들은 더더욱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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